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다
글이 안 풀리면 목욕탕을 떠올린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끙끙대던 문제의 반대편을 발견하고 마음으로 유레카를 외친 곳이 목욕탕이다. 언제부터 목욕탕이 해결공간이 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몇 번의 유레카를 경험한 후부터 목욕탕 가는 길이 설렘과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거나 막힌 글이 뚫리기를 기대하며 씩씩하게 탕으로 입장한다. 특히 코로나 때, 안마 기능을 갖춘 개인 탕에서 경험한 유레카를 잊을 수 없다.
‘유레카'(Eureka)는 그리스어로 "나는 찾았다" 또는 "알았다"는 뜻의 감탄사다. 유레카는 황금 왕관 세공에 금세공 기술자가 금의 일부를 가로챘다는 소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시칠리아의 히에론 2세 왕으로부터 진실을 밝히라는 요청에 골몰했다. 황금 왕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순금이 아닌 은이 섞였는지를 밝히는 난제였다. 그는 목욕 중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왕관의 순도를 재는 방법을 깨달았다. 흥분한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이처럼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을 때 유레카를 사용한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유레카 경험이 있다. 새 소설을 구상하던 중 어떤 소재로 어떻게 접근해야 흥미로울지가 당시 고민이었다. 일본작가의 미스터리소설을 재미있게 들은 뒤였다.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안마 기능이 완비된 개인 탕에서 불현듯 소설 제목이 떠올랐고, 이렇게 풀면 어떨까 하는 구상이 번쩍했다. 신기한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첫 유레카 이후, 고민이 생기면 목욕탕에 갔다. 짜릿한 몇 번의 유레카가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다니던 목욕탕에서 개인 탕을 폐쇄했다. 물 절약 차원인지, 안마 탕의 고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이한 일은 안마 탕의 폐쇄와 동시에 유레카 경험도 고스란히 사라졌다는 사실.
그때부터 목욕탕 순례가 시작됐다. 유레카를 지속하려는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24시간 사우나부터 여성전용찜질방까지 동네 목욕탕을 싹 훑었다. 카운터에 양해를 구하고 탕 내부의 개인 탕 유무를 확인했다. 어디에도 개인 안마 탕은 없었다. 개인 탕은 없지만 혹시나 싶어 한 목욕탕을 테스트하기로 하고, 안마 기능이 있는 큰 탕에 사람이 없는 틈에 들어섰다. 가만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고민하던 문제에 스르륵 문이 열리며, 해결의 실마리가 솟았다. 와, 찾았다!! 유레카 맛탕!!
드디어 목욕탕을 바꿀 때라며 기뻐했다. 집에서 살짝 멀고 목욕비도 비쌌지만, 유레카 목욕탕이잖아. 그거면 됐어! 하며 마음을 확정했다. 몇 주 만에 설레는 기분으로 새 목욕탕에 들어섰다. 아무 일도 없었다. 분명 사람이 없을 때 안마 탕에 입수했는데, 뭐가 문제지? 예전 목욕탕으로 복귀 수순을 밟았다. 유레카가 일어나지 않은 비밀을 알지 못한 채로. 구 목욕탕 첫 입수 날, 생각지도 못한 나만의 힐링 스폿을 발견했다. 오랜만의 유레카였다.
누구에게나 기분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한동안 나의 치유 공간은 헤어숍과 목욕탕이었다. 지금은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 그곳들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장소였다. 머리를 자르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나를 돌보고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자존감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마음이 까끌하고 답답할 때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일, 그게 바로 단단한 자존감의 첫걸음이다. 오늘 스스로를 조금 더 아껴주기 위해 익숙한 집을 나서보자. 나를 반겨주는 힐링 스폿으로, 다시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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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Pinterest@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