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의 글쓰기를 통해 배운 것

외로움이 스승이라는 말

by 한지원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흰》에서 보여준 모호한 환상성과 이미지의 은유가 이 책에서도 돋보인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설가 경하가 한강 작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혼이 깊고 여려서 고단했을 것 같은 느낌. 이런 분이 결혼하고 출산 후 겪었을 몸과 마음, 영혼의 탈골이 어땠을지. 단단한 마음과 생을 향한 의지로 지금에 이른 작가의 용감한 모험을 떠올렸다.


‘외로움이 스승’이라는 한강 작가의 말을 곱씹어본다. 고독의 시간을 스승 삼아 집필을 이어온 한강 작가와 달리 나는 고독을 견디지 못했다. 사람으로 외로움을 달래면 다시 외로움이 몰려오고, 그렇게 외로움에 사무쳤다.


외로움이 절실하던 시절, ‘글쓰기’라는 친구를 만났다. 떠오르는 감정을 순간적으로 쏟아내고 포착하는 글쓰기도 좋았고, 타인을 관찰하고 세계를 촘촘히 성찰하는 데도 유용했다. 나의 글쓰기는 일상의 안온함과 시시함, 지루함을 뚫고 태어났다. 아울러 좋은 책들의 숲에서 연마되고 강화되었다. 글쓰기는 감정을 해소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형형색색의 해방과 자유를 선사했지만, 종종 조급한 인정욕구로 고통스러웠다.


다음 카페로 시작한 글쓰기는 인스타그램과 병행했다. 지금은 작가들의 온라인 플랫폼인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건 관종이 되는 건지. 구독자수도 안 늘고 추천도 거의 없는 다음 카페 글쓰기계정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오자 좋아요 수에 연연했다. 좋아요가 없으면 없는 대로, 좋아요가 많으면 많은 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팔로워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예의를 차리느라 분주하고 힘든 시절이었다. 좋아요와 팔로워에 목매는 내가 마치 현대판 노예 같았다. 알찬 글을 발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보다 좋아요와 팔로워 수가 안 느는 게 더 속상했다. 이러다간 내가 망가질 것 같아 인스타에 올린 글을 모두 지웠다. 오랜만에 평온한 일상으로의 복귀였다.


다시 옮긴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도 관종의 습성을 벗지 못했다. 구독자와 라이킷, 댓글 없음에 실망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마음이 여전했다. 숫자와 경쟁하는 나를 바꾸지 않으면 계속 널뛰는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사회, 광고하고 자랑해야 충족되는 인간의 욕망.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의 부족. 타인의 인정에 목마르고, 단단하지 않은 자존감. 이 모든 문제의 종합판이었다.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 사람들과 경쟁하는 창작자로 살지, 외롭지만 내 글을 믿고 꾸준히 창작할지가 고민이었다. 남들과 경쟁하면 더 빨리 달려야 하고, 원치 않는 나로 살다가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대신 내 속도를 알면 지치지 않고 꾸준할 수 있고, 방향이 아니면 언제든 다른 길에 들어서면 되었다.



‘외로움이 스승’이라는 말은 고립을 견디거나 극복하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 본연의 고독을 오롯이 받들고, 진정한 자신과 연결하라는 말이며, 복닥거리는 감정과 소용돌이를 온 몸과 마음으로 수용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외롭다고 사람을 찾아다니거나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라는 말. 고독이 목덜미에 차오르기까지 지켜보는 동시에 고독을 직시하라는 당부기도 하다. 결국 외로움이 스승이 되려면 불필요한 관계와 일을 정리하고, 자신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 시간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신념을 돌아보고,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을 탐구하려고 잠시 머무는 단단한 시간일 테니까.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미지 출처: Pinterest@장명진-MJ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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