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GXING Mar 17. 2024

‘그해, 그 시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있습니다.

‘그해’, ‘그 시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있다. 지나간 건 웬만하면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인지라(그렇지 않은가?) ‘그해, 그 시절’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어지는 문장이나 내용은 일단 아련하고 마음 아리는 감정으로 바라보곤 한다.


한국방문의해인 올해, 한국에서는 다양한 사업이 진행 중이고 그 가운데 하나가 ‘인바이트유’. 한국과 인연이 있는 외국인을 초청하여 방한관광을 홍보하는 사업이다. 대만에서는 오랜 기간 방한 수학여행을 나서고 있는 타이베이의 한 중고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는 공식적으로 20여년 전부터 한국을 수학여행지로 삼아 왔다. 학생들이 수학여행 대상국을 선택할 수 있는데 올해도 한국과 싱가포르 등 중에 선택해서 수학여행을 다녀온단다. 학교를 찾은 그 날도 학교 도서관 앞 칠판에 올해의 수학여행 목적지를 적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오래 전 한국에 수학여행 다녀온 졸업생 가운데 몇 명을 다시 한국으로 초청해서 제2의 수학여행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는 취지를 설명하자 학교에서는 반겼다. 졸업생들에게 연락해서 알아보겠단다. 


2주 정도 지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20년 전 수학여행 다녀온 몇 명의 명단과, 당시 수학여행 소감문이 실려 있는 학교신문과 함께 말이다. 학교 페이스북 등에 이러한 문구와 함께 홍보했더니 연락이 왔다 한다. ‘그해 우리 함께 갔던 한국’(那一年我們一起去的韓國). 


대만 타이베이의 한 고득학교의 칠판과 페이스북 포스팅. 수십년간 한국을 수학여행지로 삼아온 학교다.


이 문구를 본 졸업생들은 어땠을까. 어림잡아 본다면 신기하고 설레고, 아련하고 하지 않았을까. 제3자인 나조차도 저 문구가 올라 있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 괜시리 미소 지어질 정도니 말이다. 


명단을 보니 당시 교내지에 글을 기고했던 OO芝라는 학생도 포함돼 있다. ‘阿妞哈斯呦 韓國!’(안녕하세요 한국)이란 제하의 글에 4~5일간의 한국 수학여행에 대한 설렘, 기대, 여러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한복체험도 해보고, 남북 38선도 가보고(임진각이었을 듯), 종유석동굴과 에버랜드에도 가보았단다. 다시 한국에 가볼 수 있길 바란다는 소망으로 글이 마무리됐는데 그 바람이 실현될 수도 있겠다.  


약 20년전 한국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교내지에 기고한 글


회사 동료들과 이 얘기를 나누는데, 한 친구가 이 학교 페이스북 글의 제목이 대만의 유명한 청춘로맨스 영화와 닮았단다. 제목이 이러하다.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 


那一年我們一起去的韓國(그해 우리 함께 갔던 한국)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학교에서 차용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영화 제목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했다면 절묘하게 잘 활용했다. 하여간 이 영화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란 제목으로 2012년에 상영이 됐다. 제목이 좋다. 소위 느낌이 있다. 


그래 이번 글 주제는 ‘그해, 그 시절’로 해보잡시고 유튜브에서 스토리 소개영상을 찾아보니 꽤 볼만했다. 단순히 고교시절 풋풋한 사랑이야기였으면 아쉬웠을 터이나 ‘그 시절의 너’를 좋아했고 ‘그 시절의 너를 좋아했던 나’도 그립다는, 대충 그런 스토리다. 어찌보면 그 시절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준 ‘너와 나’에 대한 헌사랄까. 해석이 과하다 싶으나 하여간 그러하다. 


요즘에 그렇다. 그 시절이 단순히 그립다 보다는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나와 함께 빛나는 추억을 만들어준 그들이 그립다는 마음인데 이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히 잘 파악한 듯싶다. 마무리도 그저 그렇게 추억 파먹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서로 고마워하고 여전히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모습으로 끝나기에 더 좋다.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한 장면


이왕 ‘그해, 그 시절’ 어감 파먹기 하는 김에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베이징에 잠시 살면서 제일 좋아하던 중국 음식이 ‘那年秋天的茄子’였다. 고급 요리는 아니나 이름을 듣고는 어느 고급요리보다도 즐겨했다.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그해 가을의 가지’. 어쩜 음식 이름이 이리 찬란하단 말인가. 다른 가지가 아니라 그해 가을, 어느 특정 연도의 가을이라는 지칭에서 특별히 맛있는 가지, 그 년도 가을에서 생산된 가장 훌륭한 가지였다는, 그 가지로 요리한 음식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음식이라는 것이 맛도 맛이지만 언제 누구와 먹은 것이냐가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해 가을이라는 시점에 맛본 가지라는, 문학적이기도 하고 애틋함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이름만으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헌정’을 하는 건 아니다. 식감이나 맛 또한 훌륭하다. 치아 상태가 건강한 편은 아니다만 음식을 먹을 때 식감을 나름 중시하는 편인지라 입안에 들어가 처음 씹을 때의 감촉이 그 음식에 대한 평을 적지 않게 좌우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그해 가을의 가지 요리는 훌륭하다. 튀김인지라 가지 껍질이 바삭하게 부서진다. 그렇다고 딱딱한 것은 아니다. 적당하게 바스라지는데 그 안의 가지 식감은 살아있다. 촉촉하고 부드럽다. 소위 요즘 말하는 겉바속촉이다. (와이프는 나의 헌사에 이렇게 초를 치긴 했다. “튀기면 다 맛있어”)


바삭한 식감에 더해 미감은 달콤하다. 탕후루 제조법과 유사하다. 가지에 가볍게 밀가루를 입히고 튀긴 뒤 설탕 시럽인지 물엿 시럽인지 하여간 달콤한 옷을 입혀 다시 튀긴다. 식감과 미감에 가지의 건강까지 더한 음식인지라 베이징에서 종종 찾아 먹었다. 


베이징에서 제일 좋아했던 음식(그해 가을의 가지)


‘그해’ 라는 단어로 연상되는 것을 고른다면 K-드라마 ‘그해 우리는’을 빼놓을 수 없다. 2021년에서 2022년 사이 방영된 SBS 드라마. 아마 이 드라마를 본방사수 한 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코로나 시기 집에 칩거하는 시간에 아마 OTT에서 우연찮게 접하곤 빠졌던 드라마다. 


그해라는 단어와 연관된 영화나 드라마, 소설들이 그러하듯 이 드라마 또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이 10년이 지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있다. 드라마를 찾아보진 않지만 굳이 고른다면 밝고 소소한 재미가 가득한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그 취향에 딱 맞는다. 


우연이다. 주말 저녁에 이 글을 끌쩍이고 있는 와중에 마루에서 영화 Boyhood OST인 Hero가 들려온다. 이 영화와 음악 또한 사랑하는지라 주말 저녁이 아주 풍요로와 진 듯하다. 이 노래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내가 말이다) 딸내미가 엄마 생일 선물로 스포티파이에 만들어준 플레이 리스트에 포함돼 있는 노래다. 그 시절, ‘소년시절’을 그린 영화 Boyhood이기에 글 말미에 우격다짐으로 더해 넣었다. 


이렇게 2024년 ‘그해’의 3월 ‘그 시절’ 하룻밤이 채워졌다. 



작가의 이전글 바다거북이 내 옆을 지나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