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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May 05. 2024

갓김치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대만에서?

[대만 소소한 일상]

일요일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오늘 저녁은 떡볶이. 


떡볶이 떡은 아니고 어슷하게 썰어놓은 떡국 떡이다. 냉동실에서 갓 꺼내놓았기에 녹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다. 


배가 슬슬 고파오는지라 부엌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주전부리를 찾는다. 떡볶이가 다 될 때까지 얼마 남진 않았지만 배고픈 걸 못 참는 이놈의 식성.


아내가 이런 내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내 머리 위에 있는 눈치 백단인지라. 


“으이구, 그걸 못 참냐. 어차피 주중에 못 먹을 테니 갓김치에 밥으로 조금 요기하던지” 


평일에 보통 집에서 저녁을 먹지 못한다. 퇴근이 좀 늦기에. 


“그럴까? 그럼 조금만 먹을게”


사실 해외에 거주하며 또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김치를 먹지 못하면 입맛이 없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될까. 나도 마찬가지. 김치를 먹지 않고도 별 영향은 없다. 있으면 먹지만 없어도 머 크게 상관은 없다. 


허나 아내는 달랐다. 김치 금단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는 듯하다. 


예전 베이징에 거주할 때도 처음 한두 달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어했다. 거주 환경이 바뀌고 기후도 바뀌고 이사하며 긴장도 했고 피곤해서 그런 거라 여기었다. 물론 그 영향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김치였다. 어머니가 베이징 살이가 궁금하다고 오시면서 김치를 담가 오셨는데 그것 먹고는 향수병이 나아졌다. 김치가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물론 김치가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베이징에서 아내의 별명은 ‘3년 치’였단다. 양념장이나 조미료, 각종 음식재료들을 3년 치 준비해서 갔기에 붙여진 별칭이다. 액젓이건, 새우젓이건, 매실청이건, 멸치분말이건 이삿짐의 상당량은 이런 음식 재료들이 차지했다. 


3년 주재한 뒤 돌아올 때 매실청이 결국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우리집에선 소화 안 될 때, 여름날 시원하게 얼음에 타서 마실 때, 각종 요리에 수시로 넣어 먹었는데도, 3년 꼬박 이렇게 먹었는데도 남았다. 이 매실청은 유기농 매실을 사다 집에서 직접 재어 만든 것이다. 멸치분말도 이사하기 며칠 전부터 진공포장기계를 사서 집에서 멸치를 분쇄한 뒤 하나하나 담아 가져갔다. 이러했었다. 


대단했다. 그땐 대단했다. 


이번 대만에 올 땐 그때에 비하면 소소하지만 물론 평균이상인 것은 분명하다.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사올 때 싸온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새우젓, 액젓 등이 말이다. 


이 재료들은 물론 아내에겐 소중한 김치 재료들이다. 여기 와서도 김치를 수시로 담아 먹는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김장한다는 말에 아내도 여기서 김치 담아서 어머니께 사진 찍어 보낸다. 자기도 이렇게 담갔는데 빛깔 한번 보시라고. 


이 김치는 제대로 된 한국 플렉스다. 한국 현지 재료들로 만든 것이기에. 다만 배추는 어찌할 수 없다. 한국에서 몇 년 치 배추를 가져올 순 없지 않은가. 아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게 바로 배추다. 여기 배추는 쉬이 무른단다. 즉 물이 많이 생긴다. 항상 아쉬워한다. 


그러다 며칠 전 목소리에 다소간의 흥분 아닌 흥분이 담기어 말한다. “이것 갓 맞지?!” 마트 야채 코너에서 이전에 잘 보지 못한 야채가 있기에 번역기로 찍어 확인하니 갓이었다. 한국의 갓보다는 여리여리 하지만 갓은 갓이었다. 


대만 갓으로 담근 갓김치. 아내에게 유레카였다. 나에게도 놀라운 맛이었다.


아내는 갓김치를 무척 좋아한다. 김치가 없어도 별 문제 없는 나로서는 갓김치는 더더군다나 큰 의미 없다. 허나 아내는 유레카였다. 대만에서 갓김치라니. 바로 김치 만들기 모드로 바뀌었다. 며칠 전에도 실은 배추김치를 담갔기에 양념장이 남아 있는 터. 그 바로 한국에서 가져온 새우젓과 액젓으로 만든 양념장이다. 


부엌이 좁다고 투덜대면서도 갓이 부족하다고 좀 더 사오라 한다. 이리 해서 대만에서 갓김치를 담갔다. 빛깔이나 모양이 그럴싸하다. 이번엔 양념이 내 입맛에도 군침 돌게 적당히 맵고, 적당히 짜고, 적당히 달다. 그래서 그런지 갓 특유의 쌉싸름함도 양념에 잘 포개어진다. 김치를 담글 때 썼던 스테인리스 대야에 남아 있는 양념장에 밥 몇 숟갈 쓱쓱 비벼 먹으니 이 또한 별미였다. 아내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부엌이 조금이라도 넓으면 김치 만들어 팔아도 되겠단다. 


이렇게 담근 게 어제였고 하루가 지난 오늘 저녁 그 갓김치를 저녁 떡볶이 먹기 전 에피타이저로 몇 개 집어 밥반찬으로 먹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일반 김치도 아니고 그다지 즐겨 먹지도 않던 갓김치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냐고? 그것도 대만에서 말이야!


하여간 이렇게 대만에서도 한국식 집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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