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29 Kenya, Nairobi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
- 예능 '정글의 법칙'에서 원주민을 만났을 때
어릴적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있었다면 티몬과 품바가 나오는 라이온킹이었다. 아마 일요일 오전쯤으로 기억되는데 교회가기 전 그 만화를 틀어놓고 밥을 먹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동물의 왕국이었다. 워낙 다큐멘터리를 좋아했었는데 특히나 드넓은 초원의 야생동물들을 좋아했었다. 케냐에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내가 좋아했던 라이온킹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동물의 왕국의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용맹하다고 알려진 마사이마라부족이 실제로 살아가는 곳이기도 했다. 이 삼박자로 인해 오랜만에 가슴뛰는 설렘을 느끼기 시작했다.
잠시 뒤 커다란 지프니에 몸을 싣고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국립공원 입구에 차량은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 뒤 붉은 망토를 두른 용맹한 전사의 부족들이 성큼성큼 차량 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들끓는 야생의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의 망토의 모습이 가까워 올수록 내 심장의 박동은 점점 더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절대 이 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 이분들을 놀라게 하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돼. 계속 웃고 있고 이분들이 하는 대로 일단은 따라줘야 해. 다 웃어요 웃어.
정글에서 무서운 부족을 만났을 때 병만족이 했던 것처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눈꼬리는 옆으로 입꼬리는 위로 사정없이 당겨 최대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준비를 모두 갖췄다. 그리고 가까워진 그들 손에 무언가 잔뜩 들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들 손에 든 것을 확인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공예품이었다.
- "텐 딸라 텐 딸라, 원 피스 텐 딸라, 쓰리 피스 투웬티 딸라!!"
그들은 서로의 물건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 투어차량를 두루 다니며 공예품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멈춰 선 지프 차량으로 삽시간에 몰려든 마사이족으로 인해 마치 북새통을 이루는 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맘에 드는 것을 하나 발견하고 구매를 시도하자, 갑자기 옆에 있는 상인이 불쑥 나타나 자기 물건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더 저렴하게 주겠다며 나와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너도 나도 내 앞에 모여들어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혼잡함과 무질서함이 난무했다. 아무래도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른 마사이족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절대 놀라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분들이 오히려 나를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용맹함은 그저 과거의 영광 뿐인 것인가.
사파리투어를 마치고 마사이마라족이 사는 곳을 둘러보기 위해 마사이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니 그들은 기부금 명목으로 10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기부금 형식이었기 때문에 강제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한 명씩 눈 앞에서 직접 걷어가니 아마 수금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게 기부금을 걷기를 마치고 난 후 마을의 남자들은 전통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노래에 맞춰 한 명씩 하늘 높이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사이족이 손님을 환영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색적이던 환영식이 다 끝나고 난 후에는 현지인의 집까지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투어의 일행들은 한 명씩 흩어져서 현지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흙으로 지어진 현지인들의 집을 신기하게 구경을 하던 중 다른 마사이족 한 명이 내가 구경하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목에 정체모를 목걸이 하나를 걸었다.
-"이봐 친구, 너 이게 뭔지 아니?"
-"목걸이 아니야?"
-“그래, 맞아 이거는 목걸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이거는 그냥 목걸이가 아니야. 바로 사자의 이빨로 만든 목걸이야.”
-“우와 사자이빨이라니”
-"여기서 끝이 아니야. 이 사자이빨목걸이는 그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지."
-"우와 정말 멋지구나"
-“이게 얼마처럼 보이니?”
-“잘 모르겠어."
-"이봐, 친구 이거는 정말 귀한 목걸이야. 그런데 내가 특별히 너에게는 싸게 해줄게"
-"고마워,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살 돈이 없어."
-"좋아 그럼 30딸라에 해줄게. 괜찮지?"
-"미안해 정말 돈이 없어서 그래."
정말 수중에 가진 돈이 별로 없었기에 목에 걸린 목걸이를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은 내 손목에 채워진 지샥 시계를 발견하고선 시계와 목걸이를 교환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비록 평소에 시계를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꽤 값이 나갔던 터라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내 맘을 꿰뚫었는지, 그들은 끝없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소 워넉 합리적인 소비와 가성비를 지향하는 나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딜을 시도하는 그들의 끈기에 나의 판단은 흙탕물에서 첨벙거린 것처럼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고민 끝에 그들의 제안에 OK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집을 나서고 나서야 몇 분간 가출했던 이성은 보란 듯이 돌아왔다. 나는 10만 원이 넘는 시계와 가격을 짐작할 수 없는 행운의 목걸이 하나를 교환한 것이다.
'이 목걸이 참 예쁘다. 정말 맘에 든다'라고 계속 주문처럼 되내어 보았지만 뒤늦게 돌아온 판단력은 여름철의 눅눅한 습기처럼 내 마음을 찝찝하게 만들 뿐이었다.
현지인 집 투어를 마치고 우리 일행이 모이자 호주에서 온 캠이라는 친구의 목에 나와 똑같은 목걸이가 3개씩이나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도 나를 보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허허허 웃기만 했다. 캠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줄 거라고 하지만 그의 입가에 왠지 모를 씁쓸한 미소가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려나.
얼마에 주고 샀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지샥시계와 바꿨다고 했고, 씨익 웃어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씁쓸한 패배감을 느끼는 것은 기분탓이겠지.
마사이 마을도 자본주의는 비껴갈 수 없었는지, 너무 많은 것들이 상업화가 돼버린 듯 했다. 그들만큼은 속세와 벗어나 순박하길 바랐던 내 마음이 어쩌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아웃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 스트립에게 말하길 마사이족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절대로 길들여질 수 없는 존재들이어서 만약 감옥에라도 갇히게 되는 날엔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엔 오직 현재라는 개념밖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곳을 나가게 될 수도 있나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황당할 정도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는데 이내 누구보다 순간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럽게 느껴졌다.
결코 내일이란 없는 사람들. 오로지 지금 이 순간뿐인 그들에게 세상이란 아마 내가 살고 있는 여기와는 다른 곳이겠지.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중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오늘만 사는 이들에게도
돈은 필요한 법이니까.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