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역마살 이야기 31 Ethiopia, Adis Ababa

by 역맛살

내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모든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었어. 매시간은 보물을 찾고자 하는 꿈의 일부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보물을 찾아가는 길에서, 나는 이전에는 결코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어. 한낱 양치기에게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 그래 그런 것들을 감히 해보겠다는 용기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을 것들을 말이야.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중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행선지는 곧 죽음이고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한 여름 최고 온도 63도까지 올라가며 지구 상에서 가장 무더운 곳, 그리고 지옥의 땅이라는 별명을 가진 '다나킬'에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차량에서 구멍으로 불어오는 것은 빵빵하게 틀어놓은 분명 에어컨이었지만 마치 온풍기를 틀어 놓은 듯 냉기를 품은 바람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창문을 여는 게 더 나을까 싶어 창문을 열고 나니 사우나에 온 것처럼 뜨거운 열기에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태양빛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정수리는 누가 모닥불을 피워놓은 것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차에 내려 선크림과 각종 옷으로 살인적인 태양빛은 막았지만 나의 호흡기를 죄여 오는 듯한 뜨거운 공기는 차마 막아낼 수가 없었다. 뭐든 알기 전이 행복한 법이라고, 같은 일행인 니키와 캠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눈 지가 얼마 지났다고 시작부터 이렇게 고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살면서 이렇게나 강한 태양의 열기를 겪어보지 못했기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운전기사가 말하길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 최고 온도가 48밖에 올라가지 않은 무난한 날씨라고 했다.


곧 가이드는 우리에게 숙소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숙소라고 할만한 곳은 보이지 않고 온통 황량한 돌과 모래만 가득한 사막 전부였다.

'뭐야 지금.. 바닥에서 자라는 거야 뭐야.'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이드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기 시작했다. 그에게 다가가 잠시 쉬었다 가는 거냐고 묻자 그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이곳이 오늘 우리가 자게 될 숙소라고 말했다. 나의 혼잣말이 맞았다. 정말이지 사막 한가운데서 매트리스 하나를 깔아놓은 게 전부였고 그곳에 벽이라던지 천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장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이라는 곳 자체가 없었고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이 곧 화장실이 되는 매우 자유분방한 곳이었다. 볼일을 보기 위해 이곳저곳 물색하며 인적이 없는 황야를 지나 적당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나에게 적당한 곳은 곧 누군가에게도 적당한 곳이었던 것일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누군가 거쳐간 흔적이 존재했다. 누군가 아주 확고하게 남기고 간 영역표시에 나의 영역으로 덧칠하는 무례함을 범할 수는 없었기에 자리를 옮기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사막의 모래먼지로 온 몸은 까끌거리고 끈적거렸다. 투어사에서 챙겨 오는 식수를 제외하면 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샤워를 할 수조차 없었다. 대신에 물티슈를 꺼내어 구석구석 닦으며 나름의 샤워를 했다. 닦아낸 물티슈를 보니 몸을 닦는지 어디 먼지 쌓인 방구석을 닦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검은 때와 수북한 모래 알갱이들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역시 감지 못한 머리카락은 어느 것보다 정직하게 나의 지저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틀간 물맛을 보지 못한 머리카락에는 옅은 기름층이 형성되어 번들거렸고, 그 농도가 짙을수록 유독 더 많은 모래먼지가 내려앉았다.

전날 투어를 시작하기 전 깨끗이 씻었으면 그래도 좋았겠다만 잠을 잤던 숙소에서는 단수로 인해 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 못했다. 역시 저렴한 숙소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피해 갈 수 없는 나의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언제쯤 이놈의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잠을 자기 위해 눕자 몸과 매트리스가 맞닿은 부분에서 끊임없이 습기와 땀이 차올랐다. 온몸이 끈적거렸고, 끈덕진 부분에는 어김없이 모래 알갱이들이 다닥다닥 들러 붙었다. 그나마 선잠이라도 빠질 즈음이면 바로 옆 도로를 지나가는 25.5톤 트럭의 사나운 엔진 소리가 울렸고, 저 멀리 어디가에는 정적을 타고 돼지 멱을 따는 것과 같은 당나귀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천장 없는 호텔에서 몸을 뒤척이다 하늘을 바라보니 어릴 적 천장에 별자리 야광스티커를 붙여놓은 듯 수많은 별이 보였다. 그래도 이곳 노상 호텔은 비록 천장은 없을지 모르지만 낭만은 있었다. 감은 눈을 뜨면 마치 소금포대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의 향연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 낭만은 낭만이고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살면서 가장 덥고, 살면서 가장 더러운 순간이었다.


[달룰]

날이 밝고, 활화산을 보러 가기 전 먼저 '달룰'이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Colorful Africa, Wonderful Africa! 마치 누군가 물감 파레트로 사용한 것처럼 빨강, 주황, 노랑, 초록이 형형색색으로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지구에 이런 기괴한 모습이 있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기이한 풍경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냄새가 꾸물꾸물하게 나의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상한 계란을 한 껏 먹고 끼어대는 방귀 냄새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것일까. 평소처럼 나시를 입고 있는 나의 겨드랑이를 가장 먼저 의심해봤지만, 분명 이 익숙하지 않은 냄새는 씻지 못한 나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또한 저기 앞서 가는 일행 중 한 명이 소리 없이 끼어대는 몰래 방귀의 위력적인 냄새도 아닌 듯 했다.

그 냄새의 근원은 유황 지대였던 달룰에서 내뿜는 굉장히 껄적지근한 냄새였다. 달룰녀셕은 땅 속에 무얼 그렇게 품었는지 속이 별로 안 좋았나 보다. 그 땅에서는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끓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달갑지 않은 방귀 냄새도 같이 풍기고 있었다.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냄새에 몇 번 코를 킁킁댔지만 그 냄새를 자꾸 맡자니 나도 같이 속이 안 좋아지며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에르타알레 활화산]

달룰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번에는 활화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8시간을 사정없이 달려가야 하는 길, 여전히 뜨거운 열기로 아무것도 안 해도 벌써 기진맥진했다. 최대로 틀어 놓은 에어컨에도 이마에서 땀은 삐질삐질 흐르고, 앉아있는 엉덩이에 금방이라도 뾰루지가 날 것처럼 땀이 차올랐다. 그리고 혼곤한 수면을 헤매던 중 갑자기 가이드가 외쳤다.

"렛츠고 마사지 웨이!"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차량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활화산 근처이니 만큼 아무래도 이곳저곳 흩어진 현무암들로 인해 길이 울퉁불퉁할 수 있지만 마사지의 강도는 생각보다 강했다. 이것은 마사지라기보다 무자비한 폭행에 가까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1시간정도 등허리를 시원하게 두둘겨 맞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금세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사람이 없고 전기도 닿지 않는 곳에서 저녁은 아주 정직하게 찾아왔다. 빛이 없어 사람들은 각자 헤드랜턴이나 핸드폰 플래시를 통해 발을 비추며 돌밭을 올랐다. 활화산에 가까워지니 매캐한 연기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고, 더 가까이 다가가자 코와 목을 찌르는 듯한 매운 연기로 변하는 순간 눈물과 콧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왔다. 예전 용암이 흘러 굳어버린 자리는 철판 아이스크림을 말아 놓은 혹은 전병과자의 모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연기의 반대방향으로 가서 적당하게 평평한 자리에 앉아 화산의 소리를 감상했다.

‘쏴아 쏴아’

이 소리는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곡식을 키에 담아 쭉정이를 걸러낼 때 나는 소리와 파도소리가 함께 섞여 있는 듯하다. 세상의 소음이 존재하지 않는 척박한 이곳에서는 용암이 파도치는 소리만 들려올 뿐 모든 것이 고요했다. 묵묵히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일행들 모습을 보니 다들 뭔가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모두 지쳐있거나.


누군가 그랬던가 '젊음이란 철근도 씹어먹을 나이', '젊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한다.'

철근은 도저히 못 씹어 먹겠지만 나는 350달러짜리 고생을 사서 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지극히 용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워낙 겁이 많은 탓에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만을 좇아 살았다. 그런 내가 어느새 내일에 대한 설렘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전과 마주하는 일은 더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가슴 한 켠에 쌓여만 가던 용기는 여행을 시작한 뒤로 유감없이 재고정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4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가며 여행보다는 고행에 가까운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단순히 젊음의 시절에 끓어넘치는 혈기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여행에 있어서 도전에는 거창한 목표나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필요없었다. 애초에 뭔가를 이루겠다는 욕망이 없었기에 도전에는 실패가 뒤따르지 않았고, 실패가 없는 도전에 당연히 좌절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이란 곧 용기를 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거예요."

생각해보면 앞날을 알 수 없는 인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이기에 어쩌면 여행을 떠나기 이전부터 충분히 용기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닌 내가 직접 찾아나선 미지에 세계에서 느낀 인생의 경험은 그간의 용기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최고의 순간을 선사했다. 아마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꿈꾸지 못했을 멋진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록 살면서 가장 극한의 더위와 더러움을 경험했지만 밤하늘에 별과 달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축제는 아래서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이 소소한 행복에는 무엇을 가지면 행복할 거야, 무엇을 이루면 행복할 거야. 와 같은 전제조건은 더이상 필요 없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본다. 지금 내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내 마음은 대답했다. 그 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은 이 순간

지금은 한 순간


행복이란 것은 미뤄둘 수 없으니

지금 남김없이 행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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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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