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 상태에서 방관하거나 같이 체념하였었더라면 지금의 바나나맛우유는 없었을 것이다.
바나나맛우유로 관심을 돌리게 된 반전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데이터분석 결과였고, 다른 하나는 매출 중심에서 수익 중심으로 경영전략을 전환한
리더의 역할이었다.
흰 우유는 수익성이 몹시 떨어진다.
그래서 흰 우유의 매출 비중이 70%이상 되는 Major들은 영업이익율이 3%도 안되는
형편이었는데, 80년대만 해도 은행이자가 10%를 상회했으니 지금 상식으로는 도저히
회사 경영실적이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업들 분위기는 고속 신장 바람이 불어 내실보다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대부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 흐름의 영향으로 유업체들은 흰 우유 매출에 전념을 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원유 수급에 대한 Risk를 안고 가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즉, 흰 우유 매출이 늘어나려면 그 만큼 집유량(농가와 맺는 원유 구입 계약량)을 늘려야 하는데(지금은 완충역할을 하는 조합이 있지만), 집유량이 늘어나게 되면 2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한 가지는 당시 학교 급식 부분이 적지 않아 방학 때 남는 원유의 처리와 비수기로 들어가는
겨울철 원유의 처리였고
두 번째는 남는 원유를 분유로 저장하는데, 이에 따른 재고 비용의 증가와
오래된 분유의 처분 손실로 인한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것이었다.
서울우유는 조합이라 이러한 부분의 고민이 적었으며, 남양과 매일은 분유 매출이 있었고,
해태유업은 치즈라도 있었으나, 빙그레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제품들이 없어서 분유로만
재고의 대부분을 갖고 있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결국은 빠른 분유 소비를 위해
원유함량도 높고, 판매도 괜찮은 바나나맛우유에 안 좋은 분유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소비자에게 외면 받고 바나나맛우유를 죽일 뻔한 일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집유량을 늘려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늘어나는 슈퍼마켓에 빙그레 제품을
입점시키려면 흰우유가 있어야 되었고 그래야 가공유, 요거트, 사워 등 다른 제품도 들어갈 수
있기에 사업부에서는 흰 우유에 집중적으로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86년 말 유가공사업부의 리더인 판촉실장(지금의 조직으로 하면 마케팅과 영업정책 총괄)은 종전 흰 우유 중심의 매출 Drive에서 원가율이 낮아 수익이 좋은 액상요구르트(후에는 service 품목이 되어 수익성이 나빠졌다),바나나맛우유, 요플레 중심으로 매출을 바꾸어 나가야
된다고 역설하고 회사 안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가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빙그레의 액상요구르트는 Market Share가 4%도 안되었었고,
요플레는 그룹사 급식 매출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으며,
바나나맛우유도 매출이 반 토막이 날 정도로 급격히 감소하여
Life cycle상 쇠퇴기의 제품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요직의 부서장급 이상의 인원들이 하고
있던 상황이라, 유가공판촉실장의 연일 설득이 잘 통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회사 내에서는 타 유업체와 마찬가지로 성장을 위한 흰 우유 매출 확장과
당시 급격히 성장하는 과일주스 시장에 관심이 집중되었었기 때문에
유가공판촉실장의 전략 방향이 공감대를 받기가 더 어려웠었다..
그러던 중 내가 분석한 데이터가 유가공판촉실장의 전략방향으로 Drive할 수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