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1-6 1차 성공에 이어 후속적 성공 사례를 이어 갔다.
2번째 단계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시식의 경험을 늘리고 판매처를 늘리는 것인데
대리점 확대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가 늘어나면 관리의 한계를 벗어나고 그러다 보면 기대보다 작은 결과로 조직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1차 행사 대리점에서의 대대적인 성공은 인근 대리점들을 비롯하여 소문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된
대리점 등 자발적인 대리점들의 요플레 취급으로 인해 회사 안에서의 관심의 증대와 붐 조성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전국적으로는 될 수가 없었고 서울과 경인권 상권 중심으로만 확대되었다.
그래서 시행하게 된 전략은 낙수효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즉 서울과 경인권의 분포는 확대되고 있으니, 이 지역 대리점들에게는 리스크 부담을 줄여서 과감하게 진열할 수 있도록 100% 반품을 허락하고 시식물량만을 제공하는 전략을 수립하였고, 전국적인 확대는 음용경험자를 통제 된 범위에서 높일 수 있는 Key account를 활용하면서, 진행 정도에 따라 지역 Key account 인근의
요플레 행사에 참여를 원하는 희망 대리점에 한해서 물량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계획 단계에서는 반품에 대한 예산을 출고량의 30%까지 잡았으나 결과로 난 반품은 10%도
안 되었다.
물론 잠재 수요와 관심 구매 등 초기 구매량의 증가도 있었겠으나 무엇보다도 대리점들의
상 관행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것은 대리점이나 판매원들이 제품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제품을 알리기도 하고
시식도 시키면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 가도록 노력을 적극적으로 했다는 것이었다.
기대보다 적은 반품실적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많이 늘어서 책정해 논 예산은 다 사용을 하였다.
그리고 대리점에서 시식할 수 있는 물량은 사전에 보내주었는데, 그 양이 많아지다 보니,
시식용은 리드(요플레 뚜껑)를 별도로 인쇄하여서 정상제품과 구분되게 관리 하였다.
물론 그것을 판매하는 대리점도 생겼는데 발견되면 철저히 제제하고 영업부와 영업사원들에게도
책임을 지게 하였다.
증정품을 판매하는 물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음에도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증정품을 구매하는 것은,
특히나 새로 알리는 브랜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제품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최선을
다 해서 막았다.
2번째 단계에서 대리점 부분은 이렇게 물량으로만 지원을 하였고, 행사는 당시만 해도 어느정도 소득이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고 소비자들이 비교적 현대적이라고 인식을 갖고 있는 백화점과 유통체인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러한 key account들은 방문객도 많으며, 전국에 있고 회사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어서 전국적으로
확산효과를 효율적으로 올릴 수 있는 채널이었다.
처음부터 이 채널을 대상으로 못 들어 갔던 것은 기존에 이미지가 안 좋았던 것 때문이었다.
회사 직영 채널이었기 때문에 입점이 되었었으나 거의 퇴출 되다시피 한 제품이라
부정적인 이미지로 행사를 하겠다는 접근도 어려웠고 영업 조직에서의 협조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요플레의 갑작스러운 판매 증가는 KA에 제안을 하기에 좋은 기회가 되었고, 행사에 대한 협조를
얻게 되었다.
KA에서의 대리점 지역으로 낙수효과를 잘 내기 위해서 대리점 채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시식 행사 인원을 고용하고 유통조직 직원들(당시에는 회사에서 대리점이나 마트마다 파견한 판촉사원들이 있었음)의 도움을 최대한 받아 가능한 동시에 많은 장소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방향은 3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먼저 대리점 행사에서 얻은 교훈 2가지로
1. 3 Spoon까지 소비자가 시식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하는 행사요원
2.구매로 바로 연결 할 수 있는 시식장소와 제품 진열대의 연결과 구매 Risk mind를 낮출 수
있는 Promotion
단, 반품정책은 사용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업체마다 제품 사입 방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대리점에서의 경험을 잘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전 유통체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있었지만 영업 조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모든 유통체인으로 대리점에서
사용한 방법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과 문제점을 사전에 체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리점 시식행사에서는 연출할 수 없었던
3. Visual과 Color 마케팅으로 제품에 대한 이미지도 세우는 것이었다.
당시 요플레는 고급제품으로 인식된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시식 행사요원들에게 주는 유니폼과 시식대 및 행사에 사용되는 모든 행사도구 등을 Blue로 통일
시켰고, 행사요원들은 일반 아르바이트 비용의 2배를 주고 외모도 심사하여 채용을 하였다.
행사요원은 20명을 선발하여 교육과 Role Play, 1주일에 한 번씩 행사 reviw와 집합 재교육을 실행하였다.,
1주일에 한 번씩 한 이유는 유통체인들은 대리점과 달리 출퇴근 시간을 매장 관리 방침에
따라야 되어서 매장의 휴무일에 맞추어 시행하였기 때문이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생각 했었다면 당연히 소비가 그나마 예상되는 유통체인(KA)부터 시작 했었을 것이고,
그랬으면 대리점에서의 동조 확산 효과도 못 얻었을 터이며, 무엇보다도 행사 운영에 대한
정교성도 못 만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리점부분에서는 행사를 운영 하면서 짧은 기간에 매일 피드백과 교육을 하고 개선을 하여 체계를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나갔는데, 유통체인에서는 1주일에 한번씩만 리뷰를
했었을 터이니 먼저 시작 했었으면 문제점만 쌓여가고 개선은 되기가 힘들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통 체인점은 행사진행 보다는 행사요원 운영이 더 힘들었다.
대리점 행사에서는 현지 행사를 하루에 오후 4시 ~7시까지 단 3시간만 하였고, 행사 현장까지 영업 사원들이 같이 동행 했기 때문에 중간 탈락이 거의 없었으나,
유통체인점은 긴 근무시간과 당시 유통 체인의 특성상 , 근무시간에 매장에서는 판촉여사원을 도와 주기도 해야 하는 등 행사 이외의 일도 많다보니, 힘들기도 하여 행사 요원들이 중간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또,
유통에서의 사람에 대한 교체 요구가 있으면 바로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인원 충원과 신입의 교육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KA에서는 소비자들의 다량 구매를 시도하였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멀티팩이 되었다
매출 목적보다는 대리점의 소매점보다 구매 액수가 큰 곳이기 때문에 가격에 대한 저항감이 적을 듯하여 시도하였는데, 이는 요플레의 확산 효과를 증대 하려면 소비자를 늘리고, 자주 먹게 하여 소비자들이 요플레에
익숙하도록 해야 하는 과정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유통에서의 멀티팩 구입은 구입자의 소비는 물론, 요플레가 냉장고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가족들도 먹어보는
기회로 만들어 소비자의 확산을 누릴 수도 있고, 좋은 상태의 제품으로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3pack 포장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 포장기가 있어서 공장에서 만들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인쇄된 3 pack용 패키지를 현장에 공급 해 주면 매장에서 오픈 전 행사용원과 판촉사원이 만들어서 진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2get 1free로 진행하여 초기 구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도 하였다.
1987년 4월,3개 대리점을 sampling하여 시작한 프로모션이 6개월만에 하루 매출 6~7천개(그것도 거의 그룹사 급식)에서 4만개로 증가하고 서울 중심에서 전국으로 확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4만개에는 시식물량, 반품물량도 포함 되어 있는 숫자였다.
이 때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하루 10만개를 공급할 수 있다는 공장의 생산량은 일 5만개를 넘지 못하고 삐걱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전략에도 차질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어느정도 확산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TV광고도 계획하게 되었으나
어쩔 수 없이 숨을 고를 수 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시식행사는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방까지 시행하였다. 한 푼의 매출 보다는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결과들로 TV CF없이도 감사하게 소비자들은 요거트 시장은 요플레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게 되었다.
그 결과 매출은 86년에 6억원도 안되던 것이 87년에 12억원, 88년에 24억원이 되었다.
이 때 안타까웠던 것은 1987년 요플레 증설에 대한 기회가 늦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예산 심사를 하는 기조실에서는 공장이 삐걱되는 것을 감지하고 요플레를 증설 투자비를
실무자가 검토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투자 우선 순위에서 밀려서 제때 진행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유는 삐걱거리는 포장기를 수리하여 10만개까지 공급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증설에 대한 투자보다는 포장기계 정비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수리했어도 7만개를
넘지 못하였고 급속도로 늘어나는 수요량을 계속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요플레는 증설이 안되어 허덕이고 있던 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한국야쿠르트(hy)에서
드디어 요거트인 슈퍼100이 나왔고, 나오자마자 하루 10만개의 판매를 쉽게 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