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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택 Oct 14. 2024

03 죽을뻔 한 요플레에게도 희망이 생겼어요

파트1-2 호불호가 강했던 요플레

원래 안 되는 제품들의 특징 중 하나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제품이 안될 때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얘기보다는 긍정적인 반응에만 몰입하면서 제품은 괜찮은데 

하고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거나 계속 집착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요플레의 호불호는 입맛의 차이 또는 제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것이었다.

한국화약(현재의 한화) 그룹사를 중심으로 몇 번이라도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불만사항을 

나타내기 보다는  좋은 평가르 하고 심지어 제품의 고급감을 느끼서 선물로도 활용할 정도였다.

시중에서도 요플레를 아는 소비자들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들(주로 20대 여성분들)은  좀 고급진 식품으로 인식하였고 맛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첫맛에서 실망해서 전혀 호감을 갖지 못한 경우와 형상을 보고 상한 제품으로 생각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부류였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이 현상이 처음의 반응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몇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제품이 무엇인지 몰랐고 개선되지가 않은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회사도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판매부진->마케팅 투자감소->조직 관심 저하->판매부진) 그룹사 급식을 제외하면 2~3천 개/일 밖에 안 되는 수준으로 그룹사 급식을 포함 해도 7~8천 개/일 수준이었고 연매출은 7억원 수준이었는데, 일 7~8천 개면 포장기만 돌리는데도 

채 2시간이 안 되는 물량이었으니 그룹사에 제공되는 양이 없었으면 그나마 

생산도 못하고 죽었을 제품이었다.


파트1-3 요플레 회생의 실마리를 찾다.

그야말로 회장의 관심이 아니면 당장이라도 중단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빙그레의 한국화약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정기적 보고하는 사항에 “요플레 매출”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빙그레에서는 중단도 못하고, 시작하고(1983년)몇 년간 개선 내용도 없고, 대책도 없는 보고만 했었을 터이니 얼마나 보고자나 보고받는 사람이나 답답해 했었겠나.

그러다 보니 당시(1986년) 2년차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요플레를 포함하는 유제품 PM을 맡자마자

요플레 대책에 대한 압박이 계속 되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최초 출하여부 검토시 소비자 조사를 했던 한국리서치의 조사 담당자를 만나

조사 당시 요플레에 대해 느꼈던 솔직한 생각을 듣는 것과 내 앞의 담당자들이 수고하면서 겪은 것을 확인하면서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조사 담당자는 다행히도 제품의 반응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판단을 해 주었지만 

파악 하던 중 가장 큰 문제는 빙그레 조직 내부에서는 이미 사망 선고에 가까운 판단을 하고 있었고, 관심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단지, 당시 연희대리점이라고 하는 연희동 지역과 이대와 연대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대리점만이 

요플레에 대한 성공 자부심과(지금 보면 얼마 되지도 않은 양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업 성과에 대해 설명을 열정적으로 해 주었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이 제품에 대해 확신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매일 요플레를 하나 이상 먹기 시작했는데 먹기 시작하고 바로 그 맛에 대한 새로움을 알게 되었고, 주관적인 생각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주변에 선물도 하고 나눠도 주면서 제품에 대한 평을 듣고 요플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은 집단(간호사, 사무실)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집단들이 요플레를 좋아하는 것은 맛있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의견이었으며, 반면에 구입하기가 쉽지 않아(대리점들이 거의 취급하고 있지 않아 유통에 깔려 있는 곳이 상당히 제한 적이었기 때문임)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선도적인 느낌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요플레가 다이어트에 좋다고 느끼는 것은 지금과 같이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연구가 깊게 일어나서 나온

결과는 아니었고, 요플레 포지션을 초기의 아동간식에서 얼마 후, 다이어트 제품으로 바꾸면서 마치 요플레를 먹으면 날씬해 지는 것 같이 마케팅을 한 결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매일 요플레를 한 개 이상 먹으면서 느낀 것은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면서 요플레를 먹으면 

'살이 찌네'는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아! 요플레는 식사를 거르느니 대신 요플레를 먹든가 식사 대용으로 해야 살이 안 찌지 무조건 먹으라고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후에 식사 대용 다이어트 식품으로 포지셔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확신을 갖게 되었으니 다음으로 필요 한 것은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 해 가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가 제품의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너무 적고, 유통에서 취급되고 있는 것이 너무 적다 보니 

구입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현재와 달리 할인점이나 편의점이 없었고 대부분이 대리점에 의해 마트에서 팔리는 

유통 체계였다.

그런데 대리점에서 취급할 의사도 없고 취급도 안 하고 있으니, 음용경험자를 늘리면서 그들이 구매가 쉽게 일어 나도록 하는 것이 숙제였다.

그러니 그 동안 해온 것처럼 무작위로 시식 행사만 해서는 똑 같은 결론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표를 '분포를 늘리되 진열된 곳에서 음용 경험자를 늘림으로써 진열대에서 빠지는 것을 막고 회전율을 높이자'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당시 영업에서는 걸핏하면 사람들이 모르니 광고를 해야 한다고 떠들고, 해결의 핵심 방법인 이 제안에 대해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시 영업 본부장이 광고는 최소한의 분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절대 안된다고

영업에 윽박 지르고 있었고 영업 자체의 힘으로 더 이상 대리점에 요플레의 분포나 취급을

더 이상 늘리기도 한계에 와 있었던 상태(일부 지점은 대리점에 밀어 내기를 하기도 했지만 모두 반품 되거나 하였었다,)라 어쩔 수 없이 내가 하는 일에 전적으로 협조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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