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1 : 한국에서는 요거트 시장이 요플레가 되었다.
파트1-1요플레가 국내 최초의 Yogurt는 아니다.
요플레는 1983년에 도입되었다.
그 이전에 삼양식품 Yogurt가 있었지만 품질이나 마케팅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유명무실되었다.
요플레의 최초 포지션은 아이들 간식이었다.
광고만 아이들 간식으로 되었지 제품의 정체성(what this product is.!)이나 국내에서의 적용 방향 등 마케팅적인 요소는 배제되었다.
도입은 한화그룹(당시는 한국화약그룹) 김승연 회장의 인사이트로 시작되었고
도입을 당연시하며 이루어진 계약이라 계약이 거의 ‘갑’ 위주로 되어 있었다.
회장의 지시 사항이라 당시 별도 팀을 결성하여 (판촉팀) 전략과, 제품의 생산관리, 유통을
한 곳에서 다 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성과가 미흡하면서 해체되고 그룹사 급식 수준으로
급전 직하 되었다.
당시의 기본적인 방향은 고지를 위한 “시식”지역 타겟으로는 당시 early adapter이며, 소비가 가능한 소득 수준 지역인 한남동, 연희동 지역과 이화여대 구내매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매출은 일 7천~8천 개 수준으로 매일 생산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아마도 그때 수준 그대로였으면 Yoplait는 88 올림픽 후라도 매출은 미비하고 한국야쿠르트는 고전하면서 떠먹는 요구르트 시장을 만들었고 요거트 시장은 대명사가 슈퍼100으로 되었든가 떠먹는 요구르트로 되었을 것이다.
원래 서구에는 우리나라의 야쿠르트 같은 것이 없었다. 그냥 Yogurt만 있을 뿐이다.
야쿠르트는 일본에서 개발되어 한국에 들어와 한국에서 마치 요거트의 대명사처럼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요플레와 communication 할 때는 야쿠르트를 Yakult type 요거트라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해외 다른 나라들의 Yoplait프랜차이즈들과 소통할 때도 역시 야쿠르트 타입 요거트라고 하였다.
그 이후 한국 야쿠르트 주도로 yogurt도 아닌 액상 음료인 야쿠르트를 yogurt인양 포장하기 위해 Yogurt의 식품공전적 분류를 하나 더 만들어 호상요구르트라고 했고, 후에는 농후 발효유와 발효유로 구분되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는 Yogurt라는 식품 캐터고리가 혼동 속에 남아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