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⓵-(3) 만두공장에서 점심 먹는 의사

 우리 병원은 몇몇의 유명한 식품공장도 다녔다. 지방에 있는 다수의 공장들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의 수가 적절히 섞여있는 반면 유명한 식품공장들은 지방임에도 대부분 한국인만 있었다.

 이번 만두공장은 평소에도 즐겨 먹는 제품들을 만드는 곳이라 기대가 되면서 이런 식품공장의 점심식사는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도 되었다.


 밀가루 포대와 설탕 포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창고를 지나 허름한 강당으로 들어섰다. 출장 검진의 경우 대부분 공장의 장소를 이용해 검진을 하기 때문에 강당에서 하거나 소규모 작업장은 일하고 있는 장소 옆에서 할 때도 있었다. 그나마 강당에서 하게 되면 동선이나 기기들을 놓을 공간이 넉넉해 편했다.


 새벽 6시 반쯤 도착하여 준비를 마치고 7시부터 검진을 시작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검진을 대기 중인 사람들이 먼저 검진을 받고 이후 회사로 출근해 검진을 받는 사람들이 합류한다. 이것이 우리가 새벽 일찍 눈을 비비며 검진을 가는 이유다. 야간 근무를 힘들게 마치고 이제 집을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검진 때문에 회사에서 2시간 이상 기다린다면 얼마나 힘들까? 우리가 조금 더 힘들더라도 검진팀은 근로자들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유기용제가 넘치는 공장, 카센터 등은 특수검진이 필요할 거 같은데 식품공장에선 왜 특수검진이 필요할까?


 대부분의 식료품 생산 공장들은 주야 가리지 않고 24시간 돌리기 때문에 야간 근무자들이 있고 식품 생산 기계들의 소음으로 인한 정밀 청력 검사도 시행한다. 그리고 식품의 특성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공장은 곡물 분진이 많이 생겨서 곡물 분진과 관련된 폐기능 검사를 시행한다.


 만두는 크게 만두소와 만두피를 만드는 작업이 있다.

 만두피의 경우는 배합비율에 따라 밀가루와 재료들을 배합기에 넣으면 반죽이 만들어져서 자동으로 반죽이 떨어져 나온다. 당연히 밀가루에 의한 곡물 분진이 발생고 작업자들은 분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곡물 분진은 다른 분진 (광물성 분진, 면분진 등등)과 비슷하게 기관지 내 염증 및 과민성을 증가시켜 직업성 천식이나 기관지염을 유발시킬 수 있는데 다른 분진들에 비해 위험성에 대한 재고(考)가 크지 않은 편이다.

 만두소는 다양한 재료들을 세척하고 분리해서 만두소를 배합기계에 넣는데 배합기계가 상당히 위험해서 최근에 여러 건의 끼임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런 기계들을 직접 보고 조언할 수 있으면 회사에도 근로자에도 좋겠지만 여러 이유들로 할 수 없다. 어쨌든 근로자들에게 배합기의 안전장치가 잘 안 되어 있는 경우 꼭 관리자에게 경고할 것을 인지시키는 게 중요하다.

 만두가 대부분 기계에 의해 만들어지긴 하지만 아직도 만두를 예쁘게 빚는 작업은 기계화되지 못했다고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동그랗게 말린 만두들은 일일이 작업자들이 예쁘게 빚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만두들은 냉동상태로 포장되어 전국으로 배송된다.  


 만두 공장의 근로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불만은 무엇이 있을까? 많은 공정이 자동화되긴 했지만 밀가루 포대를 까서 붓거나 재료들을 손질하고 넣고 만두를 빚는 작업에는 여전히 많은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손가락이나 무릎 등의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위생적인 문제로 인해 작업복을 벗지 못하면서 생기는 습진이나 피부염도 더러 있었다. 그나마 대기업급 공장 작업현장 관리나 안전관리가 잘 되는 편이라 근로자들의 안전환경이 좋은 편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기업들을 다녀본 결과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기업을 가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급여나 근무 조건을 차치하고서라도 자잘한 부분에서부터 대기업은 그래도 다르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은 세세하게 챙기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겠지만 근로자들은 그런 걸 따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더 좋은 환경의 대기업을 선택하려는 것 같다.


 정오가 되기 전 검진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식품 공장에 오면 그곳의 식당에서 점심을 제공해 주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알만한 식품 공장의 회사 식당은 얼마나 맛있을지 정말 기대가 됐다. 외부인에게 자기네 회사의 음식이 공개 되니 영양사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5,500원. 식권에 적혀있는 가격이었다. 준비된 음식들을 떠서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 음식을 가리지 않고 불평 없이 먹는 편인데 이번 회사 식당은 좀 실망스러웠다. 맛도 맛이지만 밥과 반찬의 구성이 부실했고 간이 잘 되지 않은 음식들이 있었다. 먹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냉동만두를 까서 그걸 굽고 그걸로 만둣국을 끓이면 더 맛있을 거 같은데....'


 맛있냐고 묻는 영양사님의 질문에 맛있다고 거짓대답을 하고는 남은 음식을 모두 털어 넣었다.


 식당을 지나서 버스로 는 길에 창문 너머로 공장 내부가 보였다. 식품공장답게 아주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실시간으로 포장되는 만두들이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에서는 굉장한 차이가 생긴다. 근로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알고 질문하지 않으면 그저 진료실에 처박혀할 일만 하는 샌님으로밖에 보지 않고 대답도 잘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알려고 노력하면 노동자들이 마음을 열고 빙긋 웃는다. 밀가루를 묻히며 공감해 줄 순 없어도 밀가루를 이야기하며 공감해 줄 순 있다.


 그와중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매년 이런 근로자 검진을 받아야 하는지 불만을 갖는 근로자들이 있다. 검진은 건강한 사람들이 받는 것이지 아픈 사람이 받는 게 아니다. 특히, 특수건강검진은 본인이 속해 있는 공정에 특화된 검진이다. 잠재되어 있는 직업병을 발견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받아야 한다.

 한편으로 이런 불만은 결국 의사들이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사인만 하는 문진이 얼마나 의미 없다고 생각될까?

 근데 생각보다 문진에서 알게 되는 내용이 굉장히 많다. 또한, 의사와의 시간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이 머리에만 머물면 내 만족이겠지만 그걸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 내놓으면 사회적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근로자들과 문진을 하면 그들의 만족도도 올라가고 의사 본인의 만족도도 올릴 수 있다. 그렇게 나부터 근로자들이 건강검진을 받고 싶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려 한다.


 이번 검진은 큰 문제없이 잘 끝났다. 한 가지 아쉬웠다면 그 브랜드 만두 한 알 먹지 못했던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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