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⓵-(5) 여행 좋아하는 의사의 즐거운 승무원 검진

 근로자 건강을 위협해 온 전통적인 유해요인들 (예를 들어 석면, 석탄, 이산화황 중독 등)은 많이 사라졌다.

 반면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과거에는 중요성이 크지 않았던 유해요인들이 추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야근 또는 교대근무에 대해 큰 경각심이 없었다.

많은 연구들을 통해 교대근무 자체가 근로자 건강을 매우 위협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대표적인 특수건강검진 대상이 되었다. 또한 감정노동자들의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요즘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보호가 확대되면서 최소한의 법적보호도 가능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전통적인 유해요인에만 노출되거나 교대근무, 감정노동 등의 유해요인에만 노출되는데 이 모든 것들에 노출되는 직군이 있다.

 바로, 캐빈크루 (객실 승무원)들이다. 

 항공서비스업 자체가 노동집약적이고 대면 서비스가 많다 보니 감정 노동이 많다. 또한, 밤낮 없이 참여하는 불규칙한 교대근무도 있다. 또한 기압변화와 우주방사선 등 전통적인 유해요인도 있다.


 근무 환경은 어떨까? 

탈출할 곳 없는 꽉 막힌 기내좁은 공간은 긴장감을 높이고  지속적인 승객들의 요구 심지어 응급 환자 발생이나 기내 사고 등이 발생하면 캐빈크루가 직접 대응해야 한다. 항공기 도어 닫고 열기, 카트 운반하기, 승객 짐 올려주기 등의 흔한 근골격계 위험 작업부터 복도를 걷다가 난기류에 의해 넘어짐도 발생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승무원의 아름다운 모습 이면에는 이처럼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 현실이 있다.

 나는 비행기속 상황이 병원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Air crew (항공 승무원)라고 통칭하는 분류에는 Cabin crew (객실 승무원)도 있지만 Flight crew (항공기 기장 및 부기장)들도 있다. 의사의 처방에 대해 간호사가 확인하고 환자에게 조치하거나 반대로 환자가 간호사에게 요청해서 필요한 경우 의사의 조치가 들어가 과정들은 항공기 내에서 일어나는 업무 분담과 비슷해 보였다.

 또한, 수술방의 엄격한 분위기는 실수 하나 용납치 않는 업무 특성에 기인하는데 비행기 내 엄격한 분위기 좀 더 나아가 시니어리티 같은 안 좋은 문화 이와 닮아 있다. 수술도 의사만 있어서도 안되고 비행하는 기장만 있어서도 안되듯 아래에서 중요한 업무를 하는 간호사들과 객실 승무원들도 중요한 사람들이다. 경험해보진 못했어도 비슷한 느낌으로 감정 이입을 해서 나는 그들의 검진을 했다.


 나는 비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비행기나 우주선에 어릴적부터 관심이 많아 천문우주학과를 졸업했다. 또한 해외 여행을 좋아해 자주 비행기를 탔다. 나의 즐거운 비행을 도와주는 Air crew (항공 승무원)항상 감사한 분들이었고 동시 그들의 근무 환경을 알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승무원 검진을 하게 되면 묘한 설렘이 있었다.


 한 승무원이 들어온다. 입사한 지 1년 되었다는 그녀. 들어올 때부터 안색이 좋지 않았다. 힘없는 걸음걸이로 겨우 자리에 앉아 대답을 이어 나갔다. 화려했던 승무원의 삶을 꿈꾸며 항공서비스학과를 졸업하여 항공사에 입사 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달랐다고 한다. 잦은 스케줄 변화와 긴장된 근무 환경 등은 밝았던 성격마저 변화시켜 우울증이 왔다고 했다.


 또한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대형 항공사에 합격한 승무원들은 대기업에 입사한 대졸 신입처럼 정규직 채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승무원 인턴이라는 형태로 채용되어 약 1~2년 정도 일하게 되는데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비용항공사(LCC)의 경우 절반까지도 정규직 채용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그만 실수나 억울한 상황들이 한 두 개 보고 되어 정규직 채용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본인도 그런 일이 최근 있어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일단 개입이 필요했다. 

 직무 스트레스 평가와 함께 이 모든 상담 내용은 사측에 비밀로 하고 문진을 이어 나갔다. 최근 객실에서 있었던 승객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기압이 낮은 상공에서는 적은 양의 술에도 빠르게 취한다. 그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이유승무원에 대해 컴플레인 했고 결국 시니어 승무원이 대응해 해결했다. 처음엔 별 말 없던 그 사람은 내가 여러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자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딘가 털어놓고 싶었지만 회사에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의사인 나 앞에서 털어놓는 게 다행이었다.


 30분이 훌쩍 넘는 면담 시간 동안 그 사람은 꽤 많은 변화를 보였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Ventilation (환기) 기법이라는 게 있다.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정적 환기를 할 수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이발사의 병을 낫게 해 준 것처럼 "항공사는 바보 같아"라는 환기를 통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은듯 했다. 이처럼 피검사나 약을 처방하지 않고도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의 처음이 공감과 이해로부터 시작 한다는 것에 아직까지도 변함없다.


 즐거운 순간도 있었다. 

 몇 년 전 기내에서 닥터콜을 경험했다. 코냑 몇 잔에 취해 자고 있었는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내 의사 선생님을 찾는 방송이 들렸다. 옆에 타고 있던 지인이 나를 툭툭 치며 나가보라고 했다.

 협심증이 의심되는 환자를 비즈니스석에 눕히고 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시행했다. 교육이 잘 된 승무원들은 마치 병원의 간호사처럼 내 지시를 잘 따라 주었다. 다행히 환자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인천에 도착해 내리는데 몇몇 승무원이 서서 내게 박수를 치며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셨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때의 순간이 생각나고 즐겁다.



 5년 차 승무원. 여러 신체 검진을 하면서 닥터콜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도 살면서 닥터콜을 요청해 본 게 몇 번 안 되지만 더 힘든 건 기내에 의사가 없을 때라고 했다. 오롯이 객실 승무원이 담당해야 하기에 매우 힘들다고 했다. 그나마 나 같은 의사가 닥터콜에 응해주면 매우 감사하고 평소에도 고맙다며 당사자도 아니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해외를 나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나로선 비행기를 타는게 항상 즐겁지만 그것을 업으로 하고 있는 승무원들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빨리 집에 돌아와서 쉬는 게 좋다는 그들. 하루 종일 답답한 근무복과 구두의 족쇄에 갇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뒤 가장 하고 싶은 건 집에 돌아가 철퍼덕 누워 쉬는 것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감사하며 매번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을 알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힘든 근무환경에 지쳐 들어오는 근로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웃음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도록 공감하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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