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⓵-(1) 인쇄공장에서 업무정지 내리는 의사

 내가 출장 나갔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인쇄하는 곳 하면 복합기로 신문이나 책을 찍어 내는 곳을 생각하지만 공장에 딱 도착하니 동판이나 금속판이 마구 널려있는 야적장이 보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서 내려 검진을 준비했다.

 나는 평소 새로운 곳에 방문하면 공장을 둘러보며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한다. 마치 초진으로 방문한 환자를 이곳저곳 시진, 촉진하듯 공장의 기본적인 환경을 파악해 본다. 공장 내부의 공기는 어떤지, 환기 시스템은 잘 되어 있는지, 냄새는 심하지 않은지를 확인한 후, 나뒹구는 유기용제 플라스틱 병 등을 보고 어떤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본다. 가능하다면 직접 인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좋겠지만 내가 확인하려고 하면 공장주나 근로자들이 막아 서거나 보안 등을 이유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집념을 가지고 도전하다 보면 갓 근무를 시작한 근로자들이 나타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앳돼 보이는 근로자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물론, 기본적인 특수검진 대상 물질들은 사전조사를 통해 파악이 되어 있지만 사전 작업 측정이 완벽하게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첫째는 혹시나 위험 물질이 나올까 봐 작업 측정이 나오기 전 위험 공정들을 멈추는 경우도 있고 둘째는 근로자들이 착용해야 하는 등의 회사의 협조가 필요한 측정의 경우는 불편하거나 목적에 의해서 탈거되어 제대로 측정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전에 파악된 물질은 최소한으로 파악된 것이라 생각 하는 편이고 혹시 누락됐을지 모를 물질들에 대해 염두에 두고 검진에 임하는 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급성 중독 사고는 이런 누락된 사전 조사에서 발생했다. 특수건강검진은 유해 물질을 타겟으로 관련된 부분만 검진을 하기 때문에 누락된다면 아예 파악이 되지 고 뒤늦게 급성 중독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인쇄공장처럼 50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고 법적 규제도 느슨한 편이라 쉽게 발생할 수 있다.


 동판이나 금속판을 이용한 인쇄 공장은 육체적인 부담과 유해물질에 대한 위험성이 높은 편이라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며 (일부는 불법체류자) 60대를 넘은 소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다. 내게 문진을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팔 차림에 드러난 팔과 목 전신에 여러색의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심지어 검은색의 피부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는 흰색 빨간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어 본인의 피부색이 덜 보일 정도였다. 당연히 피부 보호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고 대충 보기에도 방독마스크 같은 건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작년 검진에서 많은 수의 근로자가 직업병 판정을 받은 곳이라 대상 물질들에 대한 문진을 철저히 하였다. 다수의 근로자가 피부질환 (간지럼증) 및 안구질환(충혈 등)을 호소하고 있었고 일부는 근무 도중 어지럼증이나 두통 등을 호소했다. 그중 한 명은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내 앞에서 쓰러졌다. 즉시 공기가 잘 통하는 베드에 눕히고 혈압을 측정했다. 환자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작년 기록을 확인해 보는데 작년 기록이 없는 사람이었다. 즉, 올해 입사한 근로자인 것이다.


 검진을 마치고 회사 내부를 확인하고 싶다고 사장에게 요청했다. 불편할 수도 있는데 흔쾌히 공장을 오픈하셨다. 내가 검진 전에 봤던 공장 내부와는 사뭇 달랐다. 사전 조사 물질에는 포함이 안되었을 불상의 분진이 공장 내부에 있었고 환기시설은 제대로 작동되긴 하는지 조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픈 유기용제 냄새가 강하게 났다. 누구 하나 방독마스크 쓰는 사람도 없었으며 흐르는 페인트에 팔이 젖어도 별스럽지 않게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장은 올해 추가로 설치한 덕트를 가리키며 환기는 완벽하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또한, 나는 보지 않았어야 할 광경도 보고 말았다. 분명 내가 문진 할 때는 보지 못했던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쪽에서 일하고 있었다. 같은 업무를 아니 더 열악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왜 특수검진을 받지 않는 걸까? 분명 신분상의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 검진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비합법 근로자가 많은 공장을 가면 그날은 아예 공장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우리 눈에 발각될까 뒤에서 눈치 보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노동 복지 사각지대이다.


 병원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 인쇄소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생체시료 분석 (각 물질들은 우리 몸에서 대사를 통해 배출되는데 형태가 변하게 되고 바뀐 형태의 물질을 추출해야 최초 유해물질의 추정이 가능하다) 이 필요한 물질들이 있어서 다른 곳보다 오래 걸렸다.

 40명 중 생체시료의 기준치를 훌쩍 넘은 사람이 거의 절반이 되었다. 이는 다른 공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결과였다. 대부분의 공장들은 이렇게 운영하지 않는다. 기준치의 1/10에 미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은 반절 정도의 생체시료에서 기준치를 넘었고 심지어 5배 높은 사람도 있었다.

 또, 재밌는 사실 있었다. 작년에 생체시료와 혈액검사 결과가 좋지 못해 직업병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올해 검진에서 30프로가량 볼 수 없었다. 새로 투입된 30프로의 신입 외국인 노동자는 가장 위험한 공정에 투입되었고 나머지 70프로는 덜 위험한 작업으로 변경되어 일하고 있었다.

 간수치와 혈액 수치가 올라가면 그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서 낮추고 새로운 싱싱한 피를 가진 사람을 투입하여 대응하고 다시 정상이 되면 그 사람들을 복귀시키고 이런 과정이 매년 반복되고 있었다. 퇴사하는 사람들은 정말 몸이 안 좋아져서 일을 할 수 없거나 아니면 자의 타의 반에 의해 권고받고 근무를 그만두는 사람들일 것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에게는 다른 의사와 다르게 공무원의 행정 명령 같은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강제성은 없지만 이행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발각되거나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사업주가 큰 처벌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의 지시를 따른다.

 정말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검사결과가 아주 안 좋아 급성 중독이 의심이 될 경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그 사람에 대해 업무제한 명령이나 영구적으로 업무 불가 판정을 내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업무를 할 수 없고 사업주도 노동부의 조사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인쇄공장에서도 일시적인 업무중지가 필요한 사람이 2~3명 정도 보였다. 그러나 100%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지 않는 한 업무제한 판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이상적으로는 이 모든 검진과 판정이 근로자의 건강을 위하고 근로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내가 그런 판정을 내리면 그 사람은 알게 모르게 다른 이유로 권고사직을 받고 직장을 잃게 될 수 있다. 이것이 특수건강검진 제도가 가진 약점이다.

 

 딜레마다. 결국은 모든 것을 다 고려해야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피검사 결과만 보고 앉아서 판정하면 일률적인 판단은 할 수 있을지언정 사회통념과는 맞지 않은 판단을 할 수 있다. 귀찮기는 하지만 업무 중지 대신 그 사람이 근무 중에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다. 내가 몇 번이고 전화 해서 확인하고 검진을 반복하면 두 가지 모두 얻을 수 있다. 나는 이런것들이 마치 가로등 하나 놓이지 않은 어두컴컴한 길에 랜턴을 비추는 일이라 생각한다. 랜턴을 비추다 보면 그래도 불빛을 보고 제대로 길을 가게 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오늘도 나는 검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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