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근로자 건강검진의 역사를 살펴보면 1953년일반건강검진제도가 도입되고 근로자들의 건강진단을 시작하였지만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근로자들의 건강보호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따라 1982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과 함께 유해인자들을 포함한 특수건강검진이 도입되었다.
특수건강검진은 일반건강검진과 다르게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 또는 기타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들의 보호를 위해 법으로유해인자 약 180종을 규정하고 노출근로자에 대해 검사 기간과 내용을 개별화한다. 각기 다른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근로자들은 유해인자와 연관된 문진과 검사를 시행하게 되고 따라서 특정 유해인자의 노출로 인한 근로자 건강상태 파악에 용이하다.
특수건강검진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가 도입하기 전 산업안전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 독일 등에서 시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특수건강검진 초기 골자는 바로 이 나라들의 제도를 통해 가져왔다.
흔히 발암물질의 분류라고 불리는 IARC(국제암연구소) 기준에 따라 발암물질로 분류된 다양한 물질들, 여러 산업재해등을 통해 인과성이 드러난 물질 및 물리적 인자들 (진동, 자외선 등), 최근에는 유방암 및 심혈관계질환과의 연관성이 드러난 야간교대근무까지 약 반세기가량 축적된 인류보건 및 의학적 연구 등을 통해 현재의 특수건강검진 항목은 결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유해인자들이 산업재해가 발생한 후 추가 되기도 하였다. 안타깝지만 산업보건은 다수의 피해사건들을 통해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산업재해 중 하나인 원진레이온 사건은 우리나라의 산업안전시스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원진레이온이란 회사는 일본 도레이에서 비스코스 인견 (레이온)을 제조하는 설비를 들여와 공장을 세워 운영하였는데 전체 근로자 중 8명이 사망하고 630여 명이 장애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들의 증상은 언어장애, 정신 이상 등의 증세였는데 환기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근로현장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이황화탄소 중독을 일으켰다. 이후 역학조사 및 여러 조사를 통해 정부는 노동자들에 대한 직업병을 인정하고 그때부터 직업병 관리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일렬의 사건들을 통해 현재는 많은 근로현장에서 산업재해가 줄어들게 되었다. 정부, 회사, 근로자들의 인식변화도 한 몫하였지만 점차 체계화된 특수건강검진이 1차적인 예방을 가능하게 하여 다수 발생할 수 있었던 산업재해들을 막았던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아직도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치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긴 하지만 1995년 이후로 꾸준히 감소하여 현재는 10만 명당 사망자수가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부족하긴 하지만 나름 내실을 다져온 특수건강검진의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국가적인 예방사업에 전문가로서 참가할 수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 초기 특수건강검진의 경우는 자격요건을 낮춰 다양한 의사들이 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전문적인 트레이닝 과정을 마치거나 직업환경의학과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전공의들에 한해 특수건강검진을 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되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므로 나 스스로도 매일 공부하고 노력함으로써 잘못된 판정을 하거나 억울하게 근로자건강에 위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한 자들의 세상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실상을 알기 어렵다. 내가 찾아가는 공장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살기 위해 분투중인 곳이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내가 시행하는 특수건강검진 판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법으로 규정된 유해인자로 인한 장애는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