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직업환경의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직업환경의학은 '직업의학(Occupational medicine)'과 '환경의학(Environmental medicine)'으로 구분된다. 직업의학은 노동자의 손상과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의학의 전문분야다. 환경의학은 작업장 외부의 환경에서의 노출로 야기되는 손상과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다루는 의학의 전문분야다.
직업환경의학과는 1996년 법률 개정을 통해 내과, 외과와 같은 전문과목으로 보건복지부 인정을 받았다. 인턴 1년, 전공의 4년을 거쳐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야만 자격을 얻는다.
말 그대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직업의학과 환경의학을 함께 다루는 의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은 직업의학 분야에서 활동한다. 환경의학은 주로 연구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의학의 사회적 역할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수많은 환자들이 원인 미상의 급성 폐질환으로 사망하던 시절 환경의학을 연구하던 의사들이 이를 역학조사를 통해 규명해냈다. 그 덕에 전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밝혀졌다.
반면, 나를 포함한 직업의학을 하는 의사들은 현장에서 직접 근로자들을 진료한다. 그중에서도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만 수행할 수 있는 특수건강검진은 법으로 지정한 공식 제도다. 이 검진은 산업재해와 관련된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유도하기 위해 시행된다. 수요는 매년 늘고 있고 의사들도 덩달아 이 업무에 뛰어들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공장으로 출근하는 의사다.
특수건강검진은 ‘원내 검진’과 ‘출장 검진’으로 나뉘는데, 경쟁이 치열한 요즘은 병원 밖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출장 검진이 주를 이룬다. 나로서도 이 방식이 훨씬 좋다. 의사실에 앉아 근로자의 과거력만 듣고 판단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일터의 공기를 마시고, 기계를 보고 그들의 눈빛을 마주한 후 진료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어느새 나는 근로자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검진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검진 장소는 대개 외곽, 시골 공장들이다. 눈 쌓인 겨울 새벽 산길을 지나던 어느 날. 빙판길에서 차가 미끄러질 뻔했을 땐 순간적으로 소변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는 좋아했다.
다양한 산업을 직접 보고, 다양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는 의사는 흔치 않다. 게다가 요즘 공장엔 한국인보다 외국인 근로자가 훨씬 많다. 60–70대 한국인이 하던 노동을 지금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의 젊은 외국인들이 대신하고 있다. 나는 외국인 근로자의 국적과 언어를 미리 파악한 뒤 필수 문진 표현들을 외워 갔다. 영어는 물론, 베트남어, 태국어, 우즈벡어, 몽골어까지 필요에 따라 하나씩 익혔다. 그들도 내가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걸면 놀라면서도 더 솔직하게 응답했다.
이토록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나를 행운아라 생각한다. 그리고 근무지의 의료 사각지대를 직접 다니며 어두운 곳의 랜턴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수술도 아니고 기적적인 처방도 아니다. 하지만 취약한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는 “당신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나는 그들의 몸을 검진하면서 동시에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 의사로서 나는 어떤 유해 인자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지만 나는 그들이 건강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 때로는 회사 내부에서는 감추어진 문제가 외부 의사에게 털어놓는 작은 문진 한마디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개선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작가 앨버트 허버드(Elbert Hubbard)는 말했다.
직업에서 행복을 찾아라. 아니면 행복이 무엇인지 절대 모를 것이다.
나는 직업을 가진 모두가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을 지켜보는 일에서 나도 의사로서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