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⓶-(3) 너 그거 직업병이야!

 "내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하는 건 직업병이야"

 "너 자꾸 그러는 거 정말 직업병이야!!"


 직업병

 우리가 흔하게 쓰는 단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 직업에 종사하다보면 직종별 습관이 생긴다. 우리는 대개 그런 걸 직업병이라고 부른다.

 

TV에서 한 아나운서가 이런 이야기 한 적 있다.


 "바른 우리말을 전하는 게 아나운서의 역할이다 보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발음이나 단어에 신경 쓰일 때가 많습니다."



 비슷한 예는 의사에게도 있다. 무균처치를 해야 하는 경우 의사는 컨타(Contamination, 오염)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그들의 습관이 종종 다른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식당에서 장갑을 잘 교체하지 않는 요리사가 신경 쓰인다던가 장갑에 대한 이해가 없이 장갑이 만능인양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참견하고 싶어지는 것들이 그러하다.


 이처럼 직종마다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있거나 다른 직종에 비해 반복하는 행동이 많은 경우 업무 중이 아님에도 업무를 할 때 처럼 특정 행동이나 생각이 나오기도 한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며 많은 수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걸 왜 직업병이라고 부르는 걸까? 정말 병일까? 그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직업병에라도 걸렸다는 말일까?

 아니다. 이것은 직업병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 직업적 습관을 보였을 때 "너 그거 직업적 습관이야!"라고 하면 어떨까? 아주 우스울 것 같다. 입에 붙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직업병이라는 짧은 단어가 이 직업적 습관을 대신하게 된 것 같다.


 가끔 미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올 때가 있다.


 "This is your job talking"


 우리말로 의역하면 "너 그거 직업병이야"가 된다. Job talking이라는 표현이 우리의 직업병의 의미로 쓰이는데 어쩌면 우리가 직업병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더 잘 표현하고 있는 예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 직업병이 진짜 무엇일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서 직업병은 무섭기도 한데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보면 직업병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동안 작업 방법이나 환경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질병. 직업병은 그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면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으므로 예방을 위해 작업 환경과 방법을 개선하고 정기검진을 통하여 조기에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산업안전청 (OSHA)에서 정의하는 직업병도 크게 다르지 않다.


 For OSHA recordkeeping purposes, an occupational illness is defined as any abnormal condition or disorder resulting from a non-instantaneous event or exposure in the work environment. Conversely, occupational injuries result from instantaneous events or exposures.
 

 (직업병은 업무 환경 내에서 일시적이지 않은 사건 또는 노출로 인해 발생한 비정상적 상태 또는 질병 (장기간 노출에 의한)으로 정의하며 반대로 업무상 재해의 경우 순간적인 사건 또는 노출로 인한 손상이다.)


 넓은 의미의 직업성 질환산업재해로 인한 질병과 직업 자체가 원인이 되는 직업병으로 구분 가능한데 일반적으로 직업병은 그 직종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요인으로 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석면공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석면폐증이나 폐암이 발생하였다면 이것은 직종이 가진 특정한 요인으로 발생하였으므로 직업병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직업병 발생 요인에는 물리적 원인 (온도, 소음과 진동 외), 화학적 원인 (중금속, 유기용제 외), 생물학적 원인 (세균, 곰팡이 외), 작업 형태적 원인 (작업 형태 및 자세 등) 이 있는데 이런 원인들은 작업환경이 근로자의 건강 보호에 최적이 아닌 상황에서 건강장해를 일으킨다.


 종합하면 특정 업무 환경의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장시간 노출 될 경우 나타나는 질병을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전통적인 개념의 직업병이다.


 그러나, 많은 직업병의 경우 장기간 노출 된 후에 발생된다는 점, 직업성 요인 이외에 많은 비직업성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점이 있다. 또한, 이전에도 말했듯 인체에 대한 영향이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물질도 많다. 그래서 요즘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 업무상 질병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나라의 직업병 인정 사례들은 소음성 난청이나 진폐증처럼 객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질병들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있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재심을 요청하거나 최후에는 소송을 하기도 한다. 재심과 소송에서 중요한 자료 중 하나가 바로 직업환경의학과에서 작성하는 '업무관련성 평가서'이다.


 업무상 질병을 공단에서 바로 승인해 주는 경우는 아주 보수적으로 정의된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경우는 가차 없이 불승인 판정을 받게 된다. 법이나 지침의 경우 변경되는데 굉장한 시일이 걸린다. 그것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게 만들 수 있다. 1960년대-1970년대 만들어진 법률들이 현재에도 적용돼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예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상 질병 승인 과정도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역할은 동떨어진 직업환경적 업무상 요인의 고려를 현실에 맞게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물론 최종 판정은 공단의 판정 위원회 또는 판사에게 있지만 적어도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업무관련성 평가서는 이전의 업무상 질병 판정 평가가 제대로 된 것인지 제삼자에게 다시 물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데 의의가 있다.


 실제로 직업병 인정을 받기 위해 소송까지 가서 인정받은 사례가 적지 않고 최근 더 많아지고 있다. 이는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기에 현 기준은 매우 부족함을 시사한다. 앞으로 새로운 직업병이 인정받게 되는 데에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쓰는 훌륭한 업무관련성 평가서도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 이것도 직업병이다. 흔하게 쓰는 직업병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진다면서도 아직까지 직업병이라는 단어를 대체할만한 우리말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냥 편하게 직업병이라고 하면 되지 굳이 길게 나열해서 진짜 직업병가짜 직업병을 구분해야 했을까? 그렇다 이게 내 직업병이다.


 가짜 직업병은 본인에게 좋은 영향으로 끼치면 그만이고 진짜 직업병은 제대로 발견해서 대처하고 치료받아야 할 것이다. 부디 언젠가 가짜 직업병만 남아서 진짜 직업병직업병을 대신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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