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⓷ 예방을 넘어 검사와 치료로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기

 우리 과의 목적은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에 있다. 대부분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질병 발생 이전의 근로자들을 검진하고 이상이 있는 경우 즉시 작업을 전환시키거나 아니면 근무 중 치료를 권고한다.


 예방의학(Preventive medicine)에서는 예방을 총 3가지로 분류한다.

 1차 예방 : 질병 전 단계.

 2차 예방 : 질병 잠복기 단계 (무증상). 조기 발견이 목적.

 3차 예방 : 질병 발현기 단계. 재활, 직업 복귀가 목적.


 1차 예방은 질병 전 단계에 하는 예방 방법으로 손 씻기, 예방접종 등이 있고 2차 예방은 질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 하는 것으로 선별 검사 등이 있다. 3차 예방은 질병이 발현한 단계에 하는 것으로 중증 장애를 최소화하고 재활을 하거나 직업 복귀를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직업환경의학과가 꿈꾸는 예방은 주로 1차, 2차 예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 발현된 이후 병원에 방문한다. 물론 3차 예방에 대해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도 권고는 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관여는 하지 않는 편이다.


 검진을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피검사부터 영상 검사까지 많은 검사를 했는데 정작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심지어 이상이 있어도 병원에 가라는 상투적인 문구만 건강검진표에 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임에도 "00님 xxx 이유로 내과 방문 요함"이라는 멘트가 무서워 보자마자 달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 문구를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된 내용이 수검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검진을 해서 이상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의 치료도 진행하면 아주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책임하게 검진만 해서 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건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직접 진료를 보고 치료하는 곳은 전국적으로도 많지도 않지만 내가 속해 있는 대학병원급에서 진료를 하는 곳은 내가 알기론 없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과장님을 찾아가 이런 상황을 설명했다. 평소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옳다고 여기는 건 꼭 해야 하는 성질(?)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과장님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시작하라고 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병원의 수익(?)도 증대되는데 원장님도 좋아하셨다는 후문이다.

 물론 모두가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우리의 역할은 직업병이든 일반질병이든 찾아내는데 집중을 해야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료를 한다고 예방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내 시간을 할애할 생각도 있었기에 내 의지를 밀어붙이기로 했다.


 진료 시스템이 아예 없는 곳에 진료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동분서주 움직였다. 진료는 의사 혼자 할 수 없다. 간호사 선생님부터 기타 도와주시는 분들의 협조가 필요하고 또 처방하기 위해 협조가 필요한 제약회사와도 연락했다. 다행히 직업환경의학과로 오기 전 섬에서 근무하며 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적이 있는지라 진료 자체의 부담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검진만 받고 무책임하게 맡겨지는 환자들이 진료를 받게 하는 과정이었다. 특수 건강검진에는 일정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을 참고해서 그것보다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우선 진료를 권고했다. 특히 중증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는 직접 의사가 전화를 걸었다.


  다니는 병원이 없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했다. 실제로, 60-70살까지 약 한 알 먹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매년 1만 명 가까이 검진을 하는 의사 입장에서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은 정말 건강해서 먹지 않는 경우보다 모르거나 귀찮아서 먹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약을 먹고 실제로 나이가 들어서도 더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새벽같이 지방의 공장으로 출근해 출장검진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오면 이전 결과가 나온 수검자들의 결과를 파악해 유소견자 관리를 했다. 귀찮을 법 했지만 난 오히려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보람 있게 일했다. 실제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 진료를 보라고 하면 생전 이런 전화는 처음 받아본다며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전화상으로 다른 건강검진 결과도 설명해 주면 다음번에도 꼭 우리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드디어 유소견자들의 진료 예약이 많아지고 그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만성병으로 약을 복용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약을 평생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안심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설명했다.


약으로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생활습관 개선까지 해보면서 같이 치료해 나가는 겁니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소견을 매년 들었지만 알고만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직접 치료까지 받고 관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아주 심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 사람은 당뇨가 관리되지 않아 무려 당화혈색소 (HbA1c) 수치가 13.0% 넘었다.

(당화혈색소가 6.5를 넘으면 당뇨병을 진단되고 일반적으로 10.0을 초과하면 인슐린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이다) 건강검진 기록을 확인해보니 이미 10년전부터 공복혈당이 상승되어 있었다. 나는 바로 당뇨 합병증 검사를 진행했는데 한쪽 눈에도 이미 중증도 이상의 당뇨 망막병증이 있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고 본인 스스로 몸이 건강해서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이 체계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언제 치료를 받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이런 케이스를 경험하며 보람을 많이 느꼈다.


 현재까지 많은 수검자들이 내게 내원하였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관리받고 있는 환자들도 있다. 나는 직업환경의학과의 전공을 살려 단순한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생활습관과 작업환경에서의 노력 등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 노력은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의료에 관해선 의사가 전문가지만 환자가 모든걸 알고 있을거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이 심하면 오만해 보이기도 하고 기계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다 보면 환자 의사 모두 행복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자기 건강에 대해 이토록 관심이 많은 의사라니...'


 그 환자는 내게 믿음을 갖고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나 또한 그들이 치료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이것이 내가 처음부터 꿈꾸던 "예방부터 치료까지"에서 기대한 결과물이었다.

건강한 사회란 무엇인가?. 김주덕 변호사 기사 발췌

 내가 조금만 더 귀찮아지면 사회가 행복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나는 그 방법을 찾았고 적용하고 있다. 이 체계가 좀 더 자리 잡아 몇천 명 몇만 명의 치료되지 않는 자칭(?) 건강인들의 질병 치료가 시작된다면 더 건강한 지역사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는 앞으로도 더 귀찮은 일을 하고 싶다.



이전 13화 ⓶-(3) 너 그거 직업병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