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지긋하게 든 부모님에게종종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나이가 들면 관절 사이의 연골이 닳아 없어지고 그러면 통증을 느낀다. 퇴행성 관절염 중 가장 흔한 무릎 관절염의 경우 대부분 60세 이후에 생긴다. 퇴행성 무릎 관절염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무릎 외상, 인대 손상, 비만, 다리가 휜 경우 등이 있는데 이러한 요인에 무릎의 사용이 많아지면 60세 보다도 이른 시기에 퇴행성 무릎 관절염이 올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흔한 근골격계 질환과 직업병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 최초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은 근골격계 질환 사례는 1986년 방송국에서 일하던 타자수였다. 그 시기의 우리 사회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증상이 생기더라도 대부분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다거나 나이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즉, 개인적인 질환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이후 1996년 한국통신 전화교환원 근로자들의 VDT 증후군 (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이 문제가 된 것을 계기로 2000년 이후 근골격계 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케이스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2021년 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전체 업무상 질병 인정자 2만 4천 명 중 50%가 넘는 1만 2500명이 근골격계질환 근로자였다.
노무법인 태양 "대표적인 근골격계 질환 종류"
직업병(또는 업무상 질병)은 피해당한 노동자들의 피의 역사이다.
직업병이 아닌 개인의 질병으로 치부하면 노동자들은 상태가 악화된 후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근로 환경의 변화나 작업구조, 작업 자세에 대해 회사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질병을 갖는 근로자들이 양산된다. 그나마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업무상 질병의 구성체계가 근로자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현재는 다수의 업무상 질병이 근골격계 질환이 되었다.
그래서 관련성 평가서를 받으러 오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근골격계 질환자들이다. 현재는 근골격계 질환자들의 업무상 질병 판정이 늘어나면서 과거 인정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기준이 정해졌다. 물론 근골격계 질환도 다양하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 인정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 있는 반면 다툼의 여지가 있는 질환들이 있다. 다툼의 여지가 큰 경우들이 직업환경의학과를 통해 업무관련성 평가서 의뢰로 오게 된다.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판단 기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정하고 있다.
가. 업무에 종사한 기간과 시간, 업무의 양과 강도, 업무수행 자세와 속도, 업무수행 장소의 구조 등이 근골격계에 부담을 주는 업무(이하 "신체부담업무"라 한다)로서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근로자의 팔ㆍ다리 또는 허리 부분에 근골격계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만,업무와 관련이 없는 다른 원인으로 발병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1) 반복 동작이 많은 업무 2) 무리한 힘을 가해야 하는 업무 3) 부적절한 자세를 유지하는 업무 4) 진동 작업 5) 그 밖에특정 신체 부위에 부담되는 상태에서 하는 업무
나. 신체부담업무로 인하여 기존 질병이 악화되었음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 신체부담업무로 인하여 연령 증가에 따른 자연경과적 변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라. 신체부담업무의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급격한 힘의 작용으로 근골격계 질병이 발병하면 업 무상 질병으로 본다.
또한, 근골격계 부담 작업은 고용노동부 고시에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제3조(근골격계부담작업)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작업을 말한다. 다만, 단기간작업 또는 간헐적인 작업은 제외한다.
1. 하루에 4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자료입력 등을 위해 키보드 또는 마우스를 조작하는 작업
2.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또는 손을 사용하여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작업
3.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머리 위에 손이 있거나, 팔꿈치가 어깨 위에 있거나, 팔꿈치를 몸통으로부터 들거나, 팔꿈치를 몸통뒤쪽에 위치하도록 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4. 지지되지 않은 상태이거나 임의로 자세를 바꿀 수 없는 조건에서,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목이나 허리를 구부리거나 트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5.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을 굽힌 자세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6.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지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1kg 이상의 물건을 한 손의 손가락으로 집어 옮기거나, 2kg 이상에 상응하는 힘을 가하여 한 손의 손가락으로 물건을 쥐는 작업
7.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지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4.5kg 이상의 물건을 한 손으로 들거나 동일한 힘으로 쥐는 작업
8. 하루에 10회 이상 25kg 이상의 물체를 드는 작업
9. 하루에 25회 이상 10kg 이상의 물체를 무릎 아래에서 들거나, 어깨 위에서 들거나, 팔을 뻗은 상태에서 드는 작업
10.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분당 2회 이상 4.5kg 이상의 물체를 드는 작업
11.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시간당 10회 이상 손 또는 무릎을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작업
이처럼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은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회전근개 파열 같은 6대 근골격계 질환은 직업력만 확실하면 거의 자동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불인정이 될 경우 근골격계질환 부담작업 수행에 대한 입증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입증 자료들이 충분히 준비 되면 우리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서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의견을 다시 기술한다.
꼼꼼한 자료를 제출하는 사람의 경우 본인이 했던 모든 업무에 대한 서술을 하고 사진이나 심지어 영상을 보내기도 한다.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보내주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그들의 업무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꼼꼼하게 제출한 자료에 의해 재심에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는 경우도 있었다.
중량 작업이 포함된 가구판매업을 하는 사람의 한 예를 보면 최초에는 전체 업무 중 가구 상하차 작업 등 근골격계 부담 작업의 비중을 20% (증빙 없음) 라고 하여 불승인되었다. 그러나 이후 근태 기록이나 증빙 자료를 통해 더 많은 비율의 근골격계 부담 작업을 하였다는 것이 제시되었고, 실제 작업하는 현장의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을 통해 결국 재심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고무신서 나이키까지…신발산업 100년 (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기사 발췌)
지금의 50-70대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아픈 줄 모르고 일하던 세대였다.
그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 신경 쓴 채 본인들의 건강이 나빠지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허리 아프다, 무릎 아프다, 손마디 아프다는 호소가 흔하게 들려서 자식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 대부분도 본인이 한 업무가 힘들었음은 인정하면서 그 업무로 인해 본인의 질병이 악화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게도 나를 위해 젊은 시절을 바쳐 허리와 무릎을 상해가며 일하신 부모님이 계신다. 업무 관련성 평가서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볼 때면 나의 부모님이 생각난다. 그래서 더 열심히 그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업무 관련성 여부를 따져주려고 노력한다.
생각보다 직업병은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이제는 고통받았던 근로자들에게 위로해 줄 시기이고 시대이다. 근로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던 시기에 일하면서 현재까지 고통받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그나마 업무상 질병 인정 과정이 작은 위로가 돼 줄 수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산재 신청과 평가도 문제지만 모르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혹시 가까운 사람이 업무상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는게 의심된다면 한 번쯤 권유해 봐도 좋다.
피의 역사가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을 바꿔왔듯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