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명상 여덟 스푼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말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릅니다.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집에 들어와 소파에 눕습니다.
그냥 나는 누워 있고 싶을 뿐입니다.
다이어리에 적은 일주일 동안에 해야 할 to do list, 하루 동안에 해야 할 to do list들은, 적을 때는 호기롭게 적었지만, 지금은 무거운 짐이 되어 내 마음을 짓누릅니다.
완벽하게 보내야겠다는 이상이 오히려 무언가를 시작하기 더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니 지금 간편하게, 관심을 전환할 수 있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누워서 스마트 폰만 끄적입니다.
간편한 스마트폰 세상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끄적'일뿐입니다.
손가락 질 한 번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정착하지 못하기에 그것들은 잠시동안 나의 관심을 달래줄 환영일 뿐입니다. 환영은 잔상도 없이 모두 기억에서 흩어집니다.
네이버 기사, 웹툰, 유튜브를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시간을 봅니다. 30분이 흘러갔습니다. 30분간 재미있는 거라도 봤으면 모르겠는데, 나는 30분간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30분간 환영을 쫓고 있었던 게 확실합니다.
몸은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있지만, 마음은 인터넷 세상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합니다.
몸이 편한 소파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은 관심을 전환하기 좋은 가십거리 환영들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시간을 흘깃 보며 이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손가락이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마법 같은 환영에, 신기함에 나는 또 클릭합니다.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내 몸과 마음이 무언가에 이끌려 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내버려 두게 되면 진짜로 계속 그대로 하던 관성대로 이끌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는 명상을 하는 사람이니 명상으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벌떡 일어나 소파에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습니다.
5분을 타이머 맞추고 호흡에 집중합니다. 딱 5분만 해보려 합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복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눈이 뻑뻑한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오늘 브런치 글을 안 썼던 게 생각이 나며 이 주제로 써봐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생각들이 이리저리 떠다닙니다. 5분의 시간이 금방 흘러갑니다.
무기력과 귀찮음으로 계속 떠밀려 가던 마음의 버스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주 잠깐인 시간 5분의 멈춤으로 그저 그렇게 무기력한 날로 흘러가려던 24년 8월 29일이 멈춰 섰습니다.
24년 8월 29일 21시 30분에 말입니다.
마음이 변화하니 무언가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간단하게 플랭크와 맨 몸 운동을 합니다. 여자친구와 미뤄 놓았던 결혼식 관련 일들을 처리하고 상의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무기력할 때는 열정적인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열정적일 때는 무기력한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명상을 통해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제 하루에 명상 한 스푼을 부어봅니다.
https://youtu.be/ccvhy8stSC0?si=ob6i3pwcBCKflq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