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명상 일곱 스푼
"여기요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 주세요."
회식에서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술은 사약을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가장 편안한 사람들과 마시는 술은 일 할 때 마시는 박카스처럼 꿀떡꿀떡 들어갑니다.
술을 몇 잔 더 마십니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온몸이 흐느적거립니다.
녹아내린 몸뚱이를 지하철 열차칸에 욱여넣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 앞에 좌석이 하나 비었습니다. 그 좌석에 정착해서 제 몸을 주둔시킵니다. 앞으로 30분 동안 이 좌석은 저 만의 공간입니다. 눈을 감고 등받이에 기댑니다.
잠을 자려고 해도 속이 아프니 온몸이 힘들기만 합니다. 그리고 짜증이 밀려옵니다.
'왜 그렇게 먹어댔을까. 자제 좀 하지... 이렇게 될 걸 몰랐나?'
저를 비난하는 말입니다.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아 그냥 출근하지 말고 그냥 쉬고 싶다. 출근하면서 퇴근하고 싶다. 그냥 자고 싶다.'
몸이 피곤하니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만 합니다.
제 몸과 마음은 현재와 모두 단절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자책하다가, 미래만을 바라보며 지금의 현실을 수용하지 않으려고만 합니다. 제 몸과 마음은 더욱 괴롭습니다.
'어 이거 많이 보던 패턴인데...'
그렇습니다. 명상을 접하기 전에 저 스스로를 학대하던 시기 마음가짐과 똑같습니다.
명상하기 전에는 술 취하지 않았더라도 과거에 저를 자책하고, 오지 않은 미래만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게 스마트폰 보지 말고 책을 봤어야지 왜 그랬니?'
'운동을 좀 더 했어야지.'
'아 그냥 주말만 왔으면 좋겠다.'
과거에 저를 자책하는 말들과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했었습니다. 이게 제가 명상을 접하고 전문적으로 수행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죠.
명상을 하면서 평상시에 마음이 과거와 미래를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안정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이 술을 먹어서 내 몸이 힘든 날에는 여지없이 예전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입니다.
명색이 명상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괴로움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것에 다시 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방황하던 정신을 다시 붙잡습니다. 지하철의 저만의 공간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습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입김이 뜨겁습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입안이 아주 건조하고 텁텁합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약간 위액의 향이 느껴집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머리가 지끈합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 드디어 예전에 내가 하던 호흡의 통로를 인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호흡을 관찰하는 시간 10여분 정도가 지나고 다시 눈을 뜹니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가벼워진 것이 느껴집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저는 그냥 앉아 있을 뿐이지만, 10분 전의 저와는 몸과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술을 먹었으니 몸이 힘든 것은 당연합니다. 내 마음이 몸을 힘든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더 힘들었던 겁니다.
몸이 힘든 이 순간도 지나 버리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힘든 이 순간마저도 생생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재를 수용할 때 저는 더 이상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지도 않습니다.
다시 한번 더 눈을 감고 내 몸을 훑는 바디 스캔 명상을 시행합니다.
축 늘어져 있어서 힘이 없다고만 했었던 몸이 실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목과 허리에서 긴장이 느껴질 뿐 양팔과 양다리는 그대로입니다.
제가 힘이 들다고 생각했더니 진짜 그렇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호흡 한 번에 제 몸을 다 훑고 나니 내 몸은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위장에서는 천둥번개가 계속 쳤습니다만..
30여분의 명상이 끝나고 목적지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 역사를 올라갑니다.
처음에 지하철을 탔을 때는 무겁기만 하던 내 몸이 좀 더 가벼워졌습니다.
몸은 여전히 힘들지 몰라도, 힘든 내 몸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은 변화했습니다.
내 마음이 변화하면 몸도 변화합니다.
오늘도 일상에 명상 한 스푼 부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