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명상 백 쉰여덟 스푼
고전 오디세이는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에 지은 글이다. 트로이 원정에 성공한 율리시스(오디세우스)가 이타카 섬에 돌아오기까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유명한 이야기는 세이렌에 관한 내용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에 독수리의 몸을 가진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거나 정신을 잃게 만들어 배들이 난파되거나 침몰이 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모두 귀를 막고 노를 저어 나가면 된다.
하지만 선장이었던 율리시스는 얼마나 노래가 아름다웠는지 듣고 싶었다. 선원들이 반대 하자. 묘책을 생각해 낸다. 자신을 단단히 묶은 다음,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이 세이렌에게 홀려서 어떤 부당한 지시를 해도 듣지 못하도록 하고 오직 노를 저아라고 했다. 그래서 안전하게 그 해협을 건넜다고 한다. 현재의 율리시스가 미래의 율리시스를 통제한 것이다.
여기 일화에서 비롯하여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통제하는 행위를 '율리시스의 계약'이라고 표현한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라는 사람이 처음 사용한 용어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의지만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을 못할까 두려워 외부적인 힘을 사용해 자신을 제약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변화하길 원한다.
화를 덜 내길 원하고, 마음이 평온해지길 원하고, 돈을 더 벌길 원하고, 공부를 더 하길 원한다. 운동을 통해 더 건강해지길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25년 1월 1일에 다들 이번 연도 세운 목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1월이 지나갔고 2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원하는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가?
https://brunch.co.kr/@kjh2011123/263
큰 의지를 가지고 결심을 내렸다고 할지라도 다시 퇴색될 가능성이 높다. 의지력은 소진되는 자원이고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형태의 세이렌이 많기 때문이다.
원했던 방향을 잃고 첨벙첨벙 바다에 빠져들게 된다.
방향을 원하는 대로 이끌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자기들은 스스로를 잘 믿지 못했다는 말을 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스스로 율리시스의 계약을 맺어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작가는 글을 쓸 때는 그 시간 동안 독방에서, 인터넷이 안되고 글만 칠 수 있는 환경에 자신을 가둔다고 한다. 그렇게 정해진 양의 글을 쓰고 나야 그 방을 나온다고 한다.
모 정치인은 자기가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할 때 잡지나 저널에 자기가 글을 투고하겠다고 약속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짧은 기간 동안에 그 분야에 대해서 엄청난 공부를 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 어떤 환경에 처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중간중간 우리는 변화해야겠다는 의지력이 불타오르는 순간이 온다. 그때 해야 하는 것은 한꺼번에 무언가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도록 구체화하는 것이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위해서 자발적 규제를 하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해?'
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나와 다른 내가 되길 원한다면, 현재의 나의 지식과 역량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굳이 그렇게 까지 해서 미래의 환경을 만듦으로써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와 연결되는 모습이 율리시스의 계약이다.
정리를 하자면
미래의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선
1. 어떤 자극을 통해 대오각성 크게 깨닫은 뒤 굳은 결심을 하고
2. 그 결심을 꾸준히 해나갈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환경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에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P.S
내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브런치 글을 올리겠다고 하는 것도 글을 쓰기 위한 하나의 계약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계약은 집중해서 할 때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 스마트 폰을 보이지 않는 곳에 둔다. 다른 방안에 두거나 먼 곳의 서랍 안에 둔다. 가져가는 것이 굉장히 귀찮도록.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세이렌은 스마트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