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Oct 20. 2021

송악산으로 떠나는 역사 교훈 여행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제주의 아픈 상처들  

 풋풋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과 전국일주를 했다. 거창하게 말은 전국일주라고 붙였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자전거 여행도 아니었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 대표 도시는 빼놓을 수 없어서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서울-대전-목포-제주-부산을 두루 둘러보았다. 경주 수학여행을 제외하면 나고 자란 도시를 처음 떠나본 우물 안 개구리들이었다. 그때 처음 이국적인 섬 제주와 만났다. 강원도 시골 개구리들에게는 온통 신기할 것 투성이인 섬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토록 오랜 시간을 제주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게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 여행자로 제주와 만난 이후 웬만한 관광지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제주의 이곳저곳을 누볐다. 출장으로도 자주 제주를 찾았다. 많을 때는 1년에 대여섯 번이나 되었다. 비록 출장 가서는 사무실에서 온종일 회의하느라 바깥 날씨가 좋은지 눈비가 오는지 모를 때가 많았지만, 제주로 향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출장길이 즐거웠다. 제주는 생각만으로도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섬이었다.    


 한달살이를 준비하면서 제주 공부를 하려고 책을 한 열 권쯤은 장만했더랬다. 신화와 전설에 관한 책, 역사에 관한 책, 오름에 관한 책, 무속 신앙에 관한 책 등 다양했다. 이전까지 제주 여행이 '놀멍 쉬멍' 콘셉트였다면, 적어도 한달살이는 진짜 제주를 알아가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아빠 병'이 도진 지도 몰랐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모처럼 시간을 비워 한달살이를 하는데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시간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제주 관련 책을 읽다 보니 아름다운 섬 제주에도 가슴 아픈 상처와 눈물이 곳곳에 배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4·3 사건도 겨우 알아가는 과정이었는데 4·3이 전부가 아니었다. 송악산(松岳山)과 섯알오름에도 빼어난 경치만큼 가슴 아픈 이야기가 서려 있었다.  

<송악산과 그 일대는 제주의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이다.>

 송악산과 섯알오름이 자리 잡은 대정은 제주에서도 거친 풍토로 악명 높다. 바람도 거칠고, 땅도 거칠고, 바다도 거칠다. 어찌나 모진 바람이 부는지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도 '바람의 고향'이라고 불린단다. 모래바람 때문에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는 '모슬포'도 송악산 근처에 위치한다. 땅은 얼마나 척박한 지 크고 거친 돌들이 많아 농사짓기에도 여간 힘들지 않다. 대정 주민들은 억척스럽게 땅을 골라 비옥한 농토로 만들었고 그곳에서 마늘과 감자를 키웠다. 서귀포 올레 시장에서 유명한 '마농(마늘) 치킨'의 마늘이 대부분 대정에서 자란다고 하니 거친 땅에 들인 주민들의 피, 땀, 눈물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대정의 앞바다 역시 물살이 빠르고 거칠어 제주 어디에서나 쉽게 잡을 수 있는 자리돔도 이곳에서는 좀 다르다. 뼈가 억세어 물회로 먹으면 그 가시 때문에 곤란함을 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대정에서 잡은 자리돔은 주로 구이로 먹는단다. 


 거친 땅에 전쟁의 생채기는 더 깊게 패어있다. 패망 직전 일본은 제주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아 7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했다. 제주 곳곳에 군사시설을 설치했고 그 흔적이 아름다운 제주의 상처로 고스란히 남았다. 일제가 판 진지동굴이 대략 700여 개라고 하는데 송악산 능선과 해안에서 발견된 진지동굴만 60개가 넘는다. 송악산 해안 진지동굴은 해상으로 들어올 연합군의 함대를 막기 위해 송악산 절벽을 뚫고 그 안에 소형 선박을 숨겨놨다가, 폭탄을 싣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용도였다. 진지 구축을 위한 노역에 제주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현재는 송악산 일대에 15개의 진지동굴이 남아 있다. 한때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기념 촬영을 하던 동굴에 이토록 가슴 시린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나 역시 이 동굴 앞에서 몇 차례나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천연 동굴로만 알았지 이런 사연이 잠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진지동굴 근처에 갈 수 없다>

 송악산 북쪽 자락에 있는 섯알오름에는 일본군의 대공포 진지와 제주에서 가장 큰 진지동굴이 있다. 형제섬, 산방산, 한라산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그림 같은 경치를 가진 이 오름에 전투 사령실,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 수리 공장 등 중요 군사 시설을 감추기 위한 진지동굴이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일본군이 섯알오름에 대형 지하기지를 구축한 이유는 알뜨르 비행장 때문이다. 알뜨르는 ‘아래 있는 넓은 뜰’이라는 의미인데 이름이 참 정겹다. 일본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중국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 험한 일 역시 오롯이 주민들 몫이었다. 중일 전쟁 당시 난징이나 상하이를 공격하기 위한 폭격기들이 중간 급유를 위해 알뜨르 비행장을 경유했다. 악명 높은 카미카제 조종사들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넓은 들판 곳곳에 20개의 격납고가 있으며 현재는 19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섯알오름에는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가 그날의 참혹함을 말해 주는데, 불순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양민 200여 명을 정당한 절차 없이 희생시켰다. 때로 비극은 연거푸 일어난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산책하듯 오르는 송악산은 뭍사람에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원함을 선사해 준다.>

 송악산은 파도가 절벽에 부딪쳐 물결이 운다고 하여 '절울이 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제주의 서남쪽 모퉁이,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곶(코지)이 송악산이다. 송악산은 얼핏 보면 산이라가 보다는 언덕 같은 모습이다. 오르는 길도 평탄하게 정돈되어 있다. 정상까지 약 20여분이면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데, 들이는 품에 비해 정상의 풍광은 제주의 다른 절경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형제섬, 산방산, 가파도 그리고 마라도까지 시원한 풍경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인간으로 인해 그토록 큰 아픔을 견뎌야 했던 송악산이 인간에게 내어주는 풍경은 역설적이게도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또 평화롭다. 가끔 머리를 흩뜨려 트리는 억센 제주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는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고….'  


 전쟁이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다크 투어리즘 또는 블랙 투어리즘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원자력 발전소 화재로 방사능이 유출되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 구 소련(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설명이 필요 없는 9·11 테러가 발생한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인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가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아픈 역사를 통해 배우고 반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실수하기 쉬운 존재이므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국립국어원에서 다크 투어리즘을 ‘역사 교훈 여행’으로 우리말 다듬기를 했는데 조금 투박해 보여도 참으로 마땅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예상 밖으로 아이들은 송악산 일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빠의 지루한 설명이 한참이나 계속되었는데도 말이다. 다음에 송악산을 찾을 때에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란다. 그러마 약속했다. 아빠 참 어렵다. 

이전 07화 외면하고 싶은 역사와 마주하는 4·3 평화공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