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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l 01. 2024

당귀예찬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 만난 당귀는 그 자체로 생명의 기운을 가득 품었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워내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세상의 풍파를 견디는 우리네 모습 같았다. 아, 당귀, 당귀여. 당귀의 쓴맛은 인생의 그것과 닮았다. 우리는 때로 그 쓴맛을 삼키며 성장한다. 당귀는 어떤 땅에서도 단단히 뿌리내린다. 대지의 품 속에서 당귀는 생명력을 흡수하고, 우리에게 건강과 위로를 선사한다. 한약재로서 가치를 넘어, 당귀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된다. 저녁 무렵, 산길을 걸으며 만난 당귀 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 향 속에는 자연의 숨결이 담겨 있다. 당귀와 함께하는 시간은 고요하고 깊다. 작은 풀 한 포기지만, 그 안에 온 우주가 깃들어 있다. 삶의 굴곡 속에서 꿋꿋이 뿌리내린 당귀처럼 나도 나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면서도, 결코 부러지지 않는 당귀. 그 속에는 인내와 희망이 담겨 있다. 당귀를 보며 다시금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연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당귀처럼 당당하게 땅을 딛고 일어선다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당귀의 뿌리가 그렇듯, 우리 마음도 단단해야 한다. 산속 깊은 곳, 그곳에 당귀가 피어 있다. 나도 그처럼 굳건하게 서리라 다짐해 본다. <김훈, '당귀예찬' 중에서>


당귀(當歸), '마땅히 돌아오다'라는 뜻을 가진 당귀를 만난 건 김훈 작가의 수필이나 한약재 성분 표기 같은 일상에서였습니다. 쌍화탕 냄새의 실체가 당귀라고도 하지요. 아무튼, 실제로 먹을 일 없는 약초로만 여겼더랬습니다. 어느 날, 아주 우연히 당귀를 '당귀전'으로 처음 마주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만 같았습니다. 향긋한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맛이 얼마나 뛰어난지, 몸에 좋은 건 말할 것도 없을 테니, 이렇게 완벽한 음식을 왜 여태껏 먹지 않았을까 엄청 후회했습니다. 당귀전을 한 입 베어 문 미식가 아내의 두 눈도 번쩍 뜨였습니다. 당귀, 여러분도 드셔 보셨나요. 


여성에게 특히 좋은 당귀가 한약재로 쓰이는 건 주로 뿌리입니다. 월경을 조절하고 월경통을 제거해 주는 효능이 있어 '여성들의 인삼'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데쿠르신(Decursin), 데쿠르시놀 안겔레이트(Decursinol Angelate), 페르퀴놀릭산(Ferulic Acid) 같은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항암 작용, 항염 효과, 항산화 작용, 면역력 강화, 피부 노화 방지 등 다양한 효능을 자랑합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혈액 순환을 개선해 주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까지 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제게 이보다 좋은 식재료는 없을 테지요. 당귀전의 매력에 흠뻑 빠진 바로 다음 날 한 평 텃밭에 당귀 선생을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로 세 해 째 선생은 여전히 텃밭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귀잎은 쌈 채소 중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한 평 텃밭에선 상추만큼 많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잎은 잎자루 양쪽에 여러 개 작은 잎이 새의 깃 모양처럼 붙어 있는 '우상복엽(羽狀複葉)' 형태인데 한 쌈에 잎사귀 하나를 세등분해 먹습니다. 적은 양으로도 당귀의 독특한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통째로 먹으면 약간 씁쓸한 맛이 나기도 하고요. 당귀가 들어간 쌈과 들어가지 않은 쌈의 맛 차이는 실로 엄청납니다. 마치 당귀가 들어간 쌈은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습니다. 


말린 뿌리는 당귀차로 마시고 닭고기나 돼지고기와도 궁합이 좋습니다. 다만 여성 몸에 좋다고 해도 임산부는 섭취하지 않는 걸 권한다고 합니다.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몸에 열이 많은 사람 또한 섭취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고요. 과다 섭취 시에는 두통이나 소화 불량을 유발할 수 있어 적당량을 섭취해야 합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 아시죠. 음식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당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쯤에서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습니다. 사실 김훈 작가는 '당귀예찬'이라는 수필을 쓰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귀에 관해 김훈 작가가 수필을 쓰면 어떤 글이 나올까 하고 ChatGPT에게 질문한 결과가 바로 위에 있는 '당귀예찬'입니다. 작가의 필체가 느껴지셨나요? 김훈 작가가 이런 수필을 썼던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있었을 테지요. ChatGPT가 내놓은 글을 보고 아직 인간을 따라오려면 멀었구나 싶다가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시간이 5초도 채 되지 않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AI 산업에 대해 제 마음이기도 합니다.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각설하고, 그 어떤 위대한 소설가의 찬양 없이도 당귀는 충분히 매력적인 식재료입니다. 오늘 점심에도 당귀 한 쌈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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