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입 짧은 아이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하루에 한 끼도 채 먹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밥상 위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들로 가득했습니다. 온갖 찌개류, 생선류, 조림류 등 어린아이가 먹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볶음, 어묵볶음, 진미채, 콩자반 같은 반찬들은 왠지 '어머니의 밥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키가 작은 건 어쩌면 팔 할이 편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대'가 정말 사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적어도 입맛에 관한 한 말이지요. 어머니 밥상이 임금님 수라상 못지않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고추나 양파는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평생 입에 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누나들이 양파 한 조각이나 풋고추 한 입만 베어 먹어도 거금 천 원을 주겠다고 베팅했을까요. 일벌레로서 회사생활은 회를 포함한 수산물과 육고기의 참맛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러키비키' 하게도 빡센 회사는 '먹는 것'엔 관대했습니다. 좋은 음식 원 없이 먹었더랬습니다. 여전히 전복이나 굴, 멍게는 엄두도 못 내지만, 웬만한 음식은 거뜬히 먹습니다. 입 짧던 아이가 드디어 '일반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고기나 회를 먹을 때 상추가 없으면 무척 곤란합니다. 어쩌다 한 점 맛보기로 그냥 먹을 때도 있지만 역시 대부분 말 그대로 쌈 싸 먹습니다. 언제부터,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추론해 보건대 생선의 비릿함이나 고기(지방)를 먹는다는 죄책감을 희석시키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상추 두 장을 넓게 펴 고기 한 점 올리고 쌈장을 찍은 마늘과 고추를 올려 동그랗게 벌린 입에 욱여넣으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생선구이를 먹을 때도, 족발을 먹을 때도, 심지어 오징어젓갈을 먹을 때도 상추가 필수입니다. 이 정도면 삶의 모토가 '쌈, 마이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쌈 덕후'라도 한 가지 원칙은 있습니다. '레이업 슛에서 왼손은 거들뿐'인 것처럼 쌈은 메인 요리의 보조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메인 요리가 없다면 당연히 쌈도 없는 것이죠. MCU보다 더 SF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같은 농촌 드라마에 클리셰로 자주 등장합니다. 갓 따온 상추만으로 쌈 싸 먹는 장면 말입니다. 윤기 좌르륵 흐르는 삼겹살 한 점 없이, 너무 싱싱해 투명해 보이기까지 한 회 한 점 없이 쌈 싸 먹는 게 말이 되는지요. 물론 풋고추가 거들긴 하지만, 적어도 제건 억지스러운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그 억지스러운 장면이 어느덧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평 텃밭에서 수확한 쌈 채소들이 냉장고를 가득 채우면서부터였습니다. 몇 해 전부터 다양한 샐러드로 변신했는데 올해는 그것도 귀찮아졌는지 쌈 채소가 메인 요리가 되었습니다. 풋고추와 오이가 거들지만 주인공은 역시 상추입니다. 신기하게도 고기나 회 없이, 상추와 밥과 고추장으로만 구성된 한 쌈이 정말 맛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상차림으로 밥을 먹을 때면 잡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입안에 쌈이 가득해도 눈은 이미 다음 쌈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으니 잡다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먹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성스러운 활동입니까.
이제야 깨닫습니다. 농촌 드라마의 클리셰 장면들이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는 걸. 왜 그런 밥상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말입니다. 고민거리가 많은 날이면 여지없이 쌈채소와 고추장을 꺼내 한 쌈 푸짐하게 싸 먹습니다. 그 많은 고민거리가 당장 해결되진 않지만, 건강하게 한 끼 해결하면 또 어떻게든 빈 틈을 찾게 됩니다. 잘 먹는다는 게 꼭 푸짐한 상차림을 의미하진 않나 봅니다. 고민거리가 많다고요, 잡념이 머리를 어지럽힌다고요? 싱싱한 상추에 밥 한 술 가득 넣은 한 쌈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