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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원 May 18. 2022

세 사람의 배신, 색깔 전쟁의 종결

4부, 칸토 팝과 홍콩의 오늘(2-2)

 연예계를 대상으로 한 색깔 전쟁은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색에도 등급을 매겨 “짙은 남색(深藍)”, “금빛이 나도록 황색(黃到發金)”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연예인이 등장하면, 그의 과거행적을 찾아보거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그의 색을 가려내고자 했다. 단순한 SNS 게시물에도 의미 부여가 이루어졌다. 한편, 이런 홍콩인들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 활동을 위해 남색으로 갈아타는 이들도 있었다. 가장 먼저 남색 선언을 하여 대륙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은 미리암 영(양천화), 논쟁 가운데 있던 파코 차우(주백호), 갑작스레 중국 인권 문제에서 중국 편을 선언 이슨 찬(진혁신)이었다.     


2019년 8월 14일, 미리암 영의 웨이보 게시물

 미리암 영은 2019년 8월부터 일찌감치 중국 공산당 지지에 나섰다. 중국 정부에서 기획한 예술인들의 홍콩 시위 반대 SNS 릴레이인 “열애조국(熱愛祖國)”에 참여하였다. 이를 두고 소속사에서 중국 정부가 요구한 문장을 그대로 올린 것일 뿐이라며 변호하는 의견이 잠시 있었지만, 그해 12월 이러한 의견은 사라진다. 마카오 반환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며 감격에 찬 얼굴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이어서 SNS를 통해 홍콩 시위자들을 비난했다. 시민들은 크게 배신감을 느꼈다. 이 때문에 그녀는 홍콩인들 사이에서 그녀는 “내가 가장 혐오하는 가수 1위”에 뽑히며 홍콩에서 완전히 신망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에 협조적인 홍콩 스타라는 그녀의 정체는 그녀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그녀는 여러 영화와 방송에서 쉽게 배역을 얻어냈으며 홍콩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러 행사에 자주 초청되었다. 2021년, 그녀는 뻔뻔함을 더했다. 홍콩의 전설적 여가수 아니타 무이(매염방)의 전기 영화가 개봉함에 따라 그녀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홍보하려고 한 것이다. 아니타 무이는 천안문 학살을 비판하며 홍콩에서 사회 공헌에 적극적으로 나서 “홍콩의 딸”이라 불리던 이였다. 그러나 미리암 영은 이러한 이야기를 전부 지우고 그녀가 홍콩 최고의 여가수였다는 사실만을 부각했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칸토 팝 문화에서 불편한 구석을 없애고 싶었던 중국 측의 의도와 맞아 떨어졌고, 연일 각지의 위성방송에 그녀가 출연하게 되었다. 시민들의 사랑은 모욕되었다.


 파코 차우는 팬들의 변호를 뒤로 하고 친중 뉴스 프로그램 "닷뉴스(點新聞)"에 출연하여 “남색”에 속하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폭력을 늘 반대해왔다”라며 조슈아 웡을 비판하는 다른 출연자의 말에 동조했고, 중국과 홍콩의 갈등은 “나와 우리 엄마의 말다툼 정도(自己跟媽媽吵架)”이며 그러므로 “옆집 아줌마를 불러와서 우리 엄마를 때리라고 할 이유가 없다(沒理由去找隔壁家的大嬸來打自己媽媽)”라며 국제연대를 추구하던 젊은 세대를 조롱했다. 그의 옹호자들이 그가 “황색”에 속하며 그의 웨이보 글은 소속사의 뜻일 뿐이라는 근거로 늘 사용했던 사진조차 부정했다. 자신은 조슈아 웡이 누군지 모르고 사진을 같이 찍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변호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그가 황색에 속하길 바랐던 대중에겐 배신이었다.     


 이슨 찬의 배신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특정한 견해를 표명하지 않고 활동에 전념하곤 했다. 게다가 그는 2000년대 홍콩 발라드 열풍을 이끌었던 가수이다. 그의 주요곡 작사를 맡았던 람젝과 웡와이만은 모두 황색을 대표하는 예술인이었다. 바쁜 대륙 활동 속에서도 묵묵히 계속 광동어로 곡을 발표하는 그를, 사람들은 심정적으로는 황색으로 여기기도 했다. 색깔 전쟁이 싫었던 이들은 그의 노래를 일부러 찾아 듣기도 하여 발표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그의 곡, ‘노래방의 왕(K歌之王)’(2001), ‘내년 오늘(明年今日)’(2002) ‘포도가 익을 때(葡萄成熟時)’(2005), ‘후지산 아래서(富士山下)’(2006) 등이 계속 홍콩 iTunes 차트 100위에 올라왔다.

이슨 찬은 신장 인권 문제를 비판한 아디다스가 "중국을 모욕하는 행위"라며 광고 계약을 중단했다. 신장 면화 사랑 대열에 오른 것이다.

 홍콩인과의 밀월은 2021년, 그의 웨이보 글로 깨지고 만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신장 지역의 인권 문제로 공방이 오가던 가운데, 미국이 신장 지역에서 생산된 면화의 수입을 금지하자 많은 중국 연예인이 “나는 신장의 면화를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를 SNS에 올려 인권 논의를 은폐하고자 했다. 이슨 찬은 이 대열에 올랐다. 신장 주민의 인권 문제를 보며 동질감과 우려를 느끼던 홍콩인은 그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서 빠르게 지워버렸다.  그는 중국 연예인 신분이 되어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 홍콩 시민들과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두 사람의 배신은 결국 색깔 전쟁을 식어들게 했다. 사람들은 연예인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은 양 허탈해했다. 자신이 좋아하던 스타가 파코 차우처럼 또는 이슨 찬처럼 남색으로 돌아서며 자신들을 배신할까 두려워했다. 2021년 봄부터는 가수들의 색깔을 묻는 게시물이 더는 LIHKG 등 커뮤니티에서 인기 게시물이 되지 않았다. 비아냥대는 댓글이 주로 달렸다. 이미 분명히 남색이 된 가수들에 대한 비토만이 쓸쓸하게 남았다.     

이슨 찬을 조롱하는 사진. 마오쩌둥 주석과 그를 합성하고 앨범 형식으로 꾸몄다. 그의 성을 광둥어(Chan)가 아닌 보통화(Chen)로 적은 것이 홍콩시민의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홍콩 대중이 이토록 가수들의 색깔을 두고 오래, 열띠게 싸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칸토 팝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자긍심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국에 눌려 정치적인 목적도 이룰 수 없고, 홍콩 정부는 홍콩 시민의 편이 아닌 부자들과 중국인들의 편이 되었다. 경제나 과학 기술에서도 중국이 빠르게 부상하여 2022년 현재, 홍콩이 중국 대륙보다 이러한 분야에서 앞선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세련된 도시 문화와 시민 의식, 그것만이 홍콩인에게 남은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가질 요소가 되었다. 그 자긍심이었던 이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배신하고 돈을 벌고자 중국으로 떠난 것은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이제 파코 차우나 이슨 찬의 신곡을 듣지 않는다. 미리암 영의 중국 활약은 종종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이들에게 비난도 하지 않으며 철저히 무시한다.  확실히 황색인 것으로 검증된 새로운 스타들에게 눈길을 돌려 그들에게 빠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순수한 황색인지 강조하는 글이나, 배반한 스타들과 비교하는 글들이 많은 것을 보면, 중국으로 떠난 이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나 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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