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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원 May 16. 2022

열광의 이면, 소모적 색깔 전쟁

4부, 칸토 팝과 홍콩의 오늘(2-1)

 2019년 이전의 홍콩인에게 정치란, 삶의 영역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해 9월 홍콩인들의 사고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삶의 영역이 급격하게 정치화되었다. 사람들은 두 편으로 서로 가르기 시작했으며, 편이 다르면 서로의 가게를 이용하지 않았다. 음악도,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편이 아닌 가수의 음악은 듣지 않고, 자기 편이 아닌 배우의 영화는 보지 않았다. 도시가 반 쪽이 났다.      


 이 사건을 홍콩에서는 “황색과 남색의 싸움(黃藍之爭)”이라고 부른다. 양 진영의 상징이 각각 황색과 남색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 사건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는데, 필자는 “색깔 전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우리 사회의 색깔론과도 비슷한 소모적 논쟁이었기에, 구체적인 색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4년 민주화 시위의 황색, 2019년 경찰 지지 집회의 남색

 색깔 전쟁의 두 색부터 알아보자. 황색은 1986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를 축출한 피플 파워 시위에서 사용된 이후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떠오른 색이었다. 태국, 대만 등 다양한 나라에서도 사용했으며 홍콩에서는 1989년 톈안먼 학살 규탄 시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색이다. 반대로 남색은 서구 여러 국가에서 보수성을 상징하는 색이다. 영국 보수당, 프랑스 공화당, 독일 기독민주연합, 네덜란드 기독민주당 등이 모두 남색 계열의 색을 사용한다. 홍콩의 친중-친기업 정당들은 이 색을 사용한다. 제1정당이며 중국 공산당의 어용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民主建港協進聯盟)과 기업인들이 주축인 자유당(自由黨)이 대표적이다. 양측은 색깔 전쟁 이전에도 상대편의 색에 “끄나풀(絲)”, “시체(屍)”, “돼지(猪)” 등의 단어를 붙여 비하하였다. 그러나 평상시에 이와 같은 색깔로 정치를 언급하는 행동은 지양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나 “수구꼴통”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이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홍콩의 젊은 세대는 이미 세뇌 되었다. 나는 그들을 버릴 수 있다"라며 망언하는 응숙쳉(왼쪽), 그녀의 집안이 소유한 요식업 브랜드들(오른쪽)

 색깔 전쟁은 2019년 9월 시작되었다. 정부는 몇 달째 이어지는 대규모 시위에도 크게 물러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 참여자들을 탄압하며 해외에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때, UN 인권이사회는 홍콩의 상황에 대해 듣기 위해 증인을 초청한다. 홍콩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며 참여한 응숙쳉(伍淑清, 오숙청)은 이 자리에서 시위대들을 비난하며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그녀는 홍콩 최대의 요식업 기업, 맥심(Maxim, 美心)의 창업자인 응짐닥(伍霑德)의 딸로 “맥심의 황태녀(美心皇太女)”라고 불리던 인물이며 홍콩의 친중 정치단체들에서 다양한 자리를 거치며 중국의 정치협상회의(형식상의 상원 의회) 의원을 역임하기도 한 대표적 친중 인사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했던 홍콩인들은 해외에 홍콩 대표를 자처하며 진실을 호도하는 그녀의 발언에 크게 분노했다. 그와 반대로 홍콩의 영세 자영업자들은 시위자들에게 음식이나 물을 제공해왔다. 이러한 행위의 결과로 친중 단체들에게 테러를 당한 가게들도 있었다.     


 홍콩인 사이에선 ‘우리 편 가게를 사용하여 우리를 지키고, 저들 편 가게를 무너뜨려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생겨난다. 시위자들을 지원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가게는 “황색 가게(黃店)”, 친중 인사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대형 프랜차이즈나 정치적으로 친중 성향을 보이는 자영업자의 가게는 “남색 가게(藍店)”으로 불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각 가게가 어느 색인지를 나눈 리스트가 공유되었다. 당연히 이들은 황색 가게만을 찾았고 남색 가게는 가지 않았다.

홍콩 최대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LIHKG의 "황색 가게" 일람

 맥심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 요시노야 등은 원래 젊은 층이 주 고객이었기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의 광고를 받는 친중 언론은 연일 젊은 층의 이러한 행동을 비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치 활동이라며 오히려 더욱 발을 끊었다. 시위가 소강상태에 이른 11월에는 많은 가게의 정치 성향이 분류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색과 맞는 가게만 찾게 되었다.     


 먹고 사는 것이 이렇게 나뉘었는데, 문화가 나뉘지 않을 리 없었다. 중국은 특히 연예인들을 선전 수단으로 삼았기에, 사람들은 연예인들의 색깔을 분류할 증거를 찾기는 쉬웠다. 그러나 사람들이 황색과 남색을 판단하는 기준은 불분명했다. 먼저 사람들은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고 성명을 발표한 연예인이나, 중국 공산당 및 홍콩 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연예인들을 남색으로 분류했고 시위에 참여하거나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직, 간접적으로 발표한 이들을 황색으로 분류했다.


 시위가 소강 상태에 들자, 사람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연예인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홍콩인들은 자신들이 거리에서 시위에 나선 동안 중국에서 돈을 벌던 이들이야말로, 홍콩인이라는 생각이 없는 “남색”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홍콩의 친중 성향 매체인 TVB에 출연하거나, 남색으로 분류된 연예인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남색 딱지가 붙기도 했다. LIHKG 등 홍콩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매일 연예인의 색깔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하루에 수십 개씩 특정 연예인의 이름 뒤에 “남색이야 황색이야?(藍定黃?)”라는 의문문이 붙은 글이 올라왔다. 적개심과 분노로 최대한 많은 이를 남색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으며 반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남색 딱지가 붙지 않도록 열렬히 변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래 표는 2019년 @yellow_artists_list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된 홍콩 음악인들의 색깔 분류표 중 지난 글들에서 다뤘던 이들만을 옮긴 것이다.          

 

2019년 11월 기준

 비교적 나이가 많고 중국 활동이 많은 가수들이 남색에, 홍콩에서 주로 활동하는 최근 가수들이 황색에 포진하고 있다. 인상 깊은 것은 논쟁 중인 음악인으로 분류된 이들이다. 이들은 200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가수들로 당시까지 그 인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대륙에서 활동하는 많은 홍콩 연예인들은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고, 홍콩을 뜨겁게 사랑합니다(熱愛祖國, 熱愛香港)”라는 동일한 문구가 포함된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중국 선전물 투의 글에 사람들은 중국 정부와 방송국, 소속사 등이 시켜서 올린 내용임을 빠르게 알아챘지만, 행위 자체는 홍콩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돈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파코 차우, 힌스 청, 미리암 영 모두 이러한 글을 올렸는데, 이들의 팬들은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나섰다. 특히 파코 차우는 2014년 우산 혁명 당시 조슈아 웡과 사진을 찍었고, 힌스 청은 시위 주제가였던 ‘누가 아직 목소리 내지 않았는가(試問誰還未發聲)’을 함께 부른 적 있어 두 사람 모두 중국 대륙 네티즌들에게 “홍콩 독립분자(港獨分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던 이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단 분노했다.     

힌스 청에 관한 논쟁 글들. 답이 나오기보단 감정적인 폭언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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