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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원 May 23. 2022

노래는 이야기한다 : 절망과 위로의 칸토 팝

4부, 칸토 팝과 홍콩의 오늘(3)

 모든 예술은 사회 현실을 반영하게 된다. 예술 작품의 제작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기에, 다양한 정치, 사회적인 맥락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정치를 비판하거나 풍자하지 않더라도, 작품의 분위기 등에서 은연중에 작품이 등장한 사회의 생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중국 문명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응용했다. 2000년이 넘는 전제군주정과 냉혹한 사법제도의 역사 속에 중국인들은 노래를 통해 사회에 대한 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칸토 팝을 받아들이는 홍콩 대중의 마음은 이러한 전통과 부지불식간 닿아 있다. 전제정치의 주체만 바뀌었을 뿐, 사회는 전혀 자유로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중국 문명에서 내려오는 노래를 통한 사회 현실의 표현 전통과 이 전통이 2020년 이후의 칸토 팝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경(詩經)"

 중국 문명이 가진 유구한 기록의 전통은 기원전 700년경의 노래도 전부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그 기록은 “시경(詩經)”이다. 궁중의 의례와 암시적인 표현을 위해 수집되었던 이 노래들은 후대로 가며 정치적인 의미가 부각 되었다. 이는 공자와 맹자 등 유가 사상의 선두 주자들이 정치를 논할 때, “시경”에 수록된 시를 인용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유가가 중국 사상의 헤게모니를 쥐게 되자 중국인들을 이를 정치적인 사상이 담긴 경전 가운데 하나로 숭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춘추(春秋)”, “국어(國語)” 등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과 “시경”에 수록된 노래를 연결하고자 했다. “시경”에 수록된 노래들이 특정한 정치, 사회적 현상을 비판하거나 예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본 것이다. 노래와 사건이 실제로 관련이 있는지, 이 추측이 합당한 추측인지 검증할 방법도 없었으며, 노래의 내용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은 특정한 사건과 잇는 해석 방식을 지양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이어져 “시경”에 대한 해석은 정치 현실이 예술과 관련 있기에 예술을 관찰해야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관점에 이른다. 이에 정변(正變)의 이론과 흥관군원(興觀群怨)의 이론이 정립된다. 정변의 이론은 노래가 사회의 분위기를 따른다고 보는 반영론적 관점이다. 성군의 시대에는 바른 노래인 정풍이, 암군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은 변풍이 유행한다고 보았다. 흥관군원은 노래를 기능론적으로 풀이한 것으로 아래 인용된 공자의 말에서 기원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여, 어찌 시(노래)를 공부하지 않는가? 시는 흥겹게 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있으며, 무리 지을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주군을 섬길 수 있다. 여러 금수와 초목의 이름도 많이 알 수 있다.”

子曰:「小子!何莫學夫詩?詩,可以興,可以觀,可以群,可以怨。邇之事父,遠之事君。多識於鳥獸草木之名。」      

-“논어(論語)”, ‘양화(陽貨)’, 9      


 이 말을 통해 살펴보면 공자는 노래의 기능을 흥관군원과 같은 표현의 기능, 어버이와 주군을 섬길 수 있는 사회적인 기능, 자연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식의 기능으로 총 세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그 가운데 사회적인 기능과 지식의 기능은 실용적 목적이며 다른 수단으로도 쉽게 대체될 수 있었기에 흥관군원만이 남게 되었다. 흥관군원의 기능을 자세히 나눠보면, 흥(興)은 마음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관(觀)은 보이는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군(群)은 함께하고자 하는 뜻을 표현한 것이며, 원(怨)은 비판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음악에도 확인되는 표현들이다.    


  이와 같이 노래의 기능을 분명히 알게 되자  활용 방식도 늘어났다. 지배층은 시경의 노래를 모은 것처럼 자기 시대의 노래를 모으고자 했다. 이에 노래를 담당하는 관청인 악부(樂府)와 악부에 배속되어 노래를 모으는 채시관(采詩官)이 등장했다. 한편 백성들의 노래를 관청의 이름을 따 악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중당 시기(8세기 경)에는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등이 이러한 노래를 모사한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일으켰다. 형식적 완전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시와 큰 차이는 없지만, 서사성이 짙고 백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편시라는 점에서 노래를 통한 완곡한 비판 문화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애플데일리” 마지막 호, 홍콩인은 말할 곳을 잃었다.

 “시경”의 시들이 생산된 지 2700년이 지났다. 중국의 규모, 정치체제, 과학 기술 등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권력의 전제성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시대에 역행한다.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던 수많은 사람을 여전히 위협, 납치, 투옥, 고문하고 있다. 세계와는 점차 담을 쌓고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외국인에게까지 다양한 압력을 가한다. 그 마수는 홍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국 민주주의의 마지막 정토라고 불리던 홍콩에서도 중국식의 전제주의가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2020년 홍콩보안법 시행, 2021년 애플데일리와 더 스탠드 뉴스의 폐간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홍콩을 떠나거나,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홍콩보안법 시행 홍보 현수막. “일국양제를 지킨다(保一國兩制)”라는 뻔한 거짓말이 아래 적혀 있다.

 사람들은 고대의 표현법으로 돌아갔다. 노래와 그 분위기로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시대의 음악이 변풍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방법으로 검은 색조가 사용되었다. 홍콩인들은 다른 중화권 주민들처럼 화려한 색조를 생활에서 애용했다.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곳곳에 사용되었다. 시위에서도 노란색이 시민과 희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칸토 팝 음반들은 대체로 눈이 쨍할 정도의 원색을 곳곳에 사용했으며 콘서트에서도 밝은 톤의 색, 또는 반짝거리는 것들이 부착된 의상이 주로 착용되었다. 그러나 2019년 여름,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하자 사람들은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검은 옷, 검은 보호장구, 검은 포스터가 시위대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도 도시에게 조의를 표하려는 듯, 색채가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를 지양했다.

검은 옷을 입은 시위자들

 시민들에게 동감을 표하기 위해 칸토 팝 스타들도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앨범과 뮤직비디오의 색은 차분하게 바뀌었으며 검은 의상이 자주 활용되었다. 특히 2021년부터 검은색 의상과 일러스트로 표현한 군중의 모습을 통해 홍콩인들의 대규모 이민 행렬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사례가 늘었다. 러버 밴드는 검은 의상을 입고 이민 행렬을 노래한 ‘Ciao’를 발표했다. 연말 시상식에도 검은 의상으로 참석했다. 제이슨 찬은 2021년 콘서트 “Fight For ____ Live in Hong Kong Coliseum”에서  자신의 히트곡 ‘미련(逸後)’(2009)를 마지막 곡으로 불렀는데, 어두운 조명 속에 홍콩을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담긴 일러스트 영상이 송출되었다. '미련'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노래 가사도 이에 어우러진다.

해당 콘서트 영상

오늘부터는 각자의 미래가 있는 거야

今天起各有日後

폭죽의  불꽃을 가져가지 않는 것처럼, 꼭 가져갈 필요는 없어

如花火攜不走 無需要定擁有

떠나는 너를 돌아선 채 눈물을 닦게 해줘, 고개 돌리지 마

讓我拭去眼淚背著你走 別回首

원래대로 돌아간 뒤로는 다시 너와 친구가 되지도 않을 거야

復原後不要再度跟你做朋友      

나는 내가 지난날을 떠올릴까 두려워

我怕我念舊

      -웡카이케이(黃凱琪) 작사, 피터 캄(Peter Kam, 金培達) 작곡, 제이슨 찬 노래, ‘미련’(2009)


 2020년부터 시작된 이민 행렬은 홍콩 당국의 코로나 통제 조치로 홍콩 경제가 어려워지자 더욱 증가했다. 사람들은 홍콩을 떠나기 싫지만,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떠난 사람들도 자신들을 홍콩인으로 여기며 홍콩을 그리워했다. 이민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홍콩이라는 도시가 점차 소멸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모아주는 수단으로 칸토 팝을 찾았다. 2010년대부터 시작된 위로의 노래들은 2020년 이민 행렬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음악인들도 같은 홍콩인으로서 같은 아픔을 느끼고 안타까워했기에, 진정이 느껴지는 많은 곡이 나왔다.     


퐁 난의 ‘삶(生)’


 2021년 발표된 러버 밴드의 ‘Ciao’, 퐁 난(Pong Nan, 藍奕邦, 남혁방)의 ‘삶(生)’, 요요 샴(Yoyo Sham, 岑寧兒, 잠녕아)의 ‘생각하지 말아요(勿念)’, C All Star의 ‘남겨진 사람(留下來的人)’, ToNick의 ‘이산의 서장(離散序)’과 같은 곡들이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곡으로 홍콩인이 흩어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같은 해에 발표된 C AllStar의 ‘내일이 없을 것 같은 두려움(沒明日的恐懼)’, 캐스 웡(Cath Wong, 黃妍, 황연)의 ‘동트기 전(天光前)’, 엔디 초우(Endy Chow, 周國賢, 주국현)의 ‘속세의 아름다움(塵世美)’ 등은 사람들이 홍콩에서 느끼지 못한다는 ‘희망’에 대해 노래한 곡들로, 절망 가운데도 작은 희망을 찾아 붙들자며 서로를 위로한다. MIRROR의 멤버인 라우잉텡(Jer Lau, 柳應庭)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사람들의 위대한 순간들(人類群星閃燿時)’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홍콩 학생운동 리더였던 조슈아 웡은 이러한 곡의 리스트를 옥중 편지에서 공개하며 자신도 칸토 팝에 위로받고 있다고 밝혔던 바 있다.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도 남녀 간의 사랑 외의 사랑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삶, 사회, 이 도시에 대한 사랑을 은유하고자 하는 가사들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사랑의 힘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내용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디어 제인(Dear Jane)의 ‘사람들은 날기에 알맞지 않죠(人類不宜飛行)’(2020), MIRROR의 컹토가 부른 ‘입은 가렸지만, 사랑한다고 말할게(蒙著嘴說愛你)’(2020), ‘Dear My Friend,’(2021), 전민조성 출신 스타인 MC(MC Cheung Tinfu, 張天賦, 장천부)의 ‘막을 수 없어요(反對無效)’(2021) 이에 속한다.


컹토의 ‘입은 가렸지만, 사랑한다고 말할게’(2020). 가린 입이 마스크뿐일까. 한산한 홍콩 거리가 더욱 적적해 보인다.

 과거의 노래가 발견되어 상황에 맞게 해석되기도 했다. 에디슨 첸(Edison Chen, 陳冠希, 진관희)의 ‘홍콩땅(香港地)’(2003), 주노 막(Juno Mak, 麥浚龍, 맥준룡)의 ‘머뭇거림(彳亍)’(2018) 등이 대표적인데, 과거의 노래를 지금의 사회 현실에 맞추어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은 전근대 중국인의 “시경” 활용방법과도 유사하다.   

  

 민주주의는 좌절되었고 홍콩이란 도시도 언제 소멸할지 모른다. 이러한 우려 속에 살아가는 홍콩인들은 노래를 통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고, 절망의 시대를 희망과 위로로 이겨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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