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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원 May 25. 2022

새로운 장국영을 기다리며 : 장국영과 컹토를 보는 시선

4부, 칸토 팝과 홍콩의 오늘 (4)

 2021년 현재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를 묻는다면 누구라도 MIRROR의 컹토(姜濤)라고 답할 것이다. 2018년 방송 첫 등장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컹토, 그만큼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던 스타가 있었을까. 필자는 80년대의 레슬리 청(Leslie Cheung, 張國榮)은 그 정도로 사랑받았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컹토와 레슬리 청


 이 연작의 제목을 “새로운 장국영을 기다리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레슬리 청은 홍콩인 모두의 스타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아는 홍콩 스타였다. 그렇기에 레슬리 청의 사망(2003) 이후 한국을 비롯한 중화권 밖의 국가에서 홍콩 문화가 급격히 지위를 잃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경제 성장과 함께 나날이 발전하던 한국이나 대만, 중국 대륙의 대중문화와 달리, 홍콩은 더 나아가지 못 한다는 인상을 주었던 다. 이미 영화는 점차 쇠퇴하고 음악은 발라드 일변도로 빠진 것, 홍콩인들조차 홍콩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을 레슬리 청이 어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슬리 청이라는 상징이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레슬리 청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홍콩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나마 유지되었던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아쉬움 때문일까. 홍콩 사람들은 컹토가 레슬리 청이 이뤘던 것을 따라가며, 전세계에 홍콩을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해주길 바란다.  


 그들은 사실 유사한 지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기보다는 고운 귀공자 스타일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다는 점도 같다. 레슬리 청은 1977년 ATV 오디션을 통해서, 컹토는 2018년 Viu TV의 “전민조성”을 통해서 데뷔했다. 두 사람이 데뷔한 시기는 모두 홍콩 현지의 음악보다는 외국의 음악이 더 사랑받던 시기였다. 이들이 오디션 무대에서 부른 곡도 전부 외국 곡이었다. 레슬리 청은 미국 곡인 ‘American Pie’, 컹토는 중국 곡인 ‘슈퍼 1등(超級冠軍)’을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칸토 팝으로 성공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발라드와 댄스 곡을 모두 완벽히 소화해냈다. 홍콩을 흔들어놓았던 댄스 곡 ‘Monica’(1984)와 ‘Stand Up’(1985), 호방한 느낌을 주는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1986)의 OST ‘그 시절의 뜻(當年情)’, 감미로운 발라드 ‘많은 것 필요 없어(無需要太多)’(1988) 등이 모두 레슬리 청이 부른 곡이다. 그의 안무 가운데 ‘잠들고 싶지 않아(無心睡眠)’(1987)에서 보여준 동작은 아직도 홍콩인들 전부가 기억하고 있으며, 한국 아이돌이 홍콩에 진출하던 초기에 보이그룹 제국의 아이들이 따라하기도 했다. 컹토 역시 발라드와 댄스 곡을 오가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당대 홍콩에서 유행하던 외국 문화와 홍콩 문화의 융합을 보여준 아이콘이기도 하다. 레슬리 청의 활동은 70년대 영국 팝 문화와 80년대 일본 아이돌 문화를 칸토 팝에 융합시켜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과정이었으며 컹토의 활동 역시 한국 K 팝 아이돌 문화를 칸토 팝과 융합시키는 도전 중에 있다.     


풍헤이곤의 글

 이러한 유사함은 단순히 끼워 맞춘 비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콩 대중이 은연 중에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컹토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보며 조금이라도 레슬리 청과 닮은 점이 있다면 크게 환호하고 있다. 2022년 1월 초, 페이스북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의 아동문학가 풍헤이곤(馮晞乾)의 글이 이러한 내용이다. 당시, 컹토의 미담 하나가 알려졌다. 의료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진 6세 여아 차우틴위(周天瑜) 양의 아버지는 딸이 깨어나길 바라며, 컹토의 ‘입은 가렸지만, 사랑한다고 말할게(蒙著嘴說愛你)’(2020)를 들려주었는데 그녀가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이 소식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어 컹토도 알게 되었다. 컹토는 영상을 보내 차우 양과 아버지를 응원하였다. 풍헤이곤은 이 사건을 보고 레슬리 청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떠올렸다고 한다.


레슬리 청의 ‘자유로운 바람(不羈的風)’(1985). 전년의 ‘MONICA’를 뒤이은 키카와 코지 스타일의 댄스곡으로 밝은 매력이 돋보인다.


 1988년, 19세의 말기 암 환자 소녀는 투병 중 레슬리 청의 ‘자유로운 바람(不羈的風)’(1985)에 빠졌다고 한다. 그녀는 간호사에게 한 번이라도 레슬리 청을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간호사는 소녀의 생일을 맞아 이 이야기를 라디오에 제보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레슬리 청에게 연락했는데 당시 그는 마카오에서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을 찍고 있어 방문하기 어려웠다. 그는 전화로 그녀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레슬리 청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매일 소녀에게 전화하여 응원의 말을 전했으며 사람들의 이목이 멀어지자 병원에 방문했다. 풍헤이곤은 이 일화를 소개하며 앞으로도 소년, 소녀들의 희망을 위해 스타들이 선행을 베풀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이 글이 환영받았던 이유는 그보다도 레슬리 청과 같은 선함이 컹토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 단순한 도덕적 공통점에 왜 시민들이 반응했을까? 그것은 레슬리 청과 그의 공통적인 덕목들이 그를 레슬리 청같은 스타로 만들어주어 홍콩을 전세계에 빛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빛남을 통해, 홍콩 시민들은 위로받고 싶어한다.



 컹토는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를 아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 역시, 한 때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곳에서 최고에 올랐으니, 내심 그 자리에 올라보고 싶을 것이다. 그는 2021년 “질타” 연말시상식에서 최고 남가수상을 수상하며 이와 같이 말한다.     


 “저는 이 자리에서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아시아 제일이 될 겁니다. (我喺呢個地方可以好有信心地講,我哋一定會係亞洲第一。)”     


 이 겨울, 홍콩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였다. 홍콩은 이제 몰락하는 도시라고 생각하던 홍콩인들의 무너진 자긍심을 다시 살리는 발언이었다. “우리(我哋)”란 MIRROR일 수도 있고, 홍콩 음악계일 수도 있고, 홍콩 전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칭 대상이 어느 것이든, 홍콩 사람들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셋은 홍콩인들의 생각 속에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속사도 이러한 마음을 잘 안다. MIRROR의 프로듀서인 웡와이관(黃慧君)은 2022년의 목표로 MIRROR의 빌보드 차트 진입을 내걸었다. 중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세계로 나가겠다는 포부만으로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그들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또 한 명의 레슬리 청을 볼 수 있을까?     

시상식 영상. 4분 30초부터 컹토의 수상소감과 이 발언이 나온다.


 한편, 이와 같은 큰 기대는 오히려 그가 색깔 전쟁을 피해갈 수 없게 했다. 그의 팬들은 데뷔 초부터 그가 색깔 전쟁의 피해자가 될까 걱정했다. 그의 모친은 대륙 출신으로 광둥어를 정확하게 구사하지 못했다. 또한 컹토는 중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대만의 친중 연예인 뤄즈샹(羅志祥)을 좋아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었다. 데뷔 후에도 그의 행적은 남색 연예인으로 비칠 만한 것들이 많았다. 2019년 홍콩에서 시위가 한창이던 7월, 그는 광저우에서 중국 가수와 듀엣 무대를 선보였다. 이후에는 친중 방송으로 시민들에게 낙인 찍힌 TVB에도 종종 출연하였으며 중국 국영기업이 큰 지분을 소유한 홍콩 맥도널드의 광고 모델로 나서기도했다. 2021년에는 민주파 언론인 애플데일리의 폐간 사태와 관련된 기사에서 애플데일리를 조롱하는 댓글에 자신의 공식 SNS로 ‘좋아요’를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고 그의 정치 성향을 “얕은 남색(淺藍)”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논란이 된 컹토의 SNS 좋아요. “썩은 파랭이 놈들(애플데일리), 빨랑 영국으로 이민이나 가버려. 영국수상은 너희더러 알아서 살던지 죽던지 하라 할 걸”이라는 내용의 댓글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여전히 열광한다. “홍콩인들의 인기를 입고 사는데, 어떻게 대놓고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MIRROR의 다른 멤버들이나 프로듀서 웡와이관이 황색이니 괜찮을 것이다”와 같은 말로 끝까지 컹토의 정치적 성향을 비난하는 이들로부터 변호한다. 그러나 컹토를 변호하는 이들도, 끝까지 파고든 사람들도 결국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더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자신들의 편이 되어줄 스타가 세계적 스타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컹토는 이 마음까지도 지켜줄 것인가. 레슬리 청의 유명 곡으로 글을 맺으며, 그들의 꿈을 생각한다.


‘A Thousand Dreams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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