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세 장을 통하여 이 시대의 칸토 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2장과 3장에서는 2020년대 칸토 팝의 바탕이 된 발라드와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 낸 아이돌을 그 씨줄과 날줄로 삼았다. 이제는 그 둘이 직조되어 만들어낸 무늬를 볼 차례이다. 무늬란 홍콩인들이 칸토 팝을 향유하는 문화이다. 3장에서 전민조성의 흥행 요인을 설명하며 홍콩 현대 정치를 많이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칸토 팝에 대한 시민들의 의지란, 홍콩의 민주주의나 사회 문제에 대한 의지와 일치할까? 홍콩 사회 속 칸토 팝이 기능하는 장면들을 살펴보며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우리는 앞서 홍콩 사회와 칸토 팝의 관계를 조금씩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자. 홍콩은 중국의 영향 하에 존재하는 도시이기에, 시민들에게는 때로는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해졌고, 때로는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해졌다. 이는 어떠한 문화를 즐길 것인지를 정하는 한 문화권의 범위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주는데, “홍콩인” 정체성이 강화될 때, 중화권 전체와 구별되는 홍콩 음악의 특징이 더 발전하게 되었다(1장 3절). 칸토 팝은 원래 대형 음반사와 방송사(TVB)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문화로 스타와 예술가의 철저한 분업과 상업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싱어송라이터, 밴드, 보컬 그룹 등이 등장하며 이 구조에 변화가 생긴다. 그들은 칸토 팝은 홍콩 대중의 정서와 더 소통하였는데, 이는 2014년 우산 혁명 이후 홍콩인 정체성 강화라는 흐름과 맞물리게 되었다. 그들은 사랑만큼이나 세상과 삶에 대한 위로에 관한 주제를 노래했으며, 홍콩 대중, 특히 젊은 세대가 다시금 칸토 팝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2장 4절). 한국 프로듀스 101의 포맷을 차용한 2018년의 오디션 프로그램 “전민조성(全民造星)”은 세계적 수준을 추구했고 시청자의 직접 투표가 성적에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홍콩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3장 1절). 이 프로그램에서 선발된 이들로 구성된 그룹 “MIRROR”는 방송에 대한 관심보다 큰 관심을 모았다, 홍콩, 홍콩 문화, 홍콩인이라는 자부심을 회복하길 소망했으며, MIRROR의 주 팬층인 청년 및 청소년 세대는 홍콩의 다양한 문제 앞에 자신들의 세대에 속하는 자신들의 아이콘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보안법과 코로나-19로 좌절된 2020년부터, 홍콩 시민들이 정치, 사회 등의 분야로 표출하던 이 열망이 이들에게로도 유입되었고, MIRROR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3부 2번째 글 참고).
이와 같은 내용은 홍콩의 정치에 관심을 가진 외부인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만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MIRROR”를 비롯한 칸토 팝 스타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한 2020년 이후의 열광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인가?
필자는 이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관련은 있으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이 스타들에게 완전히 투영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홍콩 시민들이 진정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민주당의 창립자 마틴 리(Martin Lee, 李柱銘), 그를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온건주의자로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해 왔다.
홍콩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홍콩에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세 세력의 입장을 확인해야 한다. 첫째는 민주당-공민당 등 범민주파 계열의 입장이다. 이들은 홍콩 시민의 생활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국에 홍콩이 반환된 이후, 중국 중앙 정부는 홍콩 입법회 선거에 전면 직선제 대신 직능대표제를 다시 실시하여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고 자신들 편의 인사를 입법회에 집어넣었다. 게다가 직능대표제는 정경유착이라는 홍콩의 고질적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의회는 권력과 특정 세력이 유착하여 다른 공동체 구성원의 복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지만, 직능대표제는 경제, 경영인들과 기억이 입법회에서 더 대표되도록 한다. 67폭동의 발단도 교통회사들과 권력의 유착 때문이었으며 여전히 스와이어 그룹 등 대형 재벌의 유착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혁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지련회의 로고. 지련회는 2021년 9월, 국가보안법에 대한 우려로 자진 해산했다.
둘째는 지련회(支聯會) 등 중국 본토의 민주화를 주창하는 세력의 입장이다. 정식 명칭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香港市民支援愛國民主運動聯合會)였던 이 조직은 1989년, 중국 정부가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시민들을 학살한 톈안먼 학살(홍콩에서는 사건 발생일을 따서 ‘六四’라는 표현을 더 사용한다) 이후 형성되었는데, 중국 대륙 전체의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그렇기에 홍콩의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발전하여 홍콩이 대륙에 민주주의를 전달하는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저서를 들고 있는 호레이스 친, 오른손에 들고 있는 "홍콩 도시국가론(香港城邦論)"은 본토파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지막은 본토파(本土派)라고 불리는 세력이다. 이들은 홍콩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이를 지키는 수단으로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이들은 세련된 도시 생활과 광둥어 대중문화가 홍콩의 정체성이며 이를 위협하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중국 공산당 정권과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인들이라고 여긴다. 호레이스 친(Horace Chin, 陳云根/陳云, 진운근/진운) 등에 의해 제창된 이 주장은 단순한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독립 여부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치권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는데, 2010년대 초반 반중 정서와 혼합되며 크게 퍼져나갔다.
이 셋은 완전히 분리되는 주장인 것만은 아니다. 범민주파와 본토파는 홍콩인의 생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같으며 정치 제도의 변화와 중국인에 대한 태도에서 정도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범민주파는 대체로 지련회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본토파 가운데는 오히려 홍콩의 권리를 위해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해야 한다는, 순서는 다르나 내용은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지련회 세력은 홍콩에 거주하기에 범민주파나 본토파 일부의 의견 중 하나를 정치에서 따르게 된다.
우리가 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홍콩인에게 홍콩의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각자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홍콩의 민주주의를 인식하였다. 그나마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 신념을 비교적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던 지련회의 주장은 홍콩 인구에서 홍콩 출생자의 비중이 늘어나며 중국을 타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지고, 중국의 민주화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며 사람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2010년대 이후의 홍콩인들이 주장한 민주주의란, 안정적인 삶과 도시 문화로 대표되는 홍콩 시민의 삶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홍콩인들이 진정 지키고 싶었던 것은 자신들의 삶, 자신들의 정체성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홍콩인의 시위 양상에서도 확인된다. 2019년 범죄인인도조례 반대 시위 당시 시위하던 시민들의 구호는 “물이 되어라(Be Water)”이었다. 이는 홍콩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린 유명 액션 배우 브루스 리(Bruce Lee, 李小龍, 이소룡)가 자신의 무술을 설명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머리를 비우고, 무형이 되세요. 물처럼, 형태가 없어지는 겁니다. 물을 컵에 붓는다면, 그 형태는 컵의 형태가 됩니다. 물을 병에 넣으면, 병의 형태가 됩니다. 물을 주전자에 넣으면, 주전자의 형태가 됩니다. 자, 이제 물은 흐를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습니다. 친구, 물이 되십시오.”
물은 고정된 형태를 가지지 않은 유체이기에, 어떤 용기에 담기는지에 따라 그 형태가 바뀐다. 또한 자유롭게 이동하며 파괴력도 지녔다. 홍콩의 시위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 빠르게 해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대규모 시위 현장에서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을 정도로 강경 투쟁을 조장하며 무기 사용을 독려하는 한국 시위의 지도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와 같이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희생자 발생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홍콩에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시위에 나왔던 이들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잃는다면, 시위는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희생은 숭고한 일이지만, 삶을 중시하는 그들에게는 최대한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몰(廣場,市場)은 홍콩을 상징하는 도시 경관이다. 2019년의 시민들은 몰에 모여 시위 가요를 제창했고(왼쪽) 현재는 팬미팅을 위해 모이고 있다(오른쪽). 둘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2019년, 홍콩인을 움직이게 하던 의지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홍콩인의 정체성과 그 자긍심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므로, MIRROR에 대한 열광이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그대로 옮겨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홍콩인으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키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민주주의를 만나서 민주주의 항쟁이 되기도 하였고, 아이돌 음악과 만나서 또 다른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물”과 같이 움직이는 그들의 마음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