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0만 원
파지 줍는 할아버지의 인생 속으로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첫 근무지인 지구대로 발령받아 현장 속으로 투입되었다.
국민들의 안전과 치안이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지구대 업무는 다양한 상황에 따른 각양각색의 신고들이 많다. ‘거리의 판사’로 불리는 경찰관은 법과 질서에 따라 또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법 지식과 현장매뉴얼을 정확하게 숙지해야만 한다.
지구대 업무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사연을 듣고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된 사람들, 가정폭력에 시달려 아이와 함께 도망 나온 베트남 여성, 매일 아침마다 지구대로 방문해서 아들을 찾아달라는 할머니의 호소 등 그들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함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현재까지도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계신지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어쩌면 내 마음만큼은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집 앞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화창한 어느 날 ‘주문한 택배 박스를 잃어버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게 되었다.
신고자는 작은 스포츠 기구들을 파는 가게를 하는 분이셨다. 택배를 주문해서 택배기사가 가게 앞에 물건을 놔두고 갔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택배박스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원룸과 빌라가 모여있는 골목길이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충분히 가져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신고 출동을 나갔던 팀장님은 근처 CCTV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다행히 가게 앞을 비추는 방범용 CCTV가 있었다. 팀장님과 함께 관제센터로 가서 CCTV를 확인해 본 결과,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가 택배 박스를 들고 이리저리 보시더니 파지가 있는 손수레에 넣는 것이었다. 우리는 CCTV에 담긴 할아버지의 인상착의를 확인하여 근처 주민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보게 되었다. 다행히 매일 그 근처를 돌아다니며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 셔서 가게 주인 분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팀장님과 나는 할아버지가 분명 파지를 줍고 계실 거라 믿으면서 그 근방으로 순찰을 돌게 되었다.
몇 분이 지난 그 순간, 인상착의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였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70대 이상으로 보였고 치아도 거의 빠진 상태였다.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였더니 본인은 단순히 쓰레기 인 줄로만 알고 주워갔다는 것이다. 택배박스는 이미 처분하고 없는 상태였다.
혹시나 택배 속에 있던 물건이 주거지에 있지 않을까 하여 할아버지에게 동의를 얻어 주거지로 동행하게 되었다.
도착하니 낡은 원룸이었고 가족들 없이 혼자 사시는 것 같았다. 쌀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황량한 주방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짠했다. 방으로 들어선 순간, 없어진 택배 물건이 몇 개 있었다. 여러 신고를 뛰어보면 고의적으로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말하는 눈빛과 아무런 의도 없이 가져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의 눈빛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할아버지는 고의적으로 가져간 것 같지 않았다. 다만, 텅 빈 택배 박스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서야 물건이 있는 걸 보고 집으로 가져간 듯했다. 그 물건은 할아버지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그랬다.
어느 순간이 되자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현장 경찰관은 원칙대로 할아버지를 임의 동행해서 형사과로 인계하면 되지만 누구라도 보살피는 사람 없이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턱끝까지 올라온 눈물을 꾸역 꾸역 삼키며 팀장님과 집을 나와 지구대로 향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퇴근하는 길에서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왜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보살피지 않는 건지, 밥은 잘 챙겨 드시는지,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다는 마음 속 작은 울림이 마구 솟구치고 있었다.
집 앞까지 온 차를 다시 돌려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근처 마트에서 10만 원어치 장을 보고 현금 10만 원을 봉투에 담았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고 할아버지에게 꼭 건강하시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며 장 본 음식들과 10만 원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처음엔 거절하셨지만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연신 고맙다며 어쩔 줄 몰라하셨다.
“할아버지, 꼭 건강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112를 눌러 경찰관을 불러주세요. 아시겠죠?”
몇년 전, 광역시로 인사발령이 나고 코로나 19로 인해 자유롭게 기차를 타고 어디라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지금, 할아버지를 뵈러 가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 온다.
천사가 존재한다면 부디 할아버지 곁을 꼭 지켜주어서 외로움보단 따뜻한 온기처럼 스며드는 사랑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내시길. 그동안의 외로움은 잠시 내려놓으시길. 그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대화라도 나누고픈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