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던 날들의 고마움

by 감사렌즈

“어쩜 사람이 그렇게 달라져?”
남편의 말에 순간 멈춰 서게 된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다는 걸까.

“결혼하기 전엔 좋아한다고 따라다닐 땐 언제고,
결혼하고 나니까 사람이 싹 바뀌었네.
잡아놓은 물고기라고 그런 거야?”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스무 살, 처음 그 사람을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긴 속눈썹과 속쌍꺼풀, 이상형의 조건은 딱 맞았지만
그 외에는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매너도 없고, 처음 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시시콜콜 꺼내기까지 했다.

이름을 듣자마자 놀라며,
그 이름의 사람을 만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조금 이상했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매너가 없는 만큼 바람은 안 피울 것 같고,
생활력도 강하니 함께 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땐 모든 게 좋게 보였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던 시절이었다.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할 만큼, 심장이 뛰었다.

용기 내 연애를 제안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친구들 앞에서 고백했던 그 순간은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거절당한 뒤 시간이 흐르고,
크리스마스 즈음 전화가 왔다.
그땐 이미 다른 사람과 연애 중이었다.
그런데도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 전 남자친구와는 이별하고,
그 사람과의 연애가 시작됐다.
10년을 함께하고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지금도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 말한다.
“엄마가 아빠를 엄청 따라다녔어.”
아이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럴 법도 하다.

부부가 된 지금은 전우 같은 사이다.
연애감정은 사라졌고,
서로 각자의 일에 치이며 살아간다.
집에 오면 밥하고, 집안일하고, 아이들 챙기느라
마주 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엔 남편 반응에 시큰둥했는데,
요즘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호응도 잘 해준다고 했다.

그 말을 한 언니는
몇 주 전 남편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아파하자
장염인 줄 알았는데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119에 신고하고 병원에 갔다고 했다.

검사 결과, 담낭에 문제가 있어
바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40시간 동안 남편 곁을 지키며
밥도 먹지 못하고 걱정만 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야
안심한 마음으로 첫 식사를 했다고.

“40시간이나 밥을 안 먹어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그 말을 들으며,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늘 함께 있고, 언제든 당연하게 곁에 있을 거라 믿었던 사람.
하지만 그 자리가 비워지는 순간,
세상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간다.

한때 심장이 콩닥거리던 사람.
지금은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나누는 동료.
그리고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

언젠가 남편은 말했다.
“결혼해줘서 고맙고, 결혼해서 미안해.”

소중함이 늘 곁에 있어
잊고 살아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잊지 않기 위해,
이 순간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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