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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배우는 중입니다

by 감사렌즈

오늘은 입을 꾹 닫기로 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에게 더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하루였다.

내 눈엔 아직도 어린아이다.
무릎까지 오는 바지를 입고, "엄마!" 하고 달려오던 그 모습이 선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자주 입에 오르는 말은 "옷 좀 정리해라", "약은 챙겼니?", "숙제는 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말끝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집착이었을까.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간섭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나로선 아이를 곁에서 충분히 챙겨주지 못하는 마음이 늘 불편하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말하고, 더욱 빠르게 움직이길 바란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말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결국은 내가 지치고 만다.

오늘은 참아보았다.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기다려보았다.
게임을 하고 있던 아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했을 때, 그는 "게임 끝나고 할게요"라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하라고 다그쳤겠지만, 오늘은 믿어보기로 했다.

30분쯤 지났을까.
그 아이가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다.
냄새에 예민한 아이라 그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잘 만지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걸 스스로 버리고 온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에 마음이 흔들렸다.
기특하다, 싶으면서도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조급했던 건 아닐까.
아이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일이 왜 이토록 어려웠을까.

꽃이 피는 시기는 모두 다르다.
햇볕이 조금 늦게 닿는 자리에도 결국은 꽃이 핀다.
부모가 된 나는, 그 자연의 순리를 자꾸 잊는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건 잔소리가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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