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스런 Oct 22. 2019

지저분하다는 소리를 듣고 사는 아내

중수 엄마의 놀이법

    노는 데에 실력이 필요한가? 그렇다. 나는 아이랑 노는데 정말 재주도 많고 실력도 빵빵하다. ‘아이랑 하는 놀이’하면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는 우쭐함으로 산 나였다. 나는 내가 ‘아이 놀이’ 고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자존감은 어디 갔나?' 싶게 초라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놀면서도 힘이 쭉쭉 빠진다. 놀아 뭐하나 싶다. 급기야 아이와의 놀이가 힘겹고 삶이 부대낀다. 오늘은 아이와 열심히 노는 것이 왜 전부가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기껏 ‘놀이가 중요하다. 아이에겐 놀이가 전부다.’라고 주장해온 지금까지의 글들은 무엇이 되겠냐만은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용기를 내본다.


  나는 이중생활을 한다. 집에서는 한없이 지저분하다. 나가면 일 잘하는 커리어우먼 대접 받기를 즐긴다. 아이에게는 더 없는 친구이지만 남편은 내게 불만이 많아 보인다. 노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노는 거 외에는 잼병이다. 침구 청소, 설거지, 거실 정리, 뭐 하나 제때 깔끔하게 해두는 법이 없다. 아이 놀이, 책 육아, 애착 육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그 외의 것에서는 늘 할 말이 없는 반쪽짜리 자신감을 갖고 있다. 나는 이런 내 상태 때문에 너무나 우울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잘 놀고 내 일로 인정받는 것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아하면서 집안에서는 바가지가 깨진 채로 물을 받고있는 불쌍한 아낙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에게 놀이가 전부라고 믿고 살았다. 눈 뜬 아침부터 잠드는 밤까지 나는 아이들과 나의 최선껏 놀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가 흠뻑 큰다고 믿었다. 아이 둘은 심성이 깊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문제해결도 곧잘 하고 말이면 말, 그림이면 그림, 춤이면 춤, 빠지는 것 없이 건강하고 자신 있게 커 가고 있다. 유치원 상담이라도 갈라치면 칭찬 일색이다.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아이가 편식 없이 밥을 잘 먹는지요. 고사리, 버섯 할 것 없이 뭐든 맛있게 잘 먹어요. 어머니께서 집에서 골고루 잘 챙겨주셨나봐요!” “아이가 집에서 한글을 따로 배우나요? 글씨도 곧잘 쓰고 어느샌가 한글을 술술 읽네요. 말도 워낙 야무지게 잘하고 가위질은 초등학생처럼 능숙합니다. 생각 표현은 또 어찌나 섬세한지......” “책을 읽어주면 앉아서 내리 듣고 있는 아이가 기특해요. 영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구요. 어머니, 아이 키우는 비법이라도......”


  남들의 부러움 섞인 칭찬을 먹이 삼아 참 이기적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덕이 다 나의 놀이와 집밥, 애착에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라도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고 살고 싶었다. ‘집 안이 늘 지저분하고 나의 몰골은 형편없어도 아이 둘은 번듯하게 잘 키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가? 나 역시 그렇고 그런 희생과 보상 심리로 내 불행과 행복을 섞어보고 싶었는가?’ 불안하고 창피할 때면 더욱더 내 공을 들춰내고 싶었다. 잔뜩 쌓여있는 설거지감을 자랑인냥 사진 찍고, 물감 놀이며 모래 놀이로 얼룩진 옷을 유세인 양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에게 입혔다. 퇴근 후 남편이 돌아와서 보면 내 노력을 알아줄까 싶어 거실 가득 늘어진 책과 놀잇감을 치우지 않은 적이 많았다. 집에 아이 책이 늘어날수록 정리 걱정인 남편과는 달리 내심 뿌듯해하며 그 지저분함과 과함을 즐겼다. 그렇게 4년, 5년을 사니 함께 사는 남편이 드디어 터져버렸다.


  내가 균형을 찾지 않는 데에 크게 불편함을 느낀 남편에게 내 행동은 하나하나가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래, 아이랑 잘 놀아줬다 쳐! 결혼하고 화장실 청소는 한 번 했냐? 어떻게 저렇게까지 설거지를 쌓아놓냐? 바닥에 떨어진 밥풀이 굳어서 닦이지가 않는다. 나가서 열심히 너 좋아하는 글 쓰고 책 읽었으면 집에 와서는 아이들한테 좀 상냥할 수 없냐? 잘 놀아주면 뭐하냐? 작은 거에도 신경질 부리고 아이들도 온통 너 닮아 짜증스럽다. 나는 이렇게 사는 거 아니라고 본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토록 매몰찬 남편은 아니지만!) 남편의 말들을 정리하면 대략 저런 느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억울했고 ‘이렇게 사는 게 뭐지? 내가 정말 무얼 위해 아이와 노는 거지?’ 싶은 우울감은 몇 년째 떨굴 수가 없었다. ‘왜 나는 놀이를 고집했지? 왜 그 좋다는 놀이에만 열심히였고 나머지의 것들엔 가치를 두지 않았지?’


  이제 와 생각한다. ‘남편의 말이 옳구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항목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남편은 무엇이든 균형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해왔다. 엄마로서의 나와 사회인으로서의 나의 몫을 함께 잘 해내길 응원해줬다. 아이와 노는 것이 너무 힘들면 애쓰지 말고 적당히 나의 여가를 즐기라고 챙겨주었다. 아이에게는 놀이만큼 정리도 중요하니 적당히 놀고 함께 정리도 힘써보지 않겠냐고 부드럽게 말해왔다. 건강한 음식을 챙겨줘서 고맙지만, ‘친구들 먹는 것도 다 보고 크는 아이들한테 극구 군것질거리를 막아내는 게 과연 맞을까?’ 함께 고민도 해주었다. 마트에 가서 구경만 몇십 번 하고 참기만을 강요하지 말고 조금씩 완구도 사주면서 키우면 어떻겠냐고 나를 설득했다. 물려받은 옷들로 저지레 하면서 편하게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깔끔하게 입혀서 아이 기도 안 눌리게 신경 써 줄 나이라고도 귀뜸해주었다. 수십 수백 번 나를 타이르고 설득했던 남편이 몇 년을 하다 하다 요즘엔 신경질을 부리는거다. 나는 그런 남편이 돌아서면 고맙고 면전에 있으면 갑갑하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많지만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싶은 마음에 내가 자처한 희생들만 떠올린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


  그래서 오늘은 조금 마음을 다부지게 잡아본다. 여러분들도 지금 아이의 사교육에만, 책 육아에만, 자연 밥상에만 집착하고 있다면 당장 그 길을 투닥여봐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최고 가치, 그 한 가지에 목숨 거는 당신은 나와 같은 중수다. 그 어떤 것에든 한 곳에만 중요성을 과하게 부여하는 삶은 삐그럭대게 되어있다. 나는 이제 적당히 놀고 적당히 치우며 살려고 한다. 나는 이제 적당히 책을 읽어주고 적당히 휴대폰도 쥐어 줄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적당히 집밥을 챙기면서도 가끔씩은 빵도, 아이스크림도 기분 좋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나의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루 이틀 미뤄가면서 이부자리도 정갈히하며 가스레인지의 묶은 때도 벗겨야 한다고 다짐한다. '적당히'살아야 '잘'살아지는 때도 있을 테니까.


  ‘적당함’과 ‘균형’. 이것이 그리도 힘든 것인가? 속 시원히 마음을 털어내고 나니 잔 속 커피가 이미 식어있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고집스러웠던 중수 엄마의 길에서 나는 이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균형을 잃으면 외줄 위에선 떨어지고 만다. 현명한 고수...... 어떤 삶을 살면 될까?’

이전 08화 놀이 대신 설거지를 택하는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