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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스런 Oct 23. 2019

아이의 룸메이트, 러닝메이트 그리고 소울메이트가 되어라

아이 삶과 부모 삶의 교집합존 만들기

  당신의 육아, 안녕한가? 아니, 그보다 당신은 안녕한가? 괜찮은가? 마음이 아프거나 혹여 심신이 마구 지쳐있지는 않은지...... 당신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면, 아이와 부모가 함께 흔들리고 있다면 삶을 잠깐 정비해보라. 이제 겨우 서른, 마흔에 접어드는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서 부족한 것 잘 메우며 살아내라고 두 사람이 붙어살고, 또 아이도 그들 곁에서 살아가나 보다. 부족한 것이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서로 할퀴고 아파하는 나를 포함한 세상 아내와 남편님들! 오늘은 두 사람이 모여 함께 육아관을 나눠봤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의 삶의 모토는 이거다. ‘다, 좋자고 하는 거잖아! 육아든 여행이든 일이든.’ 기분 좋은 육아, 할 만한 육아를 꿈꾸는 우리 부부는 육아를 이렇게 말한다. 육아는 동행이라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길이라고.


  그런데 동행, 왜 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각자의 삶과 성장을 위해 달려가기도 바쁜데 어린 자녀들을 챙기며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나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유년기의 애착으로 평생을 살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년기의 결핍은 평생을 두고 우리 삶 저변을 흐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태어나고 엄마는 그 아이가 태어나게 몸을 내어준다. 얼굴을 대면하고 그 서툰 대면식을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다. 의지하고 때때로 크고 작은 상처와 추억을 쌓으면서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된다.

  나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생기는 그 뜨끈하고 저릿하고 힘겨운 연대를 교집합존(Zone)이라고 부른다. 아이와 함께 놀고 책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삶의 공통된 시간들을 쌓아가면서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단단한 끈, 무형의 공간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애착이라고도 부른다. 그 연대와 시간이 있어야 아이는 따뜻하고 당차게 살 수 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이의 행복한 학교 생활, 빛나는 사회생활보다 탄탄한 가정생활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정생활 전부가 아이와 어른의 동행이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살아간다. 서로에게 룸메이트(room mate)이자, 러닝메이트(running mate)이다. 소울메이트(soul mate)가 따로 없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모들은 아이의 룸메이트가 되어야 한다. 정말! 말 그대로 동거남녀가 되는 것이다. 함께 방을 쓰고 같이 자고 일어났던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처럼 아이랑 물리적으로 그 긴 시간을 그 좁은 공간에서 함께 해야 맞다. 그래야 아이의 탄탄한 가정생활에 초석이 깔린다. 그렇지 않고 그 동거의 시간들 짧으면 어느 틈엔가 아이 마음에 그늘이 생기고 만다. 아이에게 단단히 쥐어줘야 할 힘을 미처 챙겨주지 못한다. 적응력, 자존감, 사랑 등. 그런 힘을 가정 안에서 채워서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우리의 일일진대 우리는 승진, 대출금 환급, 자유, 미니멀한 삶, 경력 쌓기 등에 파묻혀 지내느라 본업에 충실치 못하다. 많은 부모가 그러하다.

  그러나 스텝 1, 1단계 동행 원칙은 핑계 없이 룸메이트가 되는 것이다. 떨어져 지내다가 잠시 잠깐 들어와서 얼굴 보고 인사하고 다시 헤어지는 그런 관계, 하지 말자. 같이 밥상 차려 먹고 곁에 앉아 같은 책 한 권 나눠 읽고 서로 옷도 입혀주고 그렇게 살자. 나는 이 길이 짧아도 3년, 길게 보면 초등 입학 전까지는 이어지면 좋겠다. 서둘러 스텝 1 단계를 마감하는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상상치도 못한 곳에서 충격을 받게된다. 사춘기를 맞이하면서는 더 혹아이 감정을 받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학업과 입시 문제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때가 되면 더욱 후회하게 된다.

  나는 학교에서 그런 부모님들을 많이 뵀다. 힘들어하는 아이들 곁에서 많이 서 있어 봤다. 그래서 다시금 주장해본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아이와의 공통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세요!’라고. 이 시기는 부모의 개인 시간과 자유가 아주 많이 적은 때라 부부가 서로 잘해야 한다. 일하는 쪽이라면 집에서 아가야랑 있는 배우자에게 사랑 많이 주시라. 집에서 아이랑 열심히 동거, 칩거 중인 당신이라면 우울해도 힘겨워도 찬찬히 그 강을 건너가시라. 곧 스텝 2가 올지니.


  스텝 2, 러닝메이트가 될 시간이다. 아, 이제는 좀 수월하다. 엄마의 시간, 아빠의 시간, 부부만의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동거 시즌을 잘 보내온 아이들은 점차 부모의 품에서 친구들,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를 한다. 호기심의 대상이 밖으로 나아가며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더욱 새로워진다. 꼭 아빠가 아니어도 꼭 우리 엄마가 아니어도 아이는 이제 놀이도 곧잘 하고 공부도 제법 한다. 이때 우리의 역할은 딱 러닝메이트로서의 몫을 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아이마다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대략적으로 학령기와 맞물려 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낼 때를 동거 단계로 보았다면 그 이후는 동반 학습자 단계이다. 러닝메이트는 보통 파트너십을 발휘할 때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나는 여기에 발음상 이중적인 의미를 덧붙여 학습 동반자(learning mate)가 되어주기를 부탁한다. 아이 대신 입시 설명회에 참여하고 학업 로드맵을 짜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바로 곁에서 같이 뛰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많이 의존도 하고 다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왔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제 길을 걸어가도록 해주되 아직도 동반자임을 명시하자. 금방 뚝 떼어놓고 “자, 이제 너의 길을 가렴!”하면 편하겠지만 역시나 곁에 서 있어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초등학생, 중학생이 된 자녀에게 더 이상 놀이 상대로서의 부모는 필요치 않다. 밥을 챙겨 먹여줄 필요도 없고 토닥토닥 재워줄 필요도 없어 보인다. 학령기를 지나는 아이 곁에서 함께 책을 읽어라. 함께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고 서점에 가라. 도서관도 가고 미술관도 가라.

  2인조, 혹은 3인조 팀이 되는 것이다. 세트 개념. 한 조가 되어 선거 운동을 펼치는 두 입후보자처럼 삶이라는 무대 위를 함께 걸어가는 파트너가 되어주라. 놀이터에서 입시터로 바뀔 뿐이다. 공부공간으로 무대가 바뀔 뿐이다.  놀아주고 함께 놀았던 지난 세월을 지렛대 삼아 조금은 수월하게 학습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페이스메이커(pace maker)가 되어 주면 금상첨화다. 아이의 학습량과 학업 스트레스를 살펴봐 주면서 힘겨워할 땐 한 보 앞서 뛰며 아이의 장애물들을 잠시 막아주어도 상관없다. 결국 끝까지 달려갈 아이는 아이니까 중간중간 곁에서 혹은 조금 앞에서 아이와 보조를 맞춰가자.

  나는 학령기의 러닝메이트로서 최고의 부모 모델은 박웅현 크리에이터가 아닌가 싶다. 그는 딸아이 유학시절, 리포트 쓰기를 힘겨워하는 딸에게 적절히 피드백과 위로를 얹어주었다. 에세이를 써서 보내오면 그 위에 빼곡히 아빠의 정성과 지성을 담아 코멘트를 적어 돌려주었다. 아이가 사회 공부를 어려워할 땐 친구 녀석도 함께 집으로 초대해 주말마다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공부한 아버지이다. 그는 자신이 즐겨 듣는 클래식을 아이와 나눌 줄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그림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소통할 줄 알았다. 저녁 늦도록 학원으로 밀어 넣고 달 달이 아이의 성취도를 체크하는 감독이 아닌 함께 뛰는 동료 선수가 되어주는 것, 이것이 스텝 2 러닝메이트의 역할이다. “공부는 잘 돼가?” “시험 준비는 잘했니?”라고 묻기보다 함께 커피숍에 가서 각자의 공부를 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만들어가자. 그것은 유아기 때와는 또 다른 깊은 달콤함을 준다. 그런 동행 해보지 않겠는가?


  마지막 스텝 3은 소울메이트로 사는 것이다. 이제 아이는 많이 자랐다. 어떤 면에선 부모보다 더 많이 더 깊게 성숙해진 자녀를 일상 자락 자락마다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자녀에게 부모는 어떻게 함께 해주면 좋을까? 간섭은 조금 줄이자. 이제 더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조금 덜 보채자. 부모들은 이제 더 자신의 시간과 여유를 찾아도 좋다. 다만, 아이가 마음고생이 심할 때,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를 통과하고 있을 때, 때때로 무너질 때, 그럴 때에 소울메이트가 되어주자. 아이에게 닦달하는 대신 함께 울어주고 으쌰 으쌰 힘을 내보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같은 공간에 몸 비비고 티격태격 싸울 시간도 적어질 것이다. 그러나 유년기 때 쌓아 올린 추억과 함께한 놀이, 두터운 감정선을 가지고 아이는 잘 살아낼 것이다. 이렇게 학령기, 사춘기, 청년기를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부디 아이와 교집합 구역을 많이 넓혀두자. 그러니 오늘부터 아이와 노는 거다.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거다. 아이와 소통하는 거다. 렛츠 고!  부모는 아이 삶의 동반자, 아이는 부모 삶의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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