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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스런 Oct 16. 2019

"응, 그래!"라고 말할 줄 아는가?

좋은 놀이 상대가 되는 비결

  두 살 차이 나는 남매가 노는 모습을 본다. 죽이 잘 맞는다. 한 녀석이 제안하면 다른 녀석은 “어, 그래.”하고 곧잘 따른다. 방안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야금야금 논다. 성별도 다른 오누이가 역할놀이도 했다가 자동차 놀이도 했다가 노래도 불렀다가...... ‘세상 참 재미나게 논다’라고 감탄할 때쯤 두 아이가 싸운다. 놀이 구경은 끝났다. 어서 일어나서 상황을 잠재우러 가야지......
  동갑내기 조카가 놀러 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둘째 녀석을 제쳐두고 자기 둘 끼리만 쑥닥쑥닥 노느라 약간의 투닥거림은 있지만, 그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신기하다. 한 명이 아가 인형을 가져오면 다른 녀석이 쪼르륵 뛰어가서 자기 인형을 가져온다. 너는 엄마가 되고 나는 아기가 된다. 이번에도 역시나 손발이 척척 맞는다. “나는 세 살이잖아.” “맞아, 아직 말을 잘 못하잖아.” 이러면서 서로의 말을 제때제때 받아치며 잘 논다. 이렇게 하기로 저렇게 하기로 약속을 굳이 정하고 들어가지 않는다. 함께 물건을 챙겨 오고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설정을 받아들인다. 이내 자신의 몫을 하면서 신기하게 놀이를 이어간다. 옷방에 가서 손수건 몇 장을 꺼내와서는 이불 덮어주는 시늉을 한다. 산책을 나가는 듯하더니 노래도 불러주고 어느덧 블록 놀이로 옮겨간다. ‘야, 저렇게 서로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는구나! 저렇게 노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지. 저렇게 재미있는데 밥 생각이 나겠나?’ 싶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이에게 놀이 상대는 무릇 저래야 한다고.
  엄마들 고민은 이렇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럼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을 잠시만 지켜보라. 이내 느낌이 온다. 동생이 하듯 친구가 하듯 그렇게만 해주면 놀이 상대로 최고다. 그 아이들의 놀이 기술 첫 번째가 바로 수긍이다. 상대가 지어주는 배역, 상대가 생각해낸 놀이 종목, 상대가 설정한 상황, 상대가 이끌고 가는 룰을 일단은 받아준다. 정말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놀이에 녹아들어 간다. 그러다가 그 주전 선수는 놀이 중간중간 바뀐다. 이 아이가 상황을 주도하다가도 저 아이의 제안에 놀이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늘 순탄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싸우다 우기다 타협하다를 반복하며 하루 해가 질 때까지 논다.
  한참을 논 아이들은 말한다. “내일 또 놀고 싶어요.” “조금만 더 놀다가요, 네?” 아쉬움이 진득이 묻어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떼쟁이 같은 모습도 보지만 ‘진지함’이라는 단어도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토록 재미있게 올인하여 신나게 만끽하는 모습을 어른 사이에서는 본 적이 드물다. 아이 놀이는 참 경건하고 자연스럽다.
  아이 놀이를 흉내 내는 첫 번째 기술, 그것은 바로 “어, 그래!”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가 말한다. “엄마, 요리 놀이하자!” “아빠, 놀이터 가고 싶어요.” “엄마, 자동차 만들어주세요!” 등등 아이가 시시때때로 제안할 때마다 그저 “어, 그래.”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저지레가 두렵고 귀찮고 상황이 안 된다 싶은 생각이 부모 머릿속에서 별안간 일어날 때, 그 핑곗거리에게 죽방을 날리듯 즉각 말해보라. “어, 그래 볼까?”하고 웃는 낯빛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자. 그럼, 우리 역시 내 아이의 좋은 놀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상상해보자. 밤 9시가 넘어선다. 여태껏 밖에서 놀다 들어온 아이 입에서 또 이상한 부탁이 새어 나온다. “엄마, 나 오늘 꼭 하고 싶었던 놀이가 있었는데 그걸 못했어요. 얼른 하트 접고 자면 안 돼요?” 상당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는 좀 잤으면 싶은 내 마음은 어떡하고 ‘어, 그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무슨 소리야? 여태 놀고선 이 밤에 또 뭘 놀아! 어서 양치질하고 나와!” 대번에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온다. 우리 집 옆집 누구네 할 것 없이 이런 수순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다음은 뻔하다. “네, 엄마.” 하는 아이는 없다. “왜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줘? 왜 엄마는 나한테 상냥하게 말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 또 소리를 쳐? 나는 지금 양치질하기 싫다고! 이거 놀려고 내가 맨날 생각했던 거야. 엄마는 내가 속상해서 이렇게 울면 좋겠어?......” 끝이 없이 늘어지는 아이의 날카로운 공격과 하소연, 우격다짐을 받아내는 일이 우리에게 남는다. 악순환을 몰고 오는 부모의 회유, 핑계, 강압.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 늦은 밤에도 웬만하면 “어, 그래.”하고 당장 색종이 한 장을 대령 해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10분 안에 끝날 일이다. 아이도 흡족해하며 “엄마! 오늘 정말 행복한 날이야. 엄마, 고마워!”하고 갖은 아양을 떨며 스스로 욕실로 들어갈 것이다. 양치질을 하며 또 나의 심기를 건들기는 할 테지만. “엄마, 오늘은 엄마가 양치질해주면 안 돼?”하고.
  속으로 외친다. ‘어, 그래.’ ‘어, 그래.’ ‘어, 그래.’ 죽도록 연습해봐도 잘 입에 붙지 않는 저 말. 그런데 저 받아냄이 아이를 키운다. 그 수긍 한 마디가 아이를 보드랍게 크게 한다. 그렇게 챙김 받고 놀이를 원대로 해본 아이가 배려를 알고 타협을 안다. ‘어, 그래.’라고 말이 퍼뜩 나와주지 않는 부모는 자신의 언행불일치에 하루 건너 하루마다 자책감을 느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애달픈 노력들이 쌓여서 아이가 자라는 걸 어쩌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11시가 넘은 이 밤에 바바파파 시리즈를 읽고 있다. ‘아, 재미있어. 아, 편안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깊은 눈과 평온한 입가에서 행복감을 읽는다. ‘오늘도 잘 살아냈구나!’ 다소 피곤한 심신을 이부자리에 뉘며 나 역시 행복감 비슷한 것을 느껴본다.
  나는 놀이로 육아의 8할을 채운 지 햇수로 6년을 넘어선다. 그리고 알아낸 귀한 한 가지가 “어, 그래.”이다. 당신께도 과감히 권해본다. 상당히 힘들다. 귀찮고 하기 싫고 신경질 나고 지친다. 그럴 것이다. 그래도 아주 자주 말해주어라, 아이에게. “어, 그래!” 되도록 가볍게. 이거 한 마디만 잘해도 당신은 참 괜찮은 부모가 될 수 있으리라. 나는 우리 아이들만큼은 구김살 없이 행복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적어도 부모 곁에서 뒹굴고 응석 부리는 대여섯 살 유년기에는 최대한 많은 수용을 느껴보며 살면 좋겠다. ‘오늘 밤엔 딱 세 번만 되내고 주무셔보세요. 어, 그래, 어, 그래, 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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