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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스런 Oct 25. 2019

아이의 놀이는 자연스러운 날숨이며 참지 못하는 재채기다

놀이는 본능이다

  “아우, 쫌! 아빠한테 가서 놀아달라고 해! 왜 자꾸 엄마한테만 오는 거야, 너희들은.”

  “여보는 지금 휴대폰만 보고 혼자만 쉬고 싶어? 애들하고 좀 놀아줘, 응?”

  “엄마, 조금만 더 놀고! 배 안 고파. 나 안 졸리다고!”

  아빠와 엄마는 아이들의 끝없는 놀이 욕구를 감당하지 못해 힘들다. 아이들은 부모가 놀아주지 않아서 놀게 해주지 않아서 불만이다. 이렇게 놀이 전쟁이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자주 펼쳐지는 흔한 광경이다. 우리 집도 날마다 그렇다.


  왜 아이는 그렇게 놀고도 또 놀자고 졸라대는가? 왜 부모는 아이와 노는 게 이리도 귀찮고 힘드냐 말인가? 노는 게 가장 좋다고 떠들며 다니는 나, 노가리샘에게도 놀이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나 놀기 바빠서 아이와의 놀이가 귀찮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 어린 녀석들과 놀고 놀고 또 놀아야 한다고 앞으로 장작 서른 편이 넘는 글에서 줄기차게 주장할 요량이다.


  “흥! 아이한테 놀이가 중요한 거 누가 몰라서 그래? 놀이가 참 쉬운 당신이나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며 키워 보세요!”하고 돌아설 사람들까지도 끝내는 동의 하게끔 만드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참, 배짱도 좋지.’ 결국은 이 놀이 동행길 함께 걷게 만들겠다는 포부로 아이놀이계의 잔다르크처럼 서 있다. 하지만 현실은 돌고 도는 생각들 사이에서 어떻게 첫 글을 풀어나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그런데 ‘진짜를 쓰자. 아이와의 일상 놀이 그것에 대하여 보태는 거 빼는 거 하나 없이 쓰는 거야. 거하게 포장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지. 힘들었던 것 다 잊고 아름답게만 쓰겠다는 알량함도 버리자. 그대로 써 내자.'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가벼워졌다.


  다들 이런 경험 있지 않은가? 갑자기 터질 듯한 재채기에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아보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린...... 틀어막은 손 사이로 밥알이며 음식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온다. 어렸을 적 숨 오래 참기 시합을 해본 경험은? 나오는 숨을 참아보겠다고 코를 틀어쥐고 애를 써도 어느 순간, “파아 아아!”하고 터진 입으로 숨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똑같다. 아이의 놀이는 자연스러운 날숨이고 막을 수 없는 재채기와 같다. 학자들은 아이에게 놀이는 본능이라고 했다. 나는 인간 본능에 대한 연구까지는 해보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고 포기하지 않는 놀이에 대한 욕구가 ‘본능’이라는 글자에 붙으면 꽤 어울린다는 생각은 든다.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본능적 욕구를 감히 막아내는 일을 감행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규율, 편의, 미래 계획 등의 이유를 하나씩 들이밀면서 말이다. ‘여기서는 떠들면 안 된다, 오늘은 이것 갖고 놀자, 할 일부터 하자, 잠잘 시간이다’......


  나도 그랬다. 아이가 놀자고 다가오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어떻게든 남편에게 아이를 돌려보내거나 다른 일로 주의를 환기시킬 궁리를 했다. ‘아, 쉬고 싶은데......’ ‘아, 나도 친구랑 얘기하며 커피 마시고 싶은데......’ ‘아, 신랑은 휴대폰 보고 쉬고 있는데 왜 유독 얘는 나한테 와서 놀아달라고 하는지......’ ‘맨날 똑같은 이 놀이하면서 이게 뭐 하는 거지? 글자는 보는 척도 안 하고 맨날 6이랑 9는 헷갈려하고......’ 피곤한 날은 급기야 아이를 다른 방법으로 회유하고 나섰다. 어떻게든 이 아이를 ‘지금 그 놀이’ 생각에서 멀어지게끔 말이다. “게임, 한 판만 할래?” “저기, 친구들한테 가서 놀아. 엄마가 이따 끝나고 아이스크림 사줄게.” “그냥 영상 한 번 볼래? 주말이고 오랜만인데......”


  아이고, 창피해라. 그렇긴 한데, 내가 많이 피곤하고 힘든 건 아는데, 아이가 많이 불쌍하다. 아이의 심정을 모르고 매번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아이를 불만족 상태에 빠뜨리는 어른들이 너무 못돼 먹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의 공저자 중 한 명, 스튜어트 브라운을 소개한다. 미국 최고의 놀이 행동 전문가인 그는 평생 ‘놀이’ 연구에만 매달려 왔다. 그는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우리의 행복과 성공을 열어주는 열쇠는 놀이에 있다고 거대하게 말하는 그가 정작 놀이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는 짐짓 꺼린다. 그 좋은 놀이를 정의하고 분석하려고 들이대는 순간, 놀이의 쾌감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고......

그 대신 놀이에 흠뻑 빠져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사진을 무차별로 들이댄다. 너무나 아름답고 소름 끼칠 정도로 사랑스럽다. 아이의 웃음이 눈물 나게 예쁘다. 며칠을 굶주린 흰 곰이 눈 앞에 나타난 썰매 개와 몸 부비며 노는 사진은 어떤가? 배고픈 동물도 논단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냐고 되묻는다. 평생 놀이하지 못한 채 심리 질환을 안고 산 희대의 살인범 찰스 휘트먼의 사례를 들려주는 구석에선 아찔하다. 놀지 않는우리를 멈춰 세운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스튜어트 브라운의 책을 서두에 펼치는 이유는 앞으로 전개될 내 논리가 빈약할 것을 염려해서이다. 조금 무례한 감은 있지만 너른 이해를 구하며 조심히 글을 써내 본다.


  놀이는 생존에 민감한 동물에게까지 유전적으로 남겨진 한 영역이다. 살아가는 데 절대적이지 않았다면 먼 옛날 사라져 버렸어야 마땅할 요소다. 하지만 실타래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나 눈 덮인 마당을 휘젓고 뛰어다니는 강아지, 얼음 미끄럼틀 타기를 내내 반복하는 갈까마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가 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게 되리라.


 어릴 적, 해가 저물어 어둑해질 때까지 동무들과 어울려 놀았던 때가 있지 않은가? 반나절 내리 종이 인형을 오려서 언니랑 동생이랑 역할놀이를 하며 가지고 놀던 때가 있지 않은가? 종이가 너덜 해져 인형 목이 부러질 때까지 말이다. 바지 끝자락과 장갑 속 손가락이 눈에 젖어 꽁꽁 얼었는데도 흐르는 콧물만 지익 닦아내고는 주구장창 눈 놀이를 했던 어릴 적 기억이 있지 않냔 말이다. 우리 어른은 대학을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일’이라는 것을 한 뒤부터 ‘놀이’에 대한 감, 향수,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 중요한 것을 다시금 붙들고 살라고 우리 곁에 자연 한 조각이 떨어졌다. ‘아이’. 소중하고 빛나는 아이. 놀이를 무진장 사랑하는 그 아이.


  아이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이다. 놀면서 행복감을 맛보고 놀면서도 건강히, 똑똑하게 자라는 모습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우리 부모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제대로 놀 때 박수치고 곁에서 머물자. 아이가 깔깔거리며 정신없이 놀이에 빠져 하루를 살고 한 해를 살아낼 때, ‘아, 감사하다!’ 탄복하자. 인생은 바삐 살 필요가 별로 없다. 다 큰 어른이 우울함을 느끼고 삶에 공허함을 느낄 때, 그들 삶에 ‘놀이’가 빠졌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바로 아이이다. 그러니 불안해 말고, 귀찮아 말고,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아이와 놀자. 아이가 그네를 밀어달라고 할 때, 엉덩이를 밀어내며 힘차게 노래를 지어서 불러줘 보자. 이왕지사 그림책을 읽을 바에야 신나게 읽어주자. 내 남편은 모 성우로 빙의된 양 읽어주는 데 나도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열심히더라. 아이가 그림에 푹 빠져서 환희에 차 있을 때, 같이 빠져 들어보자.' 왜 이 녀석 꼬리가 이렇게 화려한지 모르겠다'고 트집도 잡아가면서 이야기 속에 빠져보는 거다.

  

  바쁘고 조바심 내는 어른일수록 놀이가 쉽지 않다. 놀이의 중요성을 잊은 지 오랜 그대들일수록 아이의 놀이 루트를 자꾸 변경하려 나선다. 틀어막고 우회하지 말라. 학원을 보내고 영상을 보여주고 학습지에 아이들을 몰아넣으면서 학습, 계획, 효과라는 말들을 앞세우지 말자. 그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다가 우울함과 무기력함, 반항감 가득 찬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놀이 세상으로 유턴하기에는 잃는 것이 너무 많을 테니까. 아이가 어리면 지금이 딱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며 한참 공부할 때라도? 너무 낙심 마라. 다 자란 어른에게도 필요한 것이 놀이이니까. 오늘, 지금부터 아이의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으면 된다. 그리고 명심하라. 아이에게 놀이는 막아도 막아도 터져버리는 재채기와 같고 매 순간의 날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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