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모든 것이 재미지기를 원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좇는 놀이는 어떤 모습일까? 심심한 것을 1초도 못 참는 이 아이들, 하루 종일 원하는 만큼 놀아야 지쳐 떨어져 자는 아이들, 이들에게 놀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나는 아이들과 함께 놀기 위해 아이 놀이의 색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펴본 아이 놀이는 아이 주도다. 아이가 마음대로 시작하고 돌연 방향을 틀고 시의적절하게 명령을 내리곤 하는데 그 속에서 아이는 '자기 재미'를 쫒아간다. 그래서 놀이로 아이를 이길 수가 없다. 놀 줄 모르고 제대로 즐길 줄을 모르는 우리는 매번 아이보다 먼저 지쳐 꼬리를 내리고 만다. 아이 일상 전부가 놀이라는 것도 내가 발견한 아이 놀이의 빛깔이다. 어린 왕자가 발견한 지구별의 아름다움과 생소함처럼 아이에게는 일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하고 재미있다. 또한 아이는 순전히 재미있어서 논다. 뭘 위해서 노는 게 아니다. 우리처럼 목표를 지향하고 시간, 노력 대비 뭔가를 이루려는 목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냥 재미있어서 논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해본다. 그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께 권하고 싶은 놀이의 결이다.
지금부터 하나씩 아이 놀이를 들여다보자. 그전에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엄마표’가 붙은 것들을 아주 많이 싫어한다. 엄마표 영어, 엄마표 요리 놀이, 엄마표 초등 독서 등등. 처음 엄마표가 나오기 시작한 배경은 사교육에 대한 대안 혹은 사교육과 맞서는 개념에서였을 것이다. 편의적인 면과 영재 교육의 측면에서 사교육 프로그램에 교육과 육아 외주를 두었던 부모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입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그 효과가 그럴듯하게 증명되지 못하자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해볼까?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건 난데 왜 학원에 굳이 보내고 방문 선생님께 맡기지? 이참에 교육비도 줄이고 아이랑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거야. 공부 머리도 키우고 재미있게 해 보는 거지!’ 의욕이 넘치는 엄마들은 밤새 인터넷 맘 카페를 뒤적이고 이런저런 교구를 성심껏 만들기 시작했다. 오리고 붙이고 코팅하고 알록달록 보기 좋게 만드느라 가끔은 곁에 오는 아이가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저것 묻고 만지는 아이가 되려 방해가 돼서 “엄마 이거 만들 때까지 저기 좀 가 있을래?”하고 정작 아이를 밀어낸다. 그리고선 “짜잔!”하고 그 멋진 엄마의 작품을 아이 앞에 들이민다. 아이가 “우와!”하겠는가? 아이는 생각보다 태연하다. 엄청 좋아하고 달려줄 줄 알았는데 무심하게 반응할 때도 많다. “오~ 잘 만들었네. 엄마는 이런 것도 잘하고 좋겠다.”하고 그냥 자기 놀이를 하러 가기도 한다.
잠도 잊고 좋다는 것들 다 공부해서 준비한 건데 너무 하지 않은가! 아이는 엄마가 모아 온 솔방울, 아크릴 물감, 나뭇가지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것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엄마 마음속, 엄마 머릿속에 있었지 아이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어디 그뿐이랴? 효과 좋다는 학습지나 책, 보드 놀잇감, 과학 실험 세트, 한글 놀이 카드 등을 큰 맘먹고 산다. 커리큘럼이라고 하기까지는 그렇지만 어떻게 아이 한글을 떼줄지, 어떻게 아이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해줘야 할지 엄마는 기대, 계획, 욕심에 차있다.
그런데, 정말 효과가 있는가? 효과는 있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아이가 한글을 모를 리가 있나! 아이 입에서 제법 고급진 어휘도 나오고 미술 작품도 꽤 그럴싸하다. 그런데 효과에 비해 아이 만족도가 낮다. 아이 참여도가 낮다. 아이 열성이 낮다. 그래서 오래 못 간다. 끌고 가는 격이라 끄는 엄마도 고되고 끌려가는 아이도 재미없다. 엄마는 사서 고생하고 마음만 아프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건 하지도 못하고 바쁜 엄마가 싫다. 엄마가 내게 가져오는 것들은 잠깐만 신기할 뿐 완전 재미있어서 빠져들만한 것은 별로 없다. 왜? 무엇이 문제지?
엄마표 활동들의 최대 약점은 아이를 수동 상태로 만든다는 데에 있다. 엄마가 대장이다. 엄마가 선장인 배에 아이가 타는 항해길, 재미가 있을까? 물론, 재미있는 날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순전히 아이가 궁금하거나 하고 싶어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언제든 선장의 항로에 불만을 품을 수 있다. 멀미를 할 수도 있고 굳이 함께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게 된다. 내재적 동기로 시작된 일에는 주도적이 된다. 호기심이 발동되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발 벗고 나선다. 의욕이 있어야 재미가 따라온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표는 한계가 있다. 엄마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아이는 늘 명령 대기 상태 및 협조 상태에 머무는 이상, 우리는 이것을 절대 놀이라고 볼 수 없다. 엄마표 과학놀이, 엄마표 미술놀이, 엄마표 영어놀이는 가짜다. 엄마 힘을 좀 빼자. 아이가 놀고 싶어서 놀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놀아야 진짜 재미진 놀이다. 아이 입장에 서보는 거다. 아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했을 때 우리는 진짜 놀이를 경험할 수 있다. 그때 아이는 놀이 삼매경에 빠진다. 비로소 아이 삶의 항해자가 아이가 되고 엄마는 선원이 된다. 그렇게 동행하자. 놀이 육아, 엄마표로 하면 지친다. 무엇보다 아이가 신이 안 난다. 즉흥적으로 노는 아이는 계획적으로 노는 엄마가 답답하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우리가 아이 놀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벤트성으로 논다는 거다. 아이는 일상 전부가 놀이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놀잇감으로 둔갑한다. 지금 들은 그 내용이 궁금해서 자꾸 질문을 하고 뭘 하자고 자꾸 제안한다. 지금 만져야 하고 지금 뛰어야 하고 지금 섞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니 아이는 엄마의 이런 말을 못 견딘다. “이번 주는 쿠키 만들러 가자. 다음 주 수요일에는 할로윈 파티용품 만들면 어떨까?” 아이들은 어쩌다 한 번 크게 놀아주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 큰 재미를 위해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버릴 아이들이 아니다. 그건 그거고 지금 여기서 계속 놀아 봐야 하는 것이 아이다. 엄마 아빠는 주말에 자연 체험도 다녀와 줬고 어제는 클레이 놀이도 해 줬으니 지금은 좀 쉬면 안 되겠냐 하겠지만 아이는 그것으로는 놀이배를 채울 수가 없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허구한 날 시시때때로 놀아야 아이가 놀이를 배불리 먹었다 한다. 그래야 “아, 엄마 재밌어요! 오늘 참 행복했어요.”한다. 그러니 몇 차례 키즈카페에 데려다주고, 몇 번 미술놀이를 해주는 것으로는 아이라는 놀이 고객을 만족시켜줄 수가 없다. 그냥 일어나면 양치질 물 뱉는 것부터가 놀이라고 마음을 먹자. 쌀 씻는 내 곁에 와서 내 것을(!) 탐내고 묻고 주무르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수밖에 없다. 내가 읽는 책을 굳이 빼앗아가서 훑어보고 “여기다 뭐 그려도 돼?”라고 묻는 아이를 그냥 바라보는 게 아이와 노는 것이다. 내가 책 사이에 꽂아놓은 검정펜으로 페이지마다에 이상야릇한 낙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 아이의 놀이를 꺾지 않는 방법이다. “아, 저 음악 참 좋다!”라고 말하는 순간, “엄마, 내 노래 들어볼래?”하면서 즉흥곡을 부르는 아이의 놀이 본성을 우리는 받아내고 또 받아내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크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신나게 하는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놀이에서 뭐를 찾으려 하지 말자. 놀이를 통해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지 말자. 노는 동안 즐거웠으면 됐다. 그걸로 끝이다! 학습적 효과를 기대한다던가 목표한 바를 이루려 하기보다 순수하게 그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이의 놀이다. 놀이에 있어서의 비목적성, 그것이 놀이의 목적이다. 사실, 몇 년을 놀아보니 알겠다. 내가 굳이 아이의 사회성을 키워주려 하지 않아도 아이는 놀다 보면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운다. 엄마인 내가 굳이 영어공부를 염두하지 않아도 흥얼거린 노래 속에서 자연스레 알파벳을 익힌다. 야무지게 종이 접고 가위질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놀다 보면 어느새 가을 알밤 마냥 아이 손이 여문다. 그러니 조바심, 욕심, 염려 뭐 그런 것들은 맘 편히 놓아버리고 목적 없이 놀아라. 계획 없이 놀아라. 순수하게 즐겨라. 그러면 모든 것들이 시간을 두고 줄줄이 따라온다. 시간이 제법 걸리니 우린 놀이의 힘을 실감하지 못하는데 놀기만 해도 아이는 건강하고 똑똑하게 자란다. 아니 독하게 말해보면 놀아야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하게 자란다.
기억하자. 엄마표 놀이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어쩌다 한 번 노는 건 노는 게 아니다. 숫자놀이, 한글 놀이, 과학놀이, 창의 놀이는 없다. 그냥 놀이는 놀이인 거다. 학습과 연결시키려는 애꿎은 노력을 안 해도 저절로 아이는 숫자, 한글, 자연, 학문을 알아갈 테니 오늘부터 염려 붙들어놓고 그저 즐겁게 노는 거다. 그래도 된다. 그래야 한다. 그저 재미있어서 노는 거 그게 가장 위대한 놀이 경지임을 잊지 말자. 재미있어 시작한 글쓰기로 이왕이면 작가가 되고 싶고 이왕이면 작품상도 받아보고 싶고 이왕이면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냐 마음먹는 순간 글쓰기는 일이 된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놀이는 놀이로 끝나는 것이다. 아이의 놀이결은 자연스럽고 즉흥적이다. 그래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