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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스런 Nov 10. 2019

아이들은 '가나다라'부터 한글을 배워가지 않는다

취학 전 놀이로 한글 떼기

놀이로 한글이 떼질까?
중요한 것은 주체, 관심사, 노출이다.


  학습처럼 한글을 뗀 아이와 놀이처럼 한글을 뗀 아이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우선 그 의도와 주체가 다르다. 학습처럼 한글을 익힌 아이들은 한글을 떼는 것이 목적이 된다. 교재에 적힌 글자들을 따라 적고 단어 카드를 넘겨 읽는 등 시간을 정해 따라가듯 학습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놀이처럼 한글을 뗀 아이들은 놀다 보니 한글을 알아버린 것이다. 놀이의 목적이 한글 떼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목적성 없이 부모님의 계획이나 준비 없이 아이 주도로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갔을 뿐인데 덤으로 한글이 떼진 것이다.


  이건 참으로 큰 차이를 낳는다. 아이는 자신이 주체가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기분 좋게 한글을 깨치게 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이 과정을 곁에서 보면 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학습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부모알아차릴 수 있다. 거부반응 없이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상당히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이치를 알아간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 원리는 비단 한글 떼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연현상, 우주의 원리, 과학적 사고, 수학적 개념, 음악의 세계 등을 경험할 때 아이는 자신의 궁금증과 호기심에 근거하여 탐구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런 기저에서 아이의 흥미는 지속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장, 변형, 성장의 과정을 거친다.


  매일 끼적이고 사랑의 편지처럼 그림이나 글자 몇 개 적힌 쪽지를 주고받다가 ‘엄마’라는 글자를 아이가 물어왔다. 나는 아이에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커다랗게 ‘엄마’를 써줬을 뿐이다. 하트로는 부족한지 “엄마, '사랑해'는 어떻게 써?”라고 딸이 물어왔다. 그렇게 ‘사랑해’라는 글자를 아이는 보고 베껴 적기를 수십 번 한다. 다음엔 ‘아빠’라는 글자를 써야 하는데 모르니 내게 질문을 했고, 동생 이름, 자신 이름을 알아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주인공 이름을 알아갔다. 자기가 즐겨먹는 과자 이름 한 두 개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다음번에 마트에 가면 그 과자 앞에 서서 또박또박 그 이름을 읽고 지나갔다.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고 아이 입장에서 시작된 놀이이자 학습이었다. 내가 욱여넣고 밀어붙이고 교묘하게 계획하지 않아도 아이는 본인의 삶에서 자연스레 문자를 알아갔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재미있었고 부담 없었다. 비록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공부였기에 내 아이의 한글 공부는 ‘가나다라’부터 시작되지 않고 ‘엄마, 사랑해, 서희’로 시작된 것이다. 학습처럼 한글을 떼는 아이들은 심적으로 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 삶에 왜 ‘기역, 니은’이 중요한가? 아이에게 ‘가방, 가위, 가지’보다 더 익숙한 것은 ‘똥, 우유, 병원, 뽀로로’라는 글자 아닌가? ‘하, 하, 하, 하, 하’를 똑같이 열 번 쓰는 것보다는 ‘하품’에서 ‘하’자를 한 번 보고 ‘하루’에서 또 한 번 ‘하’자를 보고 그렇게 수없이 스쳐 지나가듯 보아온 글자들에서 아이들은 기억을 소환하고 나름대로 추리를 하고 기억을 짓는다. 글자의 모양을 여러 번 구경하고 자주 보는 글자들을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다 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글자들이 쌓이는 것이다. 생소한 낱글자, 자신과의 연관성이 적은 통 글자 학습, 매주 화요일마다 10분씩 하는 방문 한글 학습보다 훨씬 맥락이 닿지 않은가?


  아이가 자신의 필요, 관심사, 호기심에 근거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가기 시작하면 쉽게 질려하지 않는다. 옆에서 채찍을 가하지 않아도 당근을 준비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한다. 자신이 걸어가고 파고드는 길에 부모를 간간이 불러 세워 구경시키고 도움을 구한다. 확실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을 기쁘게 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아이는 이렇게 삶을 사니 부모의 구속, 간섭, 조작이 불편한 것이다. 그러니 한글도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자신 삶의 맥락에서 찾아 알아가게끔 아이를 따라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습처럼 한글을 알아가는 아이는 한글 떼기가 자신의 과제가 된다. 탐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끝내 치워야 하는 의무 같은 것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자신이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때조차도 자기에게 투입되는 무자비한 학습 폭력인 것이다. 요구하지 않을 때도 마구잡이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트는 무례한 공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글을 접하게 하고 싶은가? 그렇게 영어를 알아갔으면 좋겠는가? 그렇게 곤충의 세계를 마스터하면 좋겠는가?


  조급해하지 않으면 된다. 부모가 앞장서지 않으면 된다. 아이의 요구에 귀와 마음을 열면 된다. 아이가 궁금해하고 하고자 하는 것들을 말할 때 그것에 응해주면 된다. 아이의 관심은 매일매일 다른 곳을 향한다. 아이의 관심은 종횡무진 옮겨간다. 그러니 하나를 제대로 기분 좋게 탐험하고 나면 그다음 영역에 새로운 마음으로 덤비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아이가 글자에 관심이 생기겠거니 하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적절히 환경을 구성하고 노출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때에도 부모의 짙은 의도나 계획은 최대한 자제하고 아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보조를 맞추는 것이 다. 입학 전에 한글 떼기를 자연스럽게 성공하고 싶다면 세 가지를 기억하라. 주체, 관심사, 노출! 이제 하나씩 풀어보자.


  우선, 아이 주도의 자발적 활동이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집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이들은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든 끼적임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동굴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고 문자를 새겨 넣은 것 보아도 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쪽지를 쓰고, 스티커나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그리고, 과자나 비타민 봉지에 적힌 글자들을 옮겨 적으려는 때가 온다. 그때를 놓치지 마라. 그리고 아이의 그런 끼적임, 베껴 적기, 흉내내기 활동에 살짝살짝 추임새를 넣고 숟가락을 얹으면 된다. “아이구, 잘 따라 썼네! 서희는 카스타드 좋아하지?”하면서 과자 이름을 한 번 슬쩍 읽어주는 것이다. “우와! 서희 숟가락이랑 물통에 이름 써서 붙이려는 거야? 엄마 이름도 적어도 돼? 서희가 쓰는 거 보니까 나도 쓰고 싶다.” 이런 식으로 아이가 후딱 호기심을 옮겨가지 않게 조금만 붙들어 두면 된다. 그래서 아이 삶의 영역에 ‘문자’를 심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문자를 자연스럽게 맞이하게끔 대면식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둘째로는 내 아이의 관심사를 따라가면 술술 풀린다는 것이다. 강점을 찾아가는 것도, 학습하는 것도, 심지어 버릇을 고치는 것에도 쉽게 통하는 것이 아이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방법이다. 내 아이가 공룡을 좋아하면 수없이 공룡 책, 공룡 스티커, 공룡 인형 등을 가져올 것이고 사달라고 조를 것이다. 그럴 때 ‘아싸, 좋았어. 고마워, 아가.’라고 일단 아이에게 감사함을 표하라. 아이가 가져오는 책을 날마다 읽어주면 된다. 아이가 물어보는 공룡 이름을 계속 알려주면 된다. 아이가 사고 싶어 하는 공룡 완구 앞에서 계속 사용법을 설명해주면 된다. 아이가 넋 놓고 보고 있는 공룡 영상을 수십 번 돌려주고, 영어로도 틀어줘 보면 된다. 그럼 작정하고 한글 떼기를 하지 않아도 감사하게도 입학 전까지는 글을 읽는 아이가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 집 꼬마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한다. “아빠, 나는 차에 타면 조용히 쉬고 싶을 때가 있는데 자꾸 글씨가 보여!”라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노출이다. 언어를 가장 쉽게, 자연스럽게 익히는 방법은 자주 듣고 자주 보고 자주 읽고 자주 쓰는 것이다. 그렇게 알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부담이 적으면서도 자연스럽다. 엄마, 아빠가 날마다 들려주는 자장가와 일상 언어,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말을 텄다. 옹알이를 하고 단어를 말하고 두 단어를 조합하고 마침내 문장으로 말했다. 문자도 똑같다. 책을 많이 읽어주면 참 좋다. 책을 읽어주는 사이, 아이는 부모의 음성을 듣는다. 그 음성과 짝이 되는 글자를 자연스레 연결 짓는다. 그렇게 여러 번의 매치 작업을 끝내면 어느 날 아이가 “어, 왜 엄마 보는 책에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라고 쓰여 있어요?”라고 읽는다. “엄마, 저기 보세요. 시크릿 쥬쥬 공연한대요.”라고 광고 문구를 읽는다. 기가 막힌다. 황홀감을 느낀다. 아이가 게 작은 감탄을 선물한다.


 체계적으로 한글을 가르친다기보다 아이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상을 보다 보니, 그림을 그리다 보니, 쪽지를 쓰다 보니 저절로 글자를 알아가게 되는 것을 지켜보면 그뿐이다. 바라보라. 관전하라. 아이가 알아서 다 걸어간다. 한글 떼기도 시간만 길게 보고 가면 다 걱정 없이 이루어진다. 아이가 신호를 보내고 궁금해하고 요구할 때 적절히 그 관심사를 따라가 주고 여러 번 노출해주면 그것으로 우리의 할 일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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