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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스나 Jul 10. 2020

할머니의 신공

한 번은 5분 만에 나의 신상을 털린 적도 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어느 여인이 다가와 묻는다. 

 “여기서 ㅇㅇ 학교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나요?”

 몇 번이라고 말해 주니 여인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정류장 의자에 앉는다. 슬쩍 둘러보니 네댓 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7분 후 도착이라는 안내판을 보며 왜 여인이 내게 물었는지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한다. 이 시답지 않은 생각은 거리를 걷거나 길에 서 있을 때 유독 내게 길이나 건물의 위치 같은 것을 묻는 사람이 많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결론은 내가 친절하거나 어딘지 만만해 보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난 그리 친절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길 가는데 느닷없이 ‘도를 믿으세요?’ 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태권도는 믿어요.’ 하고 내뱉는다던가 아파트 현관 벨을 누르며 ‘주님을 영접하셨나요?’ 전도를 하면 복도가 울리도록 크게 ‘아직 안 오셔서요.’ 하고 빙긋 웃고는 그들의 놀라는 얼굴을 바라본다. 아마도 그 예쁘장한 처자들은 그 날 교회로 가서 ‘오늘 미친년을 봤어요.’하고 이를 것이다.  

 전철역 근처를 걷다 보면 오가는 사람들에게 후원과 서명을 구하는 젊은이들을 본다. 무슨무슨 의사회 라던가 아프리카 난민 구호 단체, 결식아동 후원회 등등 가슴 아픈 사진을 진열하고서 관심과 사랑의 눈길을 끌려고 애쓴다. 이 착하고 풋풋한 젊은이들에게 그리 냉정할 자신은 없다. 다행히 나는 ‘유니세프’에 월정액을 후원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애절한(?) 손길을 간단히 뿌리칠 한 마디가 있다. 

 “유니세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젊은이는 아, 네 하고 순순히 물러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의 건망증은 이 요긴한 한 마디가 생각나지 않기 시작했다. ‘유니’는 생각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유네스코? 유니 유니... 유니클로? 유니섹스,라고 말할 뻔한 적도 있다. 유니 짜장이 생각 안 난 건 다행이었다. 

 한 번은 전철을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느닷없이 “아이고. 허리야.”하고 말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옆을 돌아보다가 아차, 싶었다. 할머니가 푸근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미소를 조금 내보였지만 이미 늦었다.

 “비가 올라나, 왜 이리 쑤시지?”

 “아, 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앞에선 사람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앞에는 손톱에 까만 매니큐어를 한 처녀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그 옆에는 이어폰을 낀 청년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나이는 못 속여.”

 그녀가 말했다. 

 “아, 네.” 

 “아침에 일어날 땐 한참을 버둥거린다오.”

 “그렇죠.”

 “한 번에 못 일어나.”

 “그렇죠.”

 나의 단답형 말투는 몇 정거장이나 계속됐다. 한 번은 5분 만에 나의 신상을 털린 적도 있다. 그 후로는 누가 (주로 할머니들) 말을 걸라치면 이번 역에서 내린다 하고 옆 칸으로 도망친다. 할머니들은 누가 말을 잘 들어주는지 척 보면 아는 센서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보지 않고도 알아내는 신공의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간혹 다니는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실에서였다. 물리치료실은 대체로 칸칸이 하얀 커튼이 쳐져 있고 치료하는 간호사나 드나드는 곳이다. 간혹 휴대폰 소리 외엔 조용한 곳에서 나는 어깨에 처치를 받고 있었다. 

 “여기는 간호사가 친절해.”

 뜨거운 것을 어깨에 걸치고 슬슬 잠에 빠져들던 나는 느닷없는 소리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옆 칸인데 아마도 휴대폰으로 통화하나 보다 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여기 얼마나 다녔소?”

 그제야 나는 혹시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인지 두리번거렸다. 커튼 자락 아래쪽을 보니 노인용 단화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저 말씀이세요? “

 “그류.”

 목소리는 영락없이 할머니였다.   

 “요새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디 사는데?”

 “근처 살아요.”

 “난 딸내미가 태워다 준다우. 애들은 몇이유?”

 “둘이에요.”

 “둘 다 아들 이유?”

 “네.”

 “에구.”

 에구라니? 신상털기의 시작이었다.

 나는 대화를 끊을 방법을 모색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묘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잠든 척을 할까, 휴대폰 받는 척할까...

 “아직 여위진 않았나 보네.”

 나는 ‘여위었다’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라는 사실에 할머니의 말을 ‘생깔’ 수 없었다. 

 “예. 아직요.”

 결국 그 날 나는 할머니와 비대면의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고 먼저 치료를 끝낸 내가 나올 때까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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