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위트 넘치는 극작가 버나드 쇼가 살아생전 써 놓은 자신의 묘비명
나의 어릴 적 꿈은 대통령이나 현모양처가 아닌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다. 돌이켜보면 ‘노벨 문학상’을 ‘노벨 백일장’ 정도로 오해한 것으로, 거창하다기보다는 애교스럽다고 해야 할 듯하다.
이사도라 던컨이 ‘평생 춤을 추겠다’고 결심한 게 열세 살이라는데 그녀만큼이라도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 했다면 동갑의 나이로서 그냥 ‘평생 글을 쓰겠다’고 결심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인 열세 살 소녀는 글 쓰는 것보다 엉뚱한 걱정에 몰두했다.
상을 받으면 시상식에 나가야 하고-어쩌다 TV에서 시상식 장면을 보긴 했을 것이다.- 수상자들을 위한 축하파티가 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벨상 위원회가 있는 스웨덴의 국왕이 파티를 주최할 것이고 그러면 그의 아들인 구스타프 왕자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그 왕자는 분명히 젊은 여자 수상자(꽤나 일찍 받을 줄 알았나 보다)인 나에게 춤을 청할 것이고 어쩌면 나의 지적인(차마 외모 때문은 아니라는 염치는 있어서) 아름다움에 반해 청혼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조국과 가족을 버리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나의 걱정은 그것이었다.
근래 들어 인생의 후반전을 맞아 우울 모드에 잠기는 친구들을 있었는데 그들을 웃길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나는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이 어린 날의 유치 찬란한 꿈을 폭로해 준다. 그러면 친구들은 허리를 꺾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의 어린 망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방학숙제로 쓴 일기가 학교 신문에 실리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다른 반 아이들까지 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떤 아이는 “누가 써 준거지. 어린애가 우수니, 경칩을 어떻게 알아?” 하고 분에 넘치는 의심을 해 주었다. 한 번 명성(?)에 맛이 들자 나의 꿈은 이상 증식을 하고 공부보다는 책을 읽는데 정신이 팔렸다. 재미없는 수업시간에는 책상 밑으로 소설책을 읽다가 선생님한테 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학교에 가니 과목 별로 혼내는 타입이 다양했다. 책을 빼앗거나, 교실 뒤로 가서 서 있게 하거나, 손바닥을 때리는 것 정도는 이골이 났다. 그러나 수학 선생님의 경우, 읽던 책을 가지고 교단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아이들 쪽으로 돌려세우고 뒤에서 나의 양 뺨을 꽉 잡아당겼다. 나는 조커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 분하기 짝이 없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 소설 부분 당선 작품에 반해서 (당선 소감에 나온 작가의 사진이 젊고 잘생기기도 했다.) 난생처음 당선자에게 팬레터라는 걸 쓰기도 했다. 고등학교나 대학 때에 들어가서도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글에 빠지다 보니 간혹 상은받았지만 나의 처지는 어느새 이사도라 던컨과 멀어도 한참 멀어져 있었다.
‘개살구가 먼저 익는다’고 했던가? 너무 어린 나이 때부터 까불던 나의 문학적 역량은 30대에 들어서면서 조로하기 시작했다. 원래 눈에 안 보이는 용(龍)보다 눈에 보이는 호랑이를 그리기 어려운 법이라, 일찍이 환상과 몽상 사이를 헤매다 30대에 들어서야 현실이라는 것을 제대로 만나니 그 현실의 중압감에 나의 빈약한 창의력이 견디어내지 못한 것이다. 써놓은 글은 성에 차지 않고 그나마 잘 써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사이 나이만 훌쩍 먹고 말았다. '우왕좌왕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라는 ’ 버나드 쇼‘의 비문 그대로였다. 막상 묘비의 주인은 우왕좌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겠다던 이사도라 던컨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그 나이가 되자 나는 우왕좌왕해 온 내 인생이 우울했다. 나의 우울은 구스타프 왕자가-지금은 왕이 된- 와도 해결되지 않을 만큼 깊고 암담했다.
그런데 얼마 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뒤 부슈롱’의 소설을 읽다가 적잖이 놀랐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은 그 작품은 놀랍게도 작가가 76세에 쓴 ‘첫’ 소설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오랫동안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산업 분야에 종사한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15명의 심사위원 중 13명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그 작품은 페이지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테제베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을 했다는데 그는 일하면서 상상력도 초고속으로 달리는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사실 인생도 생각해보면 길다. 시간이란, 지나온 길은 눈 깜짝할 사이지만 앞쪽은 끝없는 터널처럼 길고 지루하다. 그래서 차라리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다’는 말이 사실에 가깝다.
그의 책을 단숨에 읽은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멋지게 늙은 구스타프 왕이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나에게 춤을 청하며 말했다.
“내 작품은 흉내 낼 수 없겠지만, 내 나이는 흉내 낼 수 있는 시간이 있잖아? 그러니 이런 꿈일랑 그만 꾸고 어서 일어나시지. 또 하루가 시작되었어.”
*자신에게 청혼한 이사도라 던컨을 독설로 망신 준 버나드 쇼와 이 글에서 다시금 만나게 하다니 던컨에게 너무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