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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스나 Jul 08. 2020

스킨, 그리고 스쿠버

     “에구. 아줌마랑 짝이 돼서 어쩌지?

 언젠가 친구가 나의 걷는 모습을 뒤에서 동영상으로 찍은 적이 있다. 나무 햇살 반짝이는 산책 길이었으니 경치가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 짧은 10여 초 동안 나는 먼 하늘을 보고 ‘이쁘다.’ 혼잣말하기도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모자를 누르기도 했다. 친구는 

 ‘너, 사진 찍는 거 싫어해서..'

 하고 말했다. 그즈음 나는 사진 찍히는 걸 될수록 피했다. 늙어가는 걸 사정봐 주지 않는 것 중에 최고는 단연 사진이니까.  

 어느 날 문득 나의 뒷모습이 육안으로 보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많이 자라나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려하니 이때쯤 엄마들은 뒤늦은 ‘정신적 홀로서기’에 애를 먹고 빈 둥지 증후군으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이즈음부터 부모의 상(喪)을 당하기도 하고 친지의 부고를 받기도 한다. 자신의 미래가 보이고 그게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죽기 전에 해야 할 00가지 일들..’ 같은 책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즈음 가까운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뜨는 일이 생겼다. 나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때’라고 생각했다. 엄청 힘들다는 마추픽추 여행이라던가 시골집을 마련하여 칩거한다던가 하는 일들을 꿈꾸어 오기는 했지만 그보다 오래 묵혔던 꿈은 바다 속 여행, 즉 스킨스쿠버였다. 영화 ‘그랑부르’에 매혹된 탓이기도 했지만 TV나 영상매체를 통해 보는 바다 속 비경(秘境)은 나에겐 언제나 다가갈 수 없는 피안의 세계였다. 산호와 해초 사이로 갖가지 색깔의 물고기들이 노닐고 그들 곁을 유영하며 반짝이는 물방울을 뿜어내는 다이버들의 모습은 신비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스쿠버라니... 

 해병대 출신이라는 스킨스쿠버 강사는 나를 마뜩찮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비교적 ‘연로’하신 이 수강생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미 각오한지라 그의 냉대를 묵묵히 견뎠다. 수강생이 젊고 예쁜 아가씨라면야 강사인 그로선 수업시간이 보다 즐겁겠지만 ‘내겐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절대적 명제에 충실하기로 하고 미안함을 간단히 접었다. ‘내가 지금 젊은 놈 기분 봐주게 됐남?’하는 막가파식 기분도 작용했다. 

 이론을 끝내고 실습으로 수중 5미터의 잠수 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내 눈에는 족히 50미터는 되어 보였다. 먼저 물속에 들어간 강사가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공기통을 메고 호흡기를 입에 문 채 잠시 물 속을 바라보았다. 물은 맑지만 깊었고 검은 수트를 입은 강사는 멀리서도 큰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게 보였다. 

 ‘왜 내가 이걸 한다고 했을까?’

 친구들처럼 헬스를 하던가 살사 댄스라도 배울 일이지 늦은 나이에 스킨스쿠버라니... 머리부터 온통 고무 옷을 뒤집어쓰고(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모양에다 한번 입기는 얼마나 힘든지) 20키로도 더 나가는 공기통을 멘 채 도날드 덕 같은 오리발로 얼마나 물속을 휘젓겠다고... 스킨스쿠버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이 새삼 떠올랐다. 

 ‘대단하다!’(얘가 미쳤나...)

 ‘좀 늦은 거 아냐?’(치매는 아닌 것 같은데...)

 생글생글 웃으며 정기검진 먼저 받으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간단히 말했다.

 ‘하구 죽을래.’ 

 깊은 물속에서 강사가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크게 했다. 그가 뿜어내는 물방울들이 반짝이며 올라왔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물 속에서 심장마비라도 일으키면 이 모양 그대로 구급차에 실려 갈 텐데... 119 구급대원들이 웃느라 정신없을 텐데... 70분의 1초라는 찰나에 별 생각이 다 났다. 그러나 지금 돌아선다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강사는 비웃을 것이고 그것만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무겁고 뻣뻣한 잠수복을 입느라 30분을 허비했는데 물 한 방울 적시지 못하고 다시 30분을 낑낑대며 벗을 생각을 하니... 그냥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한 순간에 고요한 침잠의 시간이 다가왔다. 호흡기를 통해 쉬는 숨이 좀 갑갑하기는 했지만 투명한 물속의 낯선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 물속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고요하고 아늑했다. 그리고 고독했다. 모든 외부의 소리로부터 단절된 세계... 평생 수다를 떨던 세 치 혀까지 호흡기를 물고 있느라 묵언수(水)행이니 그야말로 돈오돈수(水)의 순간이었다.    

 나는 강사의 수신호에 따라 그동안 배운 것을 열심히 실습하며 물속을 헤엄쳐 다녔다. 드디어 강사가 엄지손가락을 치키며 ‘잘했다’는 신호를 보냈을 때 나의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듯했다. 

 다른 수강생들과 처음으로 동해에 잠수하러 갔을 때였다. 가시거리가 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동해바다는 초보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혼자서 헤엄치다 뿌연 물 속에서 일행을 잃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2인1조로 둘 씩 짝을 짓고 들어가야 하는데 강사가 내게 짝을 지워준 사람은 20대 잘생긴 청년이었다. 노란 웻 슈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젊음 그 자체였다. 일행 중 젊은 아가씨들도 몇 명 있었는데 엄마 또래와 짝이 되는 순간 청년의 얼굴은 바닷물빛처럼 퍼래졌다. 

 '오! 쉿(Shit)!'

 이라던가

 '이 강사새끼를!'

 등등의 욕하는 눈빛이 수경마스크를 뚫고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고 아들뻘 되는 청년과 함께 들어가는 나라고 기쁜 건 아니었다. 여기에 와서까지 경로 우대를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우대는커녕 면전 박대였다. 

 “에구. 아줌마랑 짝이 돼서 어쩌지?”

 위로랍시고 해준다는 게 약간 빈정거리는 투가 되었다. 청년은 점잖게 웃었지만 호흡기를 물기도 전에 입이 댓발 나왔다. 

 바다에는 약간의 파도가 있었다. 잠수하는 포인트까지 배를 타고 가는데도 멀미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파도가 들이치는 뱃전에 기대어 시퍼런 물속을 들여다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제서야 얼마 전 서해에서 상어에 물려 죽은 사람 뉴스가 생각났다. 강사는 상어를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니, 수강료가 적은 것도 아닌데 무심하기도 하지... 그러나 머뭇댈 틈도 없이 뒷사람에게 밀리듯 물속으로 첨벙 들어갔다. 줄을 잡고 내려가는 동안 아래에서 공기방울들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게 보였다. 먼저 내려간 사람들이 뿜어내는 방울들이었는데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다다른 수심 17미터의 세계-.

 역시 물속은 탁했다. 투명한 동남아의 산호초 바닷가만 상상했던 바로는 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오는 물고기들은 제법 보였다. 그곳은 수초와 물고기들이 물살에 살랑대며 노니는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치자빛 물고기며, 은색 비늘 반짝이는 치어떼들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럭같이 생긴 한 놈은 가까이 다가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이 어류와의 눈맞춤에 가슴이 뛰었다. 세상의 소리와 함께 모든 번뇌도 가라앉아버린 듯한 적요의 시간이자 적멸(寂滅)의 순간이면서 영화 ‘그랑부르’의 주인공이 왜 돌고래를 따라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마구마구(?) 실감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바위 사이로 드나들며 노니는 물고기에 정신이 팔린 순간 나는 그만 파트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시계(視界)가 흐린 물 속에서 나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입에는 호흡기를 앙물고 있기 때문에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의 잘생긴 파트너는 분명 아가씨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인 게 틀림없었다. 

 바다에서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냥 실종될 뿐이다. 여차하면 호흡기를 빼고 물 위로 솟아올라야한다. 그때였다. 누군가 어깨를 잡았다. 파트너였다. 보아하니 수경마스크 속에서 반가운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반갑다기보다는 당황했던 기미가 확실했다. 그도 나의 익사체는 보기 싫었을 테니까. 그 후로 둘은 바닷 속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물고기들을 따라 헤엄쳐 다녔다. 나는 신기한 물고기를 보면 그에게 손짓으로 가리켰고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웃음으로 대답했다. 수초들이 사각사각 몸을 비벼대는 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나는 잠시 모든 것을 잊었다. 그에겐 고역이었을 시간에 대해 미안함을 표현할 수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사실 별로 미안하지도 않았다. 내 인생의 40분쯤 나는 완벽히 비장하고 뻔뻔스러웠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점에서 나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실제로 이 ‘오픈 워터’ 얼마 후 건강에 문제가 생겨 다시는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단 한 번의 잠수로 은퇴를 한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동해의 바닷물 속에 나는 한쪽 귀걸이를 두고 나왔다. 18k 작은 금 귀걸이는 아마도 뱃전에 오르자마자 모자를 벗어 젖혔을 때 귀에서 빠졌을 것이다. 다이버들은 뱃전에 오르면 머리를 꽉 조이는 모자부터 벗어 제쳤고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 그 귀걸이는 바다 속 어느 해초 사이에 가라앉아 지금도 반짝거리고 있을 것이다. 바다를 향했던 내 꿈의 물증처럼... 아니면 호기심 많은 어느 감성돔의 뱃속에 들어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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