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스나 Jul 16. 2020

'사랑과 영혼' 손 물레

신이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면 전기 물레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몇 년 전 췌장암으로 사망한 영화배우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사랑과 영혼>에는 도자기 물레를 앞에 놓고 두 연인이 아름다운 러브신을 연출하는 장면이 있다. 여주인공 데미 무어가 헐렁한 셔츠를 느슨하게 걸친 채 다리를 벌리고 앉아(물레 앞에 앉아 있으니 이런 자세가 나올 수밖에 없다. 첼로도 그렇다.) 진흙투성이 두 손으로 그릇을 빚고 있고 그 뒤로 패트릭 스웨이지가 다가와 그녀를 껴안는 장면이다. 둘의 손이 포개져 그릇을 돌리고 이윽고 여자는 고개를 돌려 키스를 하고 (이 자세 때문에 데미 무어의 목덜미 인대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물레 위를 돌던 그릇은 묵사발이 되고 만다. 

 이 장면은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불멸의 영화 포스터로 남아있다. 그 해에 대학입시에서 미대 도예과의 응시자가 급증했다는데 바로 이 장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뒤늦게 도자기 공방에 다닌 이유는 로맨틱하기 짝이 없는 그 장면 때문이 아니다. 어느 광고에선가 빠르게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하나의 흙덩어리가 순식간에 달 항아리로 변신하는 보고 나서다. 그것은 흙을 빚는 도자기 장인의 손이 거칠어지는 것을 염려한 핸드크림 광고였다. 


 어쨌든 나는 집 근처의 도자기 공방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버스로 두어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작은 공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장 터 한쪽 허름한 3층 건물 지하에 있는 공방에 들어서니 30평 남짓한 실내에 앞치마를 두른 수강생들이 띄엄띄엄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실내 한쪽에는 커다란 가스 가마가 ‘전원만 들어오면 니들 다 죽어!’ 하는 무게를 잡고 있었다. 

 나는 선반 가득 진열되어있는 도자기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방 한구석에 비닐에 담긴 채 쌓여있는 흙덩어리들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추측하기 어려운 푸른빛의 아름다운 차 주전자, 보름달이 떠오른 듯한 둥근 백자 항아리, 탁한 흙빛 그대로인 새우젓 항아리, 불빛이 새어 나오는 램프도 있었다. 공방 선생은 몇 번의 전시회 경력이 있는 노총각으로 그 자신이 흙냄새 나는 토우(土偶) 같은 외모를 지녔다. 

 “하나님이 태초에 흙으로 인간을 빚으셨듯이 우리도 흙으로 예술을 빚는 것이지요.”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는 지극히 ‘공방스러운’ 창조론에는 선뜻 동의할 수는 없지만 뒤를 이은 ‘예술론’은 맘에 들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서 물레를 돌리며 꽃병을 만드는 여자에게 주목했다. 여자의 손이 그리 크게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흙덩어리는 길게 목을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깜짝 변신을 계속하고 있었다. 데미 무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레 장면을 연출한 바로 그것이었다! 

 “저 단계는 좀 더 배워야 되고요. 먼저 손 물레를 배우셔야 해요.”

 ‘초짜는 늘 이렇다니까’ 하는 눈으로 선생이 나의 시선을 옆의 테이블로 돌렸다. 그곳에는 몇 명의 수강생이 작은 물레를 앞에 놓고 손으로 돌려가며 컵 따위를 주물딱거리고 있었다. 발로 전원만 누르면 쌩~하고 돌아가는 전기 물레도 아니고 뺑뺑이 뽑기 판 돌리듯이 손으로 물레를 돌리면서, 만드는 것이라고는 머그잔 아니면 작은 접시 같은 소품이었다. 모양새도 매끄럽지 않아 볼품이 없었다. 데미 무어가 저런 물레를 돌리며 흙을 께작거렸다면 패트릭 스웨이지와의 그림은 나올 수가 없었으리라.

 “저건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이 되는 거지요.”

 선생이 수강생들을 자랑스럽다는 듯 둘러보며 말했다.

 ‘저렇게 볼품없으니 세상에 하나뿐인 게 다행이지, 뭐.’

 하는 마음에 당장 전기 물레 앞에 가 앉고 싶었지만 선생의 명령에 따라 먼저 손 물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흙덩어리를 판때기가 부서져라 내려치며 반죽을 하다가 엿가락처럼 길게 뽑아 그것을 돌려가며 붙여서 그릇의 형태를 만든다. 그러면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틈새를 꼼꼼히 메꾼다.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작업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선생의 카리스마에 눌려 열심히 그릇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휑~~’하고 전기 물레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 저절로 눈이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선 눈 깜짝할 새에 사발 그릇이 주전자가 되고 주전자가 사발로 변신 중이었다. 그러다 맘에 안 드는지 사발을 다시 두 손으로 주~욱 잡아 올려 목이 긴 매병(梅甁)을 만들고 있었다. 넋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던 나는 쩝, 입맛을 다시고 지루한 손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흙을 주물러 찻잔을 만들고 접시를 만들어갈수록 매끄럽지 못한 형태가 천천히 마음에 들어왔다. 전기 물레로 만드는 매끄러움은 없지만 손끝을 스쳐가는 자국마다 숨결이 새겨지고 그게 독특한 문양으로까지 보였다. 만질수록 애정이 갔다. 신이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면 전기 물레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면 이 세상 인간들이 그렇게 하나하나 다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형태가 완성된 그릇들은 유약은 바르고 가마에 넣어 1000도의 불에서 한나절 뜨겁게 구운 후 다시 한나절 식혀야 한다. 그렇게 두 번 소성(燒成)하는 과정에서 똑같이 만든 그릇들이라도 가마 속의 위치나 불길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상을 띤다. 흙의 틈새로 공기가 들어갔다면 여지없이 ‘쩍’하고 금이 갈라져 나오기도 하고 때론 저절로 멋진 무늬를 그리며 현신한다. 이때가 손 물레로 만든 그릇들이 돋보이는 때이다. 아직도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매끈한 전기 물레보다 거친 손 물레 작품에서 살아있는 느낌이 확 나는 것이다. 마치 '나 만드느라 수고했어' 라고 말하는 듯이. 

 신이 만들었든 아메바에서 진화했든 인간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날의 인간으로 형성되기까지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가 끈질기게 손 물레를 돌렸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보면 어느 존재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건 없다. 가마에서 나온 그릇은 잘못된 경우 망치로 내려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다수의 생명-에 그럴 수는 없다.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소중하다는 사실, 그것은 내게 또 다른 ‘사랑과 영혼’이었다.  


  

이전 02화 우왕좌왕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