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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스나 Jul 08. 2020

책 속에 길, 또는 현금이 있다.

   ‘연애를 잘하기 위해서라도 독서는 필요한 거야.’

  

 부모를 떠나 외지에서 자취 생활을 하던 아들이 그만 생활비가 떨어졌다. 부모의 간섭과 보호 없이 사는 아들들의 생활은 대체로 ‘안 봐도 비디오’이다. 불규칙한 식생활에 불결한 의생활, 걸핏하면 친구들이 드나드는 주생활 및 주(酒)생활...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러저러 사정을 얘기해가며 돈좀 보내달라는 편지를 썼다. 아버지에게서 소포가 하나 왔다. 열어보니 성경책 한 권과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편지의 내용인즉슨 ‘요한복음 0장 0절을 읽어보아라.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짧은 글이었다. 

 아들은 절망했다. 아버지가 독실한 신자인 것은 알지만 아들이 밥을 굶게 생겼다는데 돈은 안 보내주고 웬 요한복음이란 말인가? 성경이 마음의 양식이라는 건 거룩한 비유에 지나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아들은 영혼의 밥이 아니라 배를 채워줄 탄수화물 등등이 필요한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경책을 방구석에 내던졌다. 며칠을 더 연명한 아들은 무심코 구석에 처박힌 성경책을 바라보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회개하고 반성하라는 말씀이겠지..’

 아들은 요한복음 0장 0절을 펼쳤다. 그곳에는 몇 장의 수표가 얌전히 끼워져 있었다. 

 아들은 과연 성경 구절을 읽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살짝 이는데, 아버지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간편한 온라인 송금이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라든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생긴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처럼 책의 중요성을 언급한 명언들은 수없이 많다. 네 발로 기는데 싫증난 한 침팬지가 어느 날 두 발로 서서 들판을 바라보다 뚜벅뚜벅 걸어 나간 이후 인류의 진화는 ‘생각’에서 ‘언어’로, ‘언어’에서 ‘책’으로 이어져 왔다. 지금은 불타 없어진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수만 권의 파피루스 책이 보관된-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은 모든 지성이 배태되는 곳이고 거리의 서점은 바삐 오가는 행인의 발길을 한 템포 늦추는 쉼표 같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면서 책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 그 문화적 제왕의 자리는 ‘영상’이 차지했다. 사람들은 애써 뇌세포를 움직여 상상해내야 하는 활자의 세계를 떠나 시각적인 세계로 진입했다. 이는 진입이 아니라 ‘진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나 스스로도 톨스토이의 길고 난삽한 원작보다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영화 <전쟁과 평화>에 먼저 매혹되었으니까. 영상이 문화 컨텐츠로써 절대지존의 자리를 차지했다지만 그 밑바탕의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자적 작업을 통한 활자의 세계이다. 짧은 광고 하나를 찍어도 거기엔 ‘내용’과 ‘메세지’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활자라는 형태로 뇌 속에 정보화되어 있고 그 정보가 오랜 세월 축적된 것이 책이다. 그래서 수많은 영상 산업의 주체들이 이야기를 공모하고 스토리를 발굴한다. 신석기 시대의 돌이 아직 건축 자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책이 중요하다’ 라는 말을 하기에는 다소 긴 서두가 되었는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두 아들의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 왔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책을 끼고 사는 모습을 보아왔으므로 이런 ‘환경의 영향’ 덕에 두 아들은 당연히 책을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기 때는 동화책 귀퉁이를 쭉쭉 빨아먹는 것으로 독서 체험을 하더니 조금 큰 다음에는 만화 애호가로 직진했다. 물론 만화에도 명작이 있고 나 자신도 어렸을 적 ‘박기정’ 이라는 만화가의 열혈 독자였다. 그러나 ‘활자와 그림’이라는 복합 구성이 가지는 매력은 온전한 상상력을 발휘하기엔 너무 속도를 낸다. 그것도 모자라 만화에서 만화영화로, 게임의 블랙홀로 아이들은 빨려 들어간다. 

 내가 아들들을 책의 세계로 유인하기 위한 말은 매우 유치했다.

 ‘연애를 잘하기 위해서라도 독서는 필요한 거야.’

 데이트 상대가 생기면 둘은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를 보고 술도 한 잔 한다. 이 때 이 모든 스케줄을 관장하는 건 ‘썰’, 즉 말이다. 외모를 스캔(?)하는 것은 5분이면 끝난다.

 '이럴 때 무슨 이야기로 서로의 공간을 채울 거야? 친구들과 땀 흘리며 뛴 축구 이야기를 할 거야? 어젯밤에 본 ‘야동’이야기를 할 거야? 아니면 PC방에서 날밤을 새운 게임 이야기를 할 거야? 이럴 때 읽어놓은 책 한 권이 효자 노릇하는 거야.'

 두 아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왠만한 건 구글에 다 나온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건 단순히 활자를 읽는 게 아니라 저자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갈피에 있는 ‘현금’도 만난다. 그러니 아버지가 보낸 편지처럼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여러모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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