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 그는 야쿠자라기보다는 3류 록 가수처럼 보였다.
무대공포증 정도의 소심함을 가지고 서너 명만 모여도 말을 잘 못하는 내가 어쩌다 큰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쪽수 많은 모임이나 사석에서 주변을 압도하며 썰 푸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하면 어느 작가의 짧은 글을 읽고 난 후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어느 날 모임이 있어 호텔 커피숍엘 갔다. 그런데 서빙하는 여종업원이 모임 중 한 사람 (유난히 허름한 옷을 걸친)에게 매우 무례한 행동을 하여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우선 당사자가 아무 말 없으니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이름을 대면 알만 한 사회적 인사들이고 호텔 로비에는 고즈넉한 피아노 소리만 흐를 뿐이었다. 로비 근무 짬밥이 제법 된 여종업원은 우아한 손님들의 생리를 잘 간파한 것 같다고 했다.
아무튼 매우 불쾌했던 작가의 짧은 글은 이렇게 끝맺는다.
“나중에 모두가 불쾌감을 얘기했는데 그 당장에는 아무도 나서서 종업원을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라니... 그 ‘아무도’에 자신도 들어가 있지 않은가? 작가라서 보고 느낀 건 있으니까 후일담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글을 썼는가? 아니면 거기 있던 소위 지식인들이 나처럼 눌변이란 말인가?
아마도 그 후 나는 조금씩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아무도’가 되고 싶지 않아 떨리는 목소리지만 의견도 말하고 말실수도 했다. 집에 와서는 ‘왜 그런 말을 했나?’ 하고 입을 꿰매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점점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장소를 불문하고 용감해진 것이다.
커플끼리 친해진 모임이 있었다. 아이들의 학부모로 만난 네 집은 정작 아이들보다 더 긴 우정으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합이 잘 맞은 건 아니다.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남자들이 느닷없이 화투판을 펼치는 것이다. 다음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바람 쐬자고 놀러 와서 웬 고스톱?”
“그러려면 뭐하러 먼데까지 오나? 집에 모여서들 치지.”
아내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모두 ‘오광에, 쌍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방을 향해 분노했다.
“이런 건 한번 들러 엎어야 해.”
제일 용감한 엄마가 과감히 말했다. 모두 턱을 주억거렸다.
“맞아. 지금이 찬스야. 모두 가서 화투판을 뒤집읍시다. 기껏해야 부부싸움 단체전으로 하는 거지, 뭐.”
나의 말에 모두 일어섰다. 그리고 모두 방을 향해 몰려갔다. 맨 앞에 있던 내가 문을 벌컥, 열어 제켰다. 그리고는 ‘갑시다!’ 소리를 지르며 남편들이 모여 있는 화투판을 향해 질주했다. 뒤따라오는 기척이 없다는 불안함이 스쳐가면서 나는 주저 없이 화투판을 뒤엎었다. 국방색 담요 위에 펼쳐져 있던 난초, 흑싸리, 모란꽃과 동전, 지폐가 다 뒤섞이고 네 남자는 얼이 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제야 몸을 돌려 방문을 쳐다보았다. 방문에는 세 명의 여자들이 조선시대 여인의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친구 두 명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에 갔을 때였다. 시모노세키에서 내려 시내 관광을 하는데 같은 배를 타고 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무슨 공원인가 하는 곳을 돌아다닐 때였다. 공원 한쪽이 웅성거리더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광객들 속에서 우리말이 들려오길래 우리는 더듬더듬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젊은이들끼리 시비가 붙었는데 오가는 고성이 심상치 않았다. 한쪽은 한국말로, 한쪽은 일본말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말을 하는 젊은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온 우리 대학생들이고 상대는 불량스러워 보이는 일본 청년들이었다. 차분한 얼굴로 구경하는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한국 관광객들은 겁먹은 얼굴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났다.
“왜 싸움이 났대?”
“모르겠어. 우리 애들이 일본 여자애들한테 히야까시를 했다나 봐.”
나이 지긋한 남자의 일본말이 제 나라에서 어색하게 들렸다.
“근데 여자애 중에 하나가 새끼 야쿠자의 애인이라는군. 지금 누가 그 야쿠자를 부르러 갔대.”
“야쿠자? 큰일 났군.”
뒤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바짝 쫄았다. 야쿠자라면 말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폭력 조직 아닌가? 그런데 그런 조직의 여자를 건드렸다면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회 뜨는 칼과 함께 유혈이 낭자한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
드디어 말싸움은 한순간에 멱살잡이로 바뀌었다. 한 손으로 멱살을 움켜쥔 사내는 일본 만화에 나오는 양아치처럼 앞머리로 한쪽 눈을 가리고 도끼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이구, 큰일 났네. 누가 경찰을 불러야 되는 거 아닌가? ”
“아니, 여기 경찰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일본말도 할 줄 모르는데...”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멱살이 잡힌 대학생 주변에서는 안 통하는 말로 사정하거나 맞장 뜨자는 등 울끈불근하는 모양새였다. 나는 떨리다 못해 몽롱해져 왔다.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대학생 아이들이 새삼 눈에 시었다. 찰나에, '광주학생운동'이 스쳐갔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인 듯해서 재빨리 망상을 떨쳐 버렸다. 그때였다.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새끼 야쿠자인 모양이었다. 뒤로는 그 수하인지 두어 명의 쫄따구들이 따라왔다.
새끼 야쿠자는 훌쩍 큰 키에 구불대는 장발은 노란 염색을 하고 빨간 나팔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주 잠깐 그는 야쿠자라기보다는 3류 록 가수처럼 보였다. 그는 드잡이를 하고 있는 무리에게 다가갔다. 주변이 물러나고 그는 대학생들 앞에 버티고 섰다. 그리고는 일본말로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칙쇼! 라던가 난다요! 같이 사납게 내뱉는 말이 일본 욕지거리임은 분명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옆에 서 있는 친구의 손을 꼬옥 잡았다. 친구의 손은 땀으로 축축했고 역시나 떨고 있었다. 그 옆의 친구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대고 있었다. 저 새끼 야쿠자가 우리 대학생들을 끌고 어디로 가 버리면 어찌하나, 아니면 우리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마구 패면 어찌하나... 이 여행은 망쳤다... 별별 생각이 회오리를 치는 와중에도 야쿠자의 빨간 바지가 왠지 희망적으로 보였다. 잔인한 짓을 하기에 빨간색 바지는 다소 코믹한 데가 있었다.
“우리 가서 말리자.”
내가 말했다. 친구들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어떻게 말려...”
잔뜩 겁에 질린 모양새였다.
“일단 가서 사정을 하자. 지들이 어쩔 거야. 한국 아줌마들이 와서 사정사정하면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친구들은 맘이 동했는지 부들대는 걸 조금 멈추었다. 가자! 하고 나는 빨간 바지를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그가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나는 달려가 그의 팔뚝에 매달렸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애들이 모르고 그랬나 봐요!”
어차피 못 알아들을 거지만 나는 애통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아무 말이나 주절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빨간 바지는 잠깐 당황하더니 나에게도 뭐라 뭐라 소리 질렀다. 느낌에 ‘아줌마는 뭐야?’ 하는 소리 같았다. 아줌마건 아저씨건 상관없었다.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그것도 남의 나라 길바닥에서 미친 듯이 아무말 대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때 다소 방정맞은 일본 경찰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움켜쥐고 있던 그의 팔뚝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돌아다보니 친구 둘은 거의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들에게 걸어갔다.
만약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앞장섰을 때 뒤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나는 조직을 만들고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사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말은 여전히 눌변에 멍석을 펴면 울렁증이라, 다행히(?) 나의 투사 노릇은 몇 번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다만 사소하고 작은 일에는 아직도 ‘나서는’ 편이었다. 예를 들어 골목길을 가고 있는데 고딩들이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으면
‘침은 뱉지 말지.’
하고 푸근히 웃어주고 갈 길을 가는 것 정도랄까.
어느 날 저녁은 집 근처 대학교에 축제가 있어 주변이 모두 시끌시끌했다. 유명한 걸그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서인지 주변의 중고등 학교 학생들도 덩달아 나와 돌아다녔다. 북적대는 대학교 후문을 지나 아파트로 들어서려는데 상가 옆 화단 어스름에서 뭔가 기척이 있었다. 그곳에는 여남은 명의 학생들이 어두운 외등 아래에 모여 서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한 여학생을 또래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머리띠를 한 여학생은 담벼락에 바싹 기대어 서 있고 그 앞에 비슷한 덩치의 여학생이 두 팔을 허리에 붙이고 뭔가 을러대고 있었다. 주변에는 남학생이 하나, 그리고 친구들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조신하게 있었다. 그, 말로만 듣던 ‘삥’을 듣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깐 주변 파악을 했다. 밤이 되어가지만 여긴 아파트 입구이고 축제 구경 나온 사람들도 많이 오간다.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로 갔다. 가까이 가 보니 머리띠 여학생은 입을 삐죽 대며 울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학생?”
나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물었다. 울던 여학생이 고개를 바짝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표정은 궁지에 몰린 것이 아니었다. 그제야 내게 등지고 서 있던 여학생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왜요?”
나이 든 목소리 때문에 그녀가 어린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게다가 앞에 있는 머리띠와 붕어빵 얼굴이라니... 뭐라 하기도 전에 담벼락에 붙어 있던 머리띠가 내게 앙칼지게 말했다.
“우리 엄만데 아줌마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러고 보니 머리띠는 똥꼬 치마에 엷은 화장까지 하신 몸이었다. 학원 간다 하고 친구들이랑 걸그룹 보러 나온 걸 오빠가 엄마에게 일러바쳐 현장에서 잡힌 모양이었다. 제 깐에는 우리 엄마가 오해받는 것은 절대 못 참는다, 는 식의 효심을 발동시켜 단번에 용서받는 꾀를 생각해냈고 나는 그 꾀를 훌륭하게 완성시킨 도우미였다. 과연 엄마는 더 이상 딸을 족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나도 어정쩡한 자세를 풀고 가던 길을 갔다.
세월이 지나 나이도 솔찬히 먹으니 무슨 일에 참견하는 것도 힘에 겹고 실수까지 한다. 그러나 내가 거기 있는 한 ‘아무도’가 아닌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길을 가다가 걸음을 멈추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