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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어택 Oct 12. 2024

(18화) 9월 16일 (5)


 "그렇게 다중우주를 이동한 것이죠?”


 실험 결과가 예상되었는지 유상헌은 교수님의 일지를 읽다 말고 교수님에게 물었다.


 “이동이라는 말의 정의에 따라 다르지. 분명 육체가 물리적으로 이동한 건 아니니까. 우리는 한동안 이 현상에 관해 토론했어. 내로라하는 과학자들 여럿이 모여 있었지만 완전하게 설명은 불가능했지. 구신효는 이렇게 주장했어. 인간의 기억이나 의식은 결국 뇌의 시냅스에서 주고받는 전기신호의 집합체인데, 이 전기신호들이 다른 우주와 통째로 바뀐 게 아닐까 하고 말했지.”

 “메시지를 보냈더니 같은 메시지가 반사되어 온 것처럼요?”

 “좋은 비유인 것 같네.”


 내가 살짝 던져본 질문으로 뜻밖에 칭찬받았다. 나는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희도 그 두 사람처럼 이동한 건가요? 그런데 저희는 양자 플라즈마를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요.”

 “앤드류의 경우에도 본인이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지하 벙커로 이동했다고 했어. 두 우주를 서로 이동할 때, 한쪽 우주에 있는 사람만 장치를 쓰면 충분한 거겠지. 이 현상을 이동이라고 정의한다면, 양자 플라즈마로 생성된 6만 개의 다중우주끼리는 서로 이동이 가능한 거지.”


 그런 방식으로 나도 유상헌도 이동했다는 것인가. 교수님의 일지에서 앤드류라는 사람은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며 쓰러졌다고 했다. 내가 며칠 전 겪은 일과 똑같았다. 그 이후에 눈을 떠 보니 미연이 대신 민주가 있었다.


 “그럼, 다른 우주에 있는 자신과 기억이 서로 뒤바뀐 것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내가 물었다. 


 “글쎄. 뇌에는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니까. 어디까지가 뒤바뀐 건진 모르지. 적어도 뇌파 전송을 시도했던 구신효와 앤드류는, 뇌파 전송을 시도한 그 순간 다른 우주에 있는 자신과 서로 기억이 뒤바뀌었다고 하면 말이 되긴 했어.”

 “저는 원래 비흡연자인데, 이동하고 나서부터는 자꾸 담배 생각이 나요. 원래 이 우주에서 저는 담배를 피웠던 것 같고요. 그러면 저 자신 중에서도 오로지 기억만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습성은 그대로 남아 있고요.”

 “그걸로 뇌에서 어디까지가 바뀌었다고 단언하긴 힘들 것 같네. 그저 육체적으로만 니코틴에 중독되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어디까지가 바뀐 건지가 뭐가 중요하겠나.” 


 교수님의 말처럼 내 기억만 바뀐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도 바뀐 건지는 상관없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다중우주를 이동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분명한 건 내가 원래 가족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상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은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 장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저희도 그 장치를 사용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결과적으로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는 건 그 실험으로 증명된 거야. 그리고 접촉 자체는 가능한 것이었고. ……다만 그 접촉 방식은 통제할 수 없는 거였어. 메시지도 주고받을 수 없고, 뇌파 실험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킨 거니까.”


 교수님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부터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네. 구신효도 앤드류도 뇌파를 전송하려고만 한 건데 의도치 않게 다중우주를 이동해 버렸지. 심지어 여기로 온 앤드류는 뇌파 전송을 하겠다는 의지도 전혀 없었어. 그저 집에 있었을 뿐인데 다른 우주 속 자신의 행동으로 본의 아니게 이동하게 된 거야. 우리에게…… 그를 그렇게 만들 권한이 있었을까? 이 기술이 국정원이나 미국 정부에 들어가서 쓰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뇌파 말고 다른 걸 보낸다면?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말을 하면서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지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교수님은 다시 안정을 찾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애초에 다중우주 존재에 대한 내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네. 그때까지의 실험으로 이미 호기심은 충족된 거였지. 그런데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이 연구 결과가 불러올 두려움이 더 커진 거야.

 나는 여기서 연구를 중단하고, 다중우주 접촉 실험이 실패한 것으로 보고하자고 했네. 하지만 팀원 모두의 생각이 같진 않았지.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다중우주 간 소통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어. 심지어 구신효는 뇌파 전송으로 다중우주를 이동하는 것도 활용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네.

 이것 때문에 구신효와는 밤늦게까지 언성을 높여가며 다투기도 했지. 하지만 나는 과학자로서 그건 절대 용납할 수가 없다며 그의 의견을 묵살했어. 그리고 날이 밝는 대로 실험에 실패했고 더 이상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국정원에 보고하겠다고 했지.

 이게 내 실수였어. 독단적으로 다른 팀원들의 의견을 뭉개버릴 게 아니라 며칠이 걸리더라도 그들을 설득했어야 했는데…….”


 교수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유상헌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구신효라는 사람이군요. 저희를 이렇게 만든 게.”


 교수님은 허공을 바라본 채 가볍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제니퍼한테 연락이 왔어. 양자 플라즈마와 보관 실린더가 사라졌다고. 곧바로 그곳에 가 보니 도난당한 것 같더군. 그리고 제니퍼는 양자 컴퓨터에 누군가 우리의 프로그램과 실험 이력을 복사해간 흔적이 있다고 했어.

 곧바로 나는 구신효를 의심했지. 전화해봤지만 받지 않더군. 내 컴퓨터에는 그의 집 주소를 비롯한 인적 사항이 들어있었는데, 그 파일도 삭제되어 있었어. 그것도 분명 구신효의 짓이었던 거야. 며칠 동안 구신효가 졸업한 대학에도 가 보고 그의 행방을 찾으려고 했는데 꼭꼭 숨어 버렸지. 

 나는 두려웠네. 팀원들에게는 내가 모든 걸 책임질 테니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하고, 국정원에는 결국 실험에 실패했다고 보고했어. 물론 처음에는 내가 의심되는지 이것저것 다그치며 묻더군. 하지만 내가 학계에서 은퇴해 버리자 더 이상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아마 내가 성공했다면 뭐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 구신효라는 사람, 지금도 행방을 모르시는 건가요?”


 내가 묻자 교수님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네. 은퇴하고 한동안은 계속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구신효가 저희를… 이렇게 다중우주를 이동하게 만든 건 맞을까요?”

 “7년 전 일이니 그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을지 확신할 순 없지. 하지만 나는 자네들 이야기를 듣고 분명 7년 전 앤드류처럼 자네들도 다중우주를 이동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구신효가 직접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구신효가 훔쳐 달아난 그 기술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했을 수도 있지.”

 “혹시 그때의 기술을 교수님께서도 가지고 계신다면, 교수님이 저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주실 수는 없을까요? 7년 전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요.”


 유상헌이 물었다. 교수님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또한 미안하지만, 불가능하네. 당시 실험에 썼던 양자 플라즈마는 이미 구신효가 가져갔어. 지금 그때와 똑같은 실험을 한다고 해도 다중우주를 다시 생성해야 할 텐데, 7년 전 시점에서 갈라져 나온 현재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 게다가 자네들이 어느 우주에서 온 건지도 알 수 없으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면 결국 그걸 아는 사람이 있어야겠지.”


 유상헌이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교수님. 그러면 7년 전에 6만 개의 다중우주를 만들었고, 그 다중우주를 연결하는 게 당시의 양자 플라즈마잖아요? 그때 생성된 6만 개의 다중우주끼리 오가는 건 구신효만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하지만 그 기술을 이용해서 이후에 다른 누군가가 다중우주를 또 생성했고, 자네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겠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왜?”


 내가 상헌에게 물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칠판에 세 개의 다중우주를 그리던 때처럼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네가 준 글에 나와 있어. 네가 원래 살던 우주와 지금 우주가 다른 건 네가 7년 전 민주에게 연락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이후 인생이 달라졌기 때문이잖아. 그리고 너도 기억하지? 그때 바로 정전이 일어났잖아. 네 선택은 정전이 발생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야. 정전과 함께 생성된 6만 개의 우주 중, 어떤 우주에서 너는 민주에게로 돌아갔을 거고, 어떤 우주에서는 미연씨에게 프러포즈했을 거야. 그건 다중우주가 만들어지고 길어야 몇 분 만에 다 결정된 일이야. 구신효가 사라진 이후에 누군가 다른 다중우주를 만들었다면, 그 이전에 이미 갈라져 나간 우주끼리 이동하게 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야.

 우리가 다중우주를 이동하게 만든 건 구신효가 분명해. 그리고 되돌아가려면 그 양자 플라즈마를 반드시 찾아야 해.”     




 집으로 돌아오는 상헌의 차 안은 고요했다. 창문 밖에서는 해가 지면서 어둠이 들어오고 있었다. 유상헌도 나도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우리가 다중우주를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경이롭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근데…….”


 유상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여기에 살던 우리는 왜 다중우주를 이동한 걸까?”

 “글쎄, 나는 아마 민주랑 살고 있으면서도 미연이에게 돌아가고 싶었나 봐. 병원에도 가 봤는데, 내가 후회되는 과거가 있다면서 우울증을 앓고 있었대.”


 그것 외에도 미연이와 닮은 나윤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단서도 있었지만 유상헌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헌아, 너는 짐작이 가?”

 “모르겠어. 혼자 살고 있었다면 나도 민주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어쩌다 다중우주 이동까지 생각하게 되었을지…….”

 “네가 다중우주를 이동하기 전날 나는 너를 잠깐 만났었어. 너는 나한테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았고, 내가 민주를 언급하니까 화를 냈어.”

 “민주랑 결혼한 네가 싫었던 건가.”


 나에게도 상헌에게도 이 우주에서의 기억은 없었다. 상헌이 계속해서 민주를 좋아하고 있었다면, 내가 민주와 헤어지고 몇 년 뒤에 다시 그녀를 만나는 과정에서 상헌과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민주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민주에게 물어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민주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문득 조용한 차 안에서는 나와 민주의 대화가 상헌에게도 들리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핸드폰에서는 이미 민주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어디야, 오빠? 생각보다 많이 늦네.”

 “아, 응. 나 상헌이랑 같이 있는데……. 아 민주야, 상헌이…… 기억하지?”

 “오빠 친구 상헌 오빠? 그럼, 알지. 예전에는 같이 자주 봤는데 요즘엔 통 못 봤네. 지금 상헌 오빠랑 같이 있는 거야?”


 민주의 명랑한 목소리가 상헌이에게도 들렸는지, 상헌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오빠. 아까 다른 사람 차 타고 간다더니 상헌 오빠 차 타고 가는 거였어? 그럼 나 지금 저녁 준비하는 중인데 같이 와서 먹을래?”

 “어? 그…… 그래도 되나? 상헌이 혹시 약속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어보고 알려 줄게.”


 당연히 상헌의 약속을 걱정한 건 아니었다. 유상헌이 지금 민주를 만나고 싶어 할지 의견을 물어야 했다. 지금 집에 함께 간다면 그는 민주를 볼 수 있겠지만, 나와 부부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와는 아무 사이가 아닌 척 연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유상헌은 나만 괜찮다면 집에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사랑꾼이 된 것인지…….   




 “상헌 오빠, 이게 몇 년 만이에요? 예전에는 같이 자주 봤었는데.”


 현관문을 열자 앞치마를 두른 민주가 반갑게 상헌을 맞아 주었다. 주원이가 뛰어오더니 나에게 안겼다. 


 “아, 그러게요. 민주……씨 오랜만이에요.”

 “오빠, 예전에는 상헌 오빠랑 맨날 붙어 다녔잖아.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같이 다니는 걸 못 본 것 같아. 계속 연락은 하고 지낸 거야?”


 내가 오히려 민주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인데 민주가 먼저 했다. 


 “으……응. 같은 직장 동료기도 하고. 아무래도 다은…… 아니 주원이가 있다 보니, 집에 초대하거나 하긴 어려웠어.”

 “그래? 아쉽다. 같이 종종 보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오빠들 어서 앉아요.”


 특별히 근사하게 밥을 차린 듯 식탁 위는 반찬을 둘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민주의 맞은편에서 유상헌은 계속해서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 이러다 지금 우리 상황을 민주에게 들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민주는 해맑은 얼굴로 먼저 상헌에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예요, 오빠? 결혼은요?”

 “아, 아직……이요.”

 “정말요? 왜요? 만나는 사람은요? 제가 소개라도 시켜 줄까요?”

 “저는 괜찮아요. 민주씨는…… 행복하신가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민주도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머리를 빠르게 굴려야 했다. 


 “그럼, 결혼하니까 너무 행복하다, 새끼야. 너도 이거 먹고 빨리 장가 좀 가라.”


 나는 고기를 집어 유상헌의 밥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를 쳐다보면서 눈치를 주려고 했는데 그는 계속해서 민주의 얼굴만 응시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후에는 큰 위기 없이 식사가 끝났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과 함께 유상헌이 집을 나섰다. 나는 유상헌을 주차장까지 배웅해 주겠다며 함께 나왔다.


 “너 미쳤냐? 무슨 생각이야?”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내가 유상헌을 노려보며 물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그게 너무 물어보고 싶었나 봐.”


 유상헌의 눈가가 촉촉한 게 보였다. 나도 지금 어쩔 수 없이 민주와 함께 살고 있지만, 유상헌은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유상헌이 지금 이런 내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겠다고 생각하자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상헌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차에 탔다. 나는 운전석을 바라보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상헌이 창문을 내리더니 말했다.


 “그래도, 고맙다. 민주 한 번이라도 보게 해줘서.” 


 고맙다는 낯 뜨거운 말은 상헌에게는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만큼 진심이었을 것이다. 상헌의 차는 빨간 빛을 뿜으며 멀어져 갔다. 차에도 표정이 있는지, 혼자 쓸쓸히 가는 차의 뒷모습도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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