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꿈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깊이 잠들지 못한 상태로 떠올린 기억일 뿐인지 잘 모르겠다. 대학원생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석사 과정을 밟으며 조교로 근무했다.
당시 내 지도교수였던 김교수는 학계에서는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지만 상당한 괴짜였다. 항상 어디로 튈지 몰라서 행동 하나하나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강의 시간에도 수시로 늦는 건 기본이고 나타나지 않은 적도 많아서 내가 찾아다니기 바빴다. 강의를 마음대로 30분 넘게 일찍 끝내기도 했고, 반대로 종료 시각이 한참 지나도록 끝낼 생각을 안 하기도 해서 학생들이 내게 항의하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왜 이렇게 강의 시간이 들쭉날쭉하냐고 묻자 그는 원래 철학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대답했다. 그날 학생들에게 전달하려던 내용이 다 전달되었다면 강의도 끝내는 거고, 아직 다 전달되지 않았다면 끝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의 괴짜 같은 행동이 극에 달한 사건이 있었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존재론과 형이상학’ 강의였는데, 김교수는 출석이나 과제, 심지어 중간고사도 없이 오로지 기말고사만 가지고 학점을 매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교수는 기말고사 당일에 시험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까지도 나에게 시험지를 보내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김교수를 찾아가자, 이미 자신에게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시험 감독이나 제때 들어가라고 말했다.
기말고사만 가지고 평가한다고 하니 보안을 위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시험 시간이 되자 나는 시험지 없이 답안지만 든 채 강의실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고, 나는 교수님이 곧 오실 테니 기다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 혼자 초조해하고 있을 무렵, 김교수가 들어왔다. 그런데 김교수도 빈손으로 들어오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에게 답안지를 배부하라고 말했다. 답안지 배부가 끝나자, 김교수는 강의실을 두리번거리더니 강의실 뒤편에서 남는 의자를 하나 번쩍 들고 교단으로 왔다. 직접 앉아서 시험 감독을 하려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김교수는 모두에게 잘 보이도록 의자를 교단 책상 위에 올려 두고는 말했다.
“자, 여기 책상 위에 의자가 있나?”
“네?”
학생들을 향해 한 질문인데 그의 이상한 행동을 보며 내가 가장 먼저 물었다. 김교수는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이 책상 위에 의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답안지에 쓰도록.”
학생들이 모두 벙찐 얼굴로 김교수를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슬슬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질문이 나올 것 같은 무렵에 김교수는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여전히 혼란이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김교수의 특이한 면모를 본 학생들은 점차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이 과목의 주제인 형이상학은 사물의 존재와 본질을 다루는 학문이다.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총동원해 우리 눈에 보이는 의자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근거를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곧이어 답안지를 작성하는 사각사각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호기심에 강의실을 돌며 학생들이 어떤 내용을 쓰고 있는지 살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현실세계가 아닌 또 다른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의자는 본질적으로 이데아에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의 눈으로 의자를 보고 있는 세계는 가시계일 뿐이므로 진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의자의 본질은 앉기 위한 것이다. 이미 책상 위에 올려진 상태에서는 앉기도 힘들고, 앉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의자의 본질이 사라진 상태이니 의자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공부한 내용을 활용해 열심히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교수가 나간 지 5분이나 되었을까? 한 여학생이 답안지를 들고 앞으로 나오더니 지금 제출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답안지 작성이 끝났으면 제출하고 나가도 좋다고 말했다. 시험 감독을 하다 보면 어느 시험에서나 학점을 포기하고 일찍 나가버리는 학생이 있었다. 특히 이번 시험은 괴짜 교수가 이상한 문제만 던지고 떠나버린 서술형 시험이었으니 더더욱 그럴만했다. 하지만 이 학생은 내가 알기로 우리 과에서 상위권인 학생이었기에 조금은 의아했다.
나는 그 학생이 낸 답안지를 펼쳐 보았다. 순간 백지인가 싶었는데 백지는 아니었고, 단 한 줄의 답안이 적혀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의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는 그 답안을 보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답안을 쓰는 사각사각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한 학기 동안 배운 이론들을 가지고 의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의 답안은, 애초에 여기 의자가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쓰라는 김교수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처럼 들렸다.
시험 감독을 마치고 학과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생각에 잠겼다. 김교수는 시험이 끝나면 항상 일차적인 채점은 나에게 맡겼다. 내가 먼저 채점한 후에 김교수에게 보내면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만 올리거나 낮추는 식이었다.
나는 이 답안에 어떤 점수를 매겨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시험 문제는 특이하지만 단순했고,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학생은 비슷한 취지의 답안을 작성했다. 그중 이 답안은 분명 창의적이었다. 하지만 철학은 창의성을 겨루는 학문이 아니다.
나는 서술형 답안을 채점할 때 언제나 학생 간의 형평성을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이 한 줄짜리 답안에 높은 점수를 준다면, 그것은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시간 내내 팔이 아프도록 답안을 작성한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교수를 찾아가 답안지와 내 채점 결과를 제출했다.
“교수님. 답안을 보다 보니 한 학생이 조금 특이한 답을 했던데…….”
나는 그 답안에 붙여둔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내가 매긴 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김교수가 수정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점수를 매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호소하고 싶었다.
“짧은 답안이라 지금 바로 읽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채점하는 사람에 따라 높은 점수를 줄 수도, 반대로 아주 낮은 점수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뭔데?”
김교수가 동그란 안경을 살짝 올리더니 답안지를 쳐다보았다. 읽을 시간도 필요 없이 한눈에 답안이 보였을 것이다. 김교수는 답안을 읽자마자 껄껄거리며 호탕하게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웃음이 진정되자 나에게 말했다.
“자네가 준 점수는…… 음, B라고?”
“네. 분명 이 학생도 생각 없이 이런 답을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출제 의도를 생각할 때,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총동원해 열심히 작성한 다른 답안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습니다.”
“내 출제 의도가 그거라고? 한 학기 동안 내가 가르친 걸 총동원해서 답안에 열심히 담아라?”
“뭐, 총동원까진 아니더라도요. 교수님이 내신 문제에 충실히 답을 하려면 학습한 내용 중 질문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최대한 작성하는 게…….”
“그건 자네 생각이고.”
김교수가 내 말을 끊으며 쏘아붙였다.
“네?”
“난 답변을 길게 쓰라고 한 적도 없고, 자네가 말한 것처럼 배운 내용을 총동원하라느니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어. 자네도 그렇고 대부분 학생도 그렇고, 그냥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왜? 다른 시험들이 대부분 그렇거든.”
“하지만……”
“철학은 우리 인간을 둘러싼 세상의 본질을 찾는 학문이지. 그 본질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게 있다면 그걸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해야 해. 그런데 그 표현 방법은 부수적인 거야. 오컴의 면도날처럼, 정답은 단순할수록 좋은 거야. 중요한 건 얼마나 본질을 잘 이해했느냐지.”
내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서 있자 김교수는 답안지를 높이 들더니 명료하면서도 본질을 꿰뚫었다고 덧붙이며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빨간 볼펜을 꺼내 내가 매긴 점수에 두 줄을 긋고 커다랗게 ‘A+’라고 썼다.
그때는 그저 김교수가 A+를 준 것이 못마땅했다. 나는 규정상 줄 수 있는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A 학점을 부여했다. 내가 A 학점을 매긴 학생의 답안은 모두 훌륭했다. 김교수가 내가 매긴 B를 A+로 올리면, 반대로 A를 받은 학생 중 한 명은 B가 되어야 했다. 김교수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나는 며칠 동안 김교수의 행동이 내내 불쾌했다.
하지만 이후 내가 석사학위를 따고 박사과정을 밟으며 교수가 되기까지, 김교수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었다. 특히 현대철학일수록, 복잡한 철학 이론을 현학적으로 늘어놓는 것보다는 본질을 꿰뚫는 사유를 간결하게 풀어놓은 이론들이 학계에서도 주목받았다.
중요한 건 얼마나 본질을 잘 이해했느냐다. 정답은 단순할수록 좋다.
어쩌면 그날의 일은 괴짜 김교수 나름의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른다.
꿈과 생각의 경계를 거닐다가 나는 정신이 들며 지금의 현실에 도착했다. 머리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복잡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뭔지 모를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인생을 뒤바꾼 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양자 플라즈마를 이용한 현대 과학이었다. 그것은 다세계 해석의 일인자라는 사람도 백 퍼센트 완전하게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게다가 원래 현실로 돌아가려면 본 적도 없는 구신효라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를 찾는다 해도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본질을 잘 이해했느냐다. 정답은 단순할수록 좋다.
잠결이라 그런지, 김교수가 내 앞에서 나타나 직접 말해 주는 느낌이었다.
나를 둘러싼 이 상황의 본질은 무엇인가? 원래 이 우주에 있던 신성우는 왜 나의 인생을 훔쳐 간 것일까?
나도 이론으로만 접해본 다중우주가 실재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 넓은 우주 속에서 무수히 많은 내가 서로 다른 다양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중 어떤 것을 나의 진정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원래 미연이와 다은이와 함께 살고 있었으니 그것을 내 진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무수히 많은 우주 속 하나의 인생이 바뀐 것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나와 서로 인생이 뒤바뀐 것뿐이라면, 우주 전체적로 볼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행동의 정답은 무엇일까? 나는 구신효를 찾아서 원래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그곳에 있는 신성우는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어차피 그도 나도 모두 같은 신성우인데, 그게 정말 맞는 것일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잠이 들긴 든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아직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서 더 이상 잠을 청해도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서재로 가서 노트북을 켰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구신효 박사를 찾는 것이다. 구신효를 찾고 나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명확해질지도 모른다. 모든 건 구신효를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난 후에 생각하자고 되뇌었다.
나는 구신효 박사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인물정보나 인터넷 기사에도 별다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정문숙 교수님은 구신효가 자신이 추천한 인물이 아니며,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 본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구신효가 박사 학위를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받았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고 했다.
나는 우리 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구신효의 이름으로 논문을 검색해보았다. 서울대학교 석사 졸업논문으로 한 개가 나왔다.
「뇌파를 기반으로 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시스템 개발 연구 - 구신효」
어차피 논문을 읽어봐야 내가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제목만 보아도 동명이인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구신효는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어 존스 홉킨스 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보았다. 구신효의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졸업 후에 모교에서 활동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오빠, 뭐 해?”
방문이 열리며 민주가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 그…… 그냥 좀 일찍 깼는데 잠이 안 와서.”
민주에게는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미연이와 다은이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나는 민주의 남편이자 주원이의 아빠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