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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어택 Oct 11. 2024

(17화) 9월 16일 (4)


 미연이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이태원에 있었고 언론에서는 용산구와 중구 일대에 정전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 근원지가 교수님이 남산 아래에서 실험공간으로 썼다는 지하 벙커였던 것이다.

 

 상헌은 이미 논문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교수님은 나를 보면서 다중우주 간 접촉을 시도한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나는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사고실험만으로도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니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건 당연할 것이다.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다중우주와 접촉하는 방법은 일종의 공명현상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양자 중첩을 이용해 양자 컴퓨터 속에서는 6만 개의 주파수를 모두 추적하고 있다. 이때 다른 우주로 보낼 메시지를 상대방 우주의 양자 플라즈마 주파수에 맞는 파동으로 변환한다. 그리고 그 파동을 양자 컴퓨터를 통해 전송하면, 공명을 이용해 상대 우주의 양자 플라즈마로 전달된다. 그곳에서 메시지가 수신된 것을 인지하고 전달받은 파동을 다시 텍스트로 변환하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성공하신 건가요?”


 교수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상헌이 물었다.


 “성공이라……. 내가 논문에 쓴 것처럼 다른 다중우주와의 접촉이 목적이었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과학자로서 이걸 성공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어.”


 무슨 이런 역설적인 표현이 다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뭔지는 몰라도 굉장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건 분명해 보였다. 


 “워낙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 그런가…… 그 당시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런데 여기 잘 기록되어 있긴 할 거야.”


 교수님은 조금 전 양자 플라즈마 사진이 있던 서류를 몇 장 넘겨 나와 상헌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어떤 장문의 글이 실려 있었는데, 교수님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일종의 실험일지였다.      




 (교수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내 이야기를 일기로 남기고 있다며 교수님의 일지를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교수님이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록 일부를 보내준 덕에 여기에 인용할 수 있었다.)   

  

 이미 6만 개의 다중우주가 생성되었다. 내 눈앞에 있는 양자 플라즈마가 가진 진동이 이 우주의 존재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니 보랏빛이 더욱 위대해 보였다. 드디어 다른 다중우주가 존재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순간이었다. 


 6명의 팀원은 모두 숨죽인 상태였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고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팀원 중 엔지니어인 제니퍼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도해도 좋다는 의미였다. 제니퍼는 컴퓨터에 ‘HI’라고 입력했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섞여 있기에 ‘안녕’이라고 해도 됐겠지만, 그녀는 아마도 가장 적은 텍스트로 입력하는 게 성공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고, 몇 날 며칠을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였기에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주변의 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양자 플라즈마를 통해 다른 우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또 정전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30초? 1분? 6명의 팀원은 모두 말없이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모니터에 메시지가 떴다.


 「HI」 




 “그 순간만큼은 감격에 찬 순간이었어. 우리의 메시지를 받은 다른 우주에서 답장을 보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국인이고 미국인이고,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얼싸안고 한참을 뛰었지.”


 교수님의 입술은 미소를 조금 머금은 듯 보였지만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그때 구신효가 조용히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더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보니 ‘거기 지금 몇 시야?’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비교적 긴 문장을 보내는 것도 가능한지, 다른 우주와의 시차는 없는지 동시에 알아보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구신효 박사는 프로젝트 내내 독단적인 순간이 많아 다른 팀원과 마찰이 생기는 일도 많았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이 정도의 긴 문장을 쓸 것이라면 나와 상의하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자코 앉아 어떤 답이 올지 기다렸다. 긴 문장이라고 더 긴 시간이 걸린 것 같지는 않다. 비슷한 시간을 기다리고 나니 모니터에 메시지가 떴다.


  「거기 지금 몇 시야?」 


 큰 충격을 주는 대답이었다. ‘HI’에 ‘HI’라고 답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몇 시냐는 질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질문을 돌려준다는 건 이상했다.     




 “아, 메시지를 뭐라고 보내든지 똑같은 답변만 온 건가요?”


 상헌이 아쉽다는 의미인지 짧은 탄식과 함께 물었다. 


 “이후에도 몇 가지 메시지를 더 보냈는데, 모두 똑같이 왔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지 알 수 없었네. 다중우주가 있든 없든 메시지는 거울에 반사되듯 되돌아올 뿐 접촉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두 우주가 똑같이 흘러가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똑같은 메시지를 보낸 것일 수도 있지.” 

 “나중에는 알게 되셨나요? 왜 그런 일이 발생한 건지.”

 “그 일을 실패로 인정하고 계속 연구해 나갔다면 알게 됐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러지 않은 게 문제야. 처음 며칠 동안은 모두 밤을 새워가며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어. 그런데…….”


 교수님이 책장의 서랍을 열더니 한 액자를 꺼냈다. 탁상에 세워둘 수 있게 만든 액자인데 보기 싫었는지 서랍 속에 넣어둔 것 같았다. 액자 속에는 교수님을 포함한 6명의 단체 사진이 들어 있었다. 교수님은 내 기억 속에서처럼 지금보다 큰 체격의 모습이었다.


 교수님은 사진 속 한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일 것 같은 외모였다.


 “이 남자가 구신효 박사야. 뇌인지과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는데, 실험에 실패한 후에 자꾸 이상한 소리를 했어. 텍스트를 파동으로 변환하려던 게 실패의 원인일 수 있다고. 처음부터 파동의 형태를 띤 다른 걸 보내야 한다는 거지.”

 “어떤 거를요?”


 상헌이 묻자마자 교수님은 곧바로 대답했다.


 “뇌파.”

 “네?”

 “구신효 박사는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니 나중에는 어떤 장치를 만들어 왔어. 원래는 병원에서 뇌파를 추출할 때 쓰는 장치인데 양자컴퓨터에 호환되도록 개조했다면서. 이 장치로 뇌 속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양자 플라즈마를 통해 보내보자는 거야. 뇌파도 파동의 일종이니 공명을 이용한다면 텍스트보다도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면서. 나는 반대했지. 뇌파를 상대방이 어떻게 수신할지도 의문이고, 뇌파를 양자 플라즈마와 연결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구신효 박사는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했네. 프로젝트 내내 그렇게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꺾지 않는 사람이었어. 뇌인지과학이 전공이니 그 분야에서는 나보다 전문가일 테고, 본인이 직접 하겠다니 말릴 수가 없었지.”

 “정말 하신 거군요.”


 교수님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실험일지가 담긴 서류를 몇 장 넘겼다. 구신효 박사가 이상하게 생긴 헬멧을 머리에 쓰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떠올리기도 괴롭다고 말하더니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고 상헌과 나는 직접 일지를 읽었다.      




 구신효는 자신이 만든 장치를 머리에 쓰고 앉았다. 제니퍼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옆에 서서 숨죽여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구신효가 내 말을 듣지 않은 게 못마땅해 한 발 뒤로 물러나 서 있었다. 그런데 나 역시 다른 팀원들 못지않게 결과가 궁금했다. 어쩌면 이 프로젝트 팀장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구신효를 말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번만큼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그를 보며 속으로는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제니퍼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구신효에게 준비됐다고 말했다. 구신효가 눈을 감고 다른 우주로 보낼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할 때마다 모니터에 그의 뇌파가 포물선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모니터의 포물선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신효의 감고 있던 눈꺼풀이 빠르게 흔들리더니, 나중에는 발작을 일으키듯 그의 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멈춰야 해!”


 내가 전원 버튼을 누르려고 급히 달려가는데 갑자기 모든 불이 꺼졌다. 순간 또 정전이 일어난 것이다. 대기전력을 연결해 둔 양자 플라즈마의 보랏빛만이 어둠 속에서 방 안을 비추었다. 쿵 소리가 나며 구신효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며 불이 켜졌다. 


 앤드류가 급히 구신효의 머리에서 장치를 벗겼다. 다행히 구신효는 곧바로 눈을 떴다. 여기저기서 구신효에게 괜찮냐고 묻는 영어와 한국어가 들렸다.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구신효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는 고개를 숙여 그가 입고 있던 흰색 셔츠를 쳐다보더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급히 말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옷을 입고 있지? 저 분명 검은색 옷 입고 있지 않았어요?”


 구신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구신효가 그저 입고 있던 옷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구신효와 대화해보니 그는 우리가 먹은 점심 메뉴도 혼자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앤드류는 뇌가 손상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선뜻 입 밖에 내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음날, 구신효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내가 똑같은 실험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앤드류가 나를 말리며 본인이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앤드류가 하게 되었다. 


 미국인 플라즈마물리학 박사인 앤드류는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일부러 이상한 행동을 몇 가지 했다.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제니퍼의 빨간색 옷을 빌려 억지로 팔에 끼운 채 실험에 시작했다. 일부러 본인이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해서 기억 속에 선명하게 새기기 위험이었다. 우리는 구신효가 단순히 착각한 것인지 아닌지 알아야만 했다.


 미리 전기 공급량을 높여둔 덕에 정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앤드류도 구신효처럼 바닥에 쓰러지더니 아주 잠깐 의식을 잃었다. 그런데 앤드류의 반응은 구신효보다 더 이상했다. 의식이 돌아오자 그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조금 전까지 집에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눈을 떠보니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앤드류와 대화하며 서로의 기억을 비교해보았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우리 모두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앤드류와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앤드류는 구신효가 뇌파를 보내자고 제안하고 실험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메시지 전송 실패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일찍 퇴근하고 집에 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어지러움이 몰려오더니 순간 의식을 잃었고, 눈을 뜨니 여기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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