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교수님 때문이라니요? 저희는 교수님께서 혹시라도 저희가 다중우주를 이동한 이유나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시는 게 있을까 봐 온 겁니다.”
상헌이 다급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교수님은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이 왜 다중우주를 이동했느냐고? 그건 정확히는 모르지. 그런데 누가 자네들이 다중우주를 이동하게 만들었는지는 짐작이 가.”
놀란 나와 상헌을 뒤로한 채 교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장으로 걸어갔다. 한 번에 손을 뻗어 딱딱한 표지로 제본된 문서를 꺼냈다. 아마 어디에 있는지 익숙히 아는 물건 같았다. 그녀는 손으로 그 문서의 먼지를 닦더니 표지 제목이 보이게끔 우리에게 내밀었다.
「다세계 해석을 기반으로 한 다중우주 간 접촉 가능성에 대한 연구 – 정문숙」
“유교수는 이게 뭔지 알지?”
상헌에게 물었지만 나도 처음 보는 제목은 아니었다. 오전에 키즈카페에서 잠깐 살펴본 그 논문이었다.
“그럼요. 교수님이 그 논문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셨는데요.”
“그래.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기 낯부끄럽긴 한데 이 논문이 학계에서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접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건 처음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이 논문 내용은 사고실험에 불과했어.”
두 사람은 대화 중간에 계속해서 나를 힐끔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둘은 이미 아는 내용인데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렇죠. 첫 번째는 양자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죠?”
“정확히는 ‘양자 플라즈마를 온도‧습도‧물리적 충격 등 외부 요인에 반응하지 않는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지.”
그 둘의 대화는 점점 나를 배려하지 않는 듯 흘러갔다. 대화를 한 번에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서 오는 길에 상헌에게 몇 번을 재차 물어보았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교수님의 논문에서 다른 우주와 접촉이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은 양자 플라즈마를 외부 요인에 반응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었다. 현재 기술로 절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양자 플라즈마를 만드는 일 자체로도 큰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플라즈마 자체가 상온에서 매우 불안정한 물질이기 때문에, 양자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장치를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에서 한 연구실에 지원해 줄 수 있는 수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이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두 번째는 ‘양자 중첩을 통한 병렬 연산이 가능한 프로세서가 있을 것’이었다. 유상헌은 쉽게 말해서 양자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양자 컴퓨터는 지금도 기업과 대학에서 연구 초기 단계인데, 이 논문이 나온 8년 전에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기술이었다. 교수님의 논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두 개의 전제조건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다른 우주와 접촉하는 방법을 다루었기에 사고실험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 논문이 발표되고 몇 달 뒤, 누군가 날 찾아왔어. 두 사람이었는데 한 사람은 지금의 자네들 정도 나이대의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미국인 여성이었어. 남자는 자신이 국정원 소속이라고 했지. 여자는 소속을 정확히 밝히지도 않았지만 대충 CIA와 비슷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더군. 그리고 그들이 제안을 했어. 내 논문을 직접 실현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8년 전에요? 불가능하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한동안 어려운 용어들 속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드디어 조금은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가 나오자 잽싸게 질문했다.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거야. 양자 플라즈마는 어차피 비용 문제일 테니 한국과 미국에서 같이 부담하겠다고 했고.”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돈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미국인이 그러더군. 내가 필요하다고 한 건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의 양자컴퓨터가 아니라 양자 중첩을 통한 병렬 연산만 하면 되는 거니, 그 정도 기술은 이미 미국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했어.”
유상헌이 끼어들었다.
“8년 전 당시에 그 정도 기술만 있었어도 논문이 수십 편은 나왔을 거고, 사회적으로도 파장이 컸을 건데요. 어떻게 그걸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나도 미국의 국력에 감탄했어. 상용화가 목적이 아니라 아마 군사적 목적이나 안보를 위해 정부에서만 비밀리에 가지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할 뿐이었지.”
“그러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왜 정부에서 교수님 논문에 관심을 보인 거죠?”
내 말에 교수님이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나서 대답했다.
“다른 다중우주와의 접촉을 통해 각종 재난이나 연구로부터 시행착오를 줄이는 게 목적이라더군. 유교수도 과학자니까 이해할 거야. 어떤 실험을 하는데, 그 실험을 하지 않는 다른 우주와 연락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대조군이 있을까? 예를 들어 신약 개발을 하는데 서로 다른 우주에 사는 같은 사람을 가지고 실험한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거야.”
상헌의 눈이 번뜩이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겠네요. 지금처럼 다른 사람 수십 명을 모아서 실험하는 방법보다 훨씬 정확한 방법이죠. 잘만 되면 분명 과학이 발전하는 속도도 빨라질 거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재난이나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데이터도 쌓일 거고요.”
“그래. 사실 나는 이 나이에 거기까지는 바랄 것도 없었어. 그저 내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걸 직접 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회였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취지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우리나라 정부도 같이한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
그렇게 비밀리에 프로젝트가 시작됐네. 한국인과 미국인으로 구성된 총 6명의 팀이 꾸려졌어. 내가 팀장 격인 역할을 맡았지. 남산 아래 아무도 모르는 오래된 지하 벙커 같은 게 있었어. 국정원에서 그 공간을 연구실로 제공해 줬지. 나는 예전에 중앙정보부에서 쓰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네.”
“교수님이 갑자기 학교를 떠나셨던 게 그때였겠네요.”
“맞아. 유교수한테는 미안하네.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각서를 쓰기도 했고, 실제로 감시를 받기도 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
“아닙니다, 교수님. 충분히 이해는 해요.”
유상헌은 당시 교수님 행방에 대해 여러 음모론이 돌았다고 했는데, 듣고 보니 음모론의 내용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철저하게 보안을 지켰던 일인데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도 되는 것인가? 교수님의 이야기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연구하는 동안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정부에서 뭐든지 다 지원을 해줬어. 그 돈이 한국에서 나온 건지 미국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나는 논문을 쓰면서 수백 번은 머릿속에서 돌려본 일이었기에, 실제로 실험 단계까지 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교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쪽으로 가더니 또 어떤 서류를 꺼냈다. A4용지 수십 장을 철해둔 서류였다. 그녀는 서류를 몇 장 넘기더니 사진이 인쇄된 페이지를 나와 상헌에게 보여주었다. 연구실의 사진이었는데, 연구원들이 사람보다 큰 거대한 원통을 둘러싸고 있었다. 투명한 원통 안에는 마법사의 수정구슬처럼 보라색 번개가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양자 플라즈마인가요?”
상헌이 사진 속 원통을 가리켰다.
“그렇네. 실린더 안에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야. 이게 최초로 다중우주 간 접촉을 시도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지.”
“교수님이 논문에 쓰신 방법대로 다중우주를 생성하신 건가요?”
“그래.”
다중우주를 생성한다고? 상헌은 이미 다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교수님과 상헌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있자 교수님이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당시 연구원들은 양자 플라즈마에 진동을 일으켰다. 양자 플라즈마가 진공 속에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특정 주파수의 진동을 일으키면 양자 플라즈마는 그 진동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된다. 당시 교수님의 팀은 6만 개의 진동 중 하나의 진동을 무작위로 발생시켰고 그 행위는 6만 개의 다중우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럼, 이 양자 플라즈마로 6만 개의 다중우주가 만들어진 건가요?”
나는 놀라서 교수님의 말을 자르듯 물었다.
“그렇긴 한데,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걱정할 필요도 없네. 자네가 주사위를 던지면 6개의 다중우주가 생기는 것처럼, 6개가 아니라 6만 개였을 뿐이야. 내가 우주를 만든 게 아니라 내 행동으로 인해 알아서 만들어진 거지.
하지만 우리가 한 실험은 단순히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는 달라. 6만 개의 우주에서 각각의 플라즈마는 자신에게 부여된 주파수를 고윳값으로 가지게 되고, 양자 중첩을 통해 6만 개의 주파수를 양자컴퓨터가 모두 추적하지.
우리가 한 가지 놓친 건, 그때 순간적으로 전력을 얼마나 소모할지 예상을 못 한 거였네. 양자 플라즈마의 진동이 중도에 멈추면 절대 안 되기에 대기전력을 몇 중으로 연결해 두었거든.”
“그럼, 그때 그 정전이…….”
“맞네. 7년 전 서울에서 발생한 대정전 기억하지? 그게 그 순간이었어. 그 지하 벙커를 중심으로 6km 일대에서 발생했으니까, 사실 발원지를 추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아마 국정원에서 힘을 써서 덮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