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까맣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까맣고 하얀 먹이 한 방울씩 흘러내린다. 비도 아닌 것이, 눈물도 아닌 것이 가슴 위로 우두둑우두둑 떨어져 내린다. 그러면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웅크리고 앉아 가슴 위에 손을 덧댄다. 그렇게 가만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간질거린다. 한 방울씩 더해지는 먹물이 동심원을 그리며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바위를 치는 파도처럼 가슴으로 밀려왔다가 쓸려나가기를 반복하는 정체 모를 파문. 그 속에서 속삭임을 듣는다. 더없이 고요한데 끝없이 수선스럽다. 그렇게 멎어 있는 것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속삭임이 손과 귀를 거쳐 가슴에 이르면 견딜 수 없이 손을 움직이고 싶어 진다. 사물에 담긴 말이 한 자 한 자 손 위로 떨어져 쓰고 싶은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사물의 말이 닿은 것은 손인데 파문이 이는 것은 가슴이다. 가슴에 새겨진 말을 글로 바꾸어 두기는 해야겠는데 작은 두 손은 먹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그래서 차마 타자기를 두드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물을 사물인 채로 손은 손인 채로 가슴은 가슴으로 제각각의 시간을 보내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사물과 손과 가슴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소리가 귀를 요란스레 두드리고 들어오고 있다. 사물의 속삭임이 아무래도 너무 감미로워 나만 듣고 있기 아쉬워진다. 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손깍지를 꼈다가 펜을 쥐어 봤다가 타자기 위에 손을 올려 보기도 한다. 그렇게 사물의 말을 꽤 오랜 시간 머금고 있다가 나를 결정적으로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다.
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가. 그게 어떤 쓸모가 있는가. 누가 나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온갖 작위가 판을 치는 세상에 굳이 나까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문자의 무질서를 더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었다. 사물을 사물인 채 두는 것이 때로는 그 고유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될 터. 그런데도 나는 왜 사물의 말을 굳이 문자로 변환시키려는 노고를 자처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를 붙들고 나는 꽤 긴 시간 서성였다.
가슴을 차곡차곡 채워온 여러 사물에서 ‘感謝’라는 두 자를 읽어낸다. 익숙해져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뿐,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 또한 연(緣)이 닿아 내게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단치 않지만 나에게는 하나하나 의미가 되어 남겨진 그것들이 나와 함께 내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나의 일부이자 또 전부라 할 수 있다. 허니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머금고 있던 말을 그리하여 나에게 사물이 남긴 말을 글로 전하는 것이다. 당신의 사물과 닿아있는 나의 사물이 남긴 소소한 위로와 깨우침이 혹여라도 숨이 턱에 차올라 있을지 모를 당신이 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되어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 이러한 연유로 내 귀를 두드리고 들어와 가슴에 새겨진 사물들의 말을 하나씩 전해보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