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Z Aug 13. 2023

스틱

  등산을 배운 적이 있다. 산을 오르려면 등산복과 사람과 산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긴 시간 산을 찾았다는 전문 등반가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산에, 몸에, 그리고 인생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땀에 젖은 옷은 체온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길을 잃었을 때는 나무에 붙은 표시를 확인하고 긴급구조를 요청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상식이다 싶어 허투루 흘려듣는 경우가 많은데 죽음 앞에서는 그게 구명줄이 되어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알고 있다.’라고 하는 인식의 무지에 대해 생각했다. 실전의 위험에 처해보지 않으면 상식은 과잉 정보가 되어 귀를 비켜 가게 된다.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 세상을 뒤집고 있는 시대이니 사실은 오히려 더 철저하게 상식을 쌓아 두어야 하는데 정보에 너무 많이 노출된 게 독이 되어 우리는 상식을 상식으로 쌓아 두지 못하고 있다. 

  그날 수업에서 내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 준 것 중 하나가 스틱에 대한 오해였다. 오르막길에서는 힘을 분산시켜 주고 내리막길에서는 충격을 완화하여 관절을 보호하는 것이 스틱의 역할이었다. 나는 왜인지 산에 오를 때 스틱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스틱은 나에게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기구였지 필수용품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관절이 닳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굳이 스틱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긴 호흡으로 꾸준히 산을 오르기 위해서라는 한마디가 귀를 두드리고 들어왔다. 

  순간 내가 다음 등반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그와 동시에 인생이라는 등반에서도 다음에 관한 생각 없이 무작정 정상만 보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넘어지고 구르며 정상을 향해가는 사이 호흡을 고르며 전진하는 법까지 익힌 것도 같은데도 끝없이 정체 모를 불안을 느끼고 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리하여 스틱이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구나, 올라야 할 산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 장거리 경주인 인생을 단거리 경주 선수처럼 달리고 있었구나, 그래서 다음이 오면 늘 불안과 초조함에 휘둘렸구나, 하는 것들을 천천히 생각하게 되었다. 

  스틱을 짚으면 확실히 맨손으로 산을 오르는 것보다 속도가 덜 난다. 그러하기에 속도를 높이고자 하는 초보 등반가는 스틱을 짚지 않는다. 초보 등반가에게 스틱은 필수장비가 아닌 보조장비에 불과한 것이다. 초보 등반가는 빨리 산을 오르는 만큼 관절도 닳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정신없이 산을 오른다. 그렇게 해서 정상에 도착하면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은 쉬라는 몸의 신호인 것을 그 신호를 무시하고 다시금 초보는 다른 정상을 향해 움직인다. 인생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것만 넘어서고 나면 모든 게 끝날 것처럼, 그러면 쉴 수 있을 것처럼 자꾸만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 몸은 축나고 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는 영원히 초보를 벗어날 수 없는데 나만 그러한 게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정상에서 또 정상을 찾는 끝없는 추구를 하고 있었다. 닳은 연골과 맞바꾼 성취라면 성취감이라도 만끽해야 하는데 정상에 이른 이들에게서 평온한 얼굴을 본 기억이 나에게는 남겨져 있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하고 허탈해하는 얼굴을 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문지르고 있었다. 다음의 정상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상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이 성취감이나 평온함이 아니라면 왜 그토록 서둘러 정상에 이르려고 하는 것일까. 왜 스틱을 짚으며 산을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빠른 등반에만 혈안이 되게 된 걸까. 스틱을 짚고 천천히 산을 오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스틱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무슨 스틱이 있는지를 몰라 맨손으로 산을 오르기를 택한 것인지......

  가만 앉아 생에 놓인 수많은 산을 오를 때 짚을 수 있는 스틱이 무엇일까 떠올려 본다. 말(言)이 아닐까?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이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이들이 나에게 건네는 응원의 말 말이다. 시련과 역경이 있는 게 인생이라며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한 언젠가는 내 앞에 놓인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은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 다독임의 말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러한 말은 조건 없이 툭 주어졌다. 그래서 그것을 스틱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못난 자격지심에 주변의 이야기를 귓전으로 들어 넘기며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두 다리로만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지. 나를 스틱 삼아 도약한 이들의 성취를 보며 그러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하여 정상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금 정상을 찾아 올라가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R Magritte_The Therapist_1937

  산을 오르고 있다. 가파른 고개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손을 펴 본다. 작은 두 손에 정상을 넘어서 올 때마다 들었던 말들이 새겨져 있다. 힘들면 천천히 가도 돼, 숨이 차면 쉬어도 돼, 지치면 울고, 견디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소리도 쳐, 견디지 못할 것 같을 때는 구조요청도 하고, 충분히 정말로 충분히 잘 해내고 있으니까 그만큼 노력하고도 부족하다며 너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 이제 안 해도 돼. 상처투성이었다고 해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정이었으니까. 정상에 이르러서야 몰래 꺼내 보곤 했던 말들을 산 중턱에서 꺼내 들고 운다. 그 말을 스틱 삼아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발을 옮긴다. 다시 정상을 향해가며 두 손을 모은다. 나의 말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스틱이 되어 주고 있었으면 하며 말이다. 

이전 01화 사물의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